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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향숙 당선자
장향숙 당선자 ⓒ 장향숙의 커뮤니티
-장향숙 당선자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제가 장향숙입니다.”

약간 굵은 톤, 그러나 전화선을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그는 오전에 부산에서 가진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다가 서울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김해공항으로 가고 있는 차 안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곧 공항에 닿으면 잠시 식당에 들를 텐데 그때 차분히 통화하면 어떻겠어요?”

‘그게 좋겠구나’ 싶어 잠시 뒤 다시 전화를 걸었다.

경북 영주에서 태어나 두 돌이 채 안돼 소아마비를 앓게된 장향숙 당선자. 장 당선자는 남의 도움 없이는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는 1급 중증 장애인이다. 학교도 제대로 못 다닌 것은 물론, 스무살이 넘도록 바깥세상 구경도 못했다고 한다.

다행히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부모님이 날마다 성경을 읽어준 덕분에 한글을 깨우쳤고, 그렇게 글눈을 뜨자마자 닥치는 대로 읽은 책이 1만 여권이라니 거의 하루에 한 권의 책을 독파했다는 말이겠다.

늘 집안에만 머물던 그가 처음 바깥 세상을 구경한 것은 그의 나이 스무 두 살 되던 해. 교회의 목사님이 구해준 휠체어를 타고서였다.

“햇살이 너무나 눈부셨다. 사람들이 쳐다봤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듯… 아마도 햇살이 눈부시다고 생각한 것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만큼 내 눈을 부시게 해서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언젠가 어느 자리에서 그는 그때의 심정을 그렇게 표현했다. 그런 그이기에 이번 국회의원 당선이 가져다 준 감회는 남다르리라.

“먼저 국민 여러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비례대표는 종전과 달리 국민들이 직접 선택하고 선출했습니다. 국민들이 내는 세금이 아깝지 않게 열심히 일하라는 국민들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번 총선의 결과를 “거대야당이 밀어낸 대통령을 다시 제자리에 앉혔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열린우리당이 장향숙이라는 인물을 비례대표 1번으로 선택했을 때, 많은 국민들이 놀랍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당이 장 당선자를 선택한 의미는 무엇일까요?
“저는 요즘 농담처럼 만나는 사람들에게 ‘무엇이 놀라운 일인가?’라고 말합니다. 우리당이 장향숙을 비례대표로 배정한 것은, 공교육 무학력, 무직자로서 나름대로 인권운동을 해 온 장향숙 개인의 삶에 대해서 자연스럽게 인정한 것이라고 봅니다.

더 큰 의미는 우리 사회의 변화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것은 또 열린우리당의 국민에 대한 약속의 실현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우리 나라가 경제대국이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장애인과 학대받는 아동들, 그리고 빈곤계층과 소외받는 모든 이들이 각자 저마다의 자리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과 다짐을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장향숙의 당선은 하나의 상징성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

-장애인으로서 장애인의 날을 맞아 할 말이 많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특별한 대상으로 보는 시각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이 결코 특별하지 않은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그만큼 우리 모두의 의식의 변화가 있어야 하겠지요. 장애인의 교육권, 건강권, 직업재활권이 보장되면서 장애인도 세금 내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자리매김 되어야 합니다. 이 문제에 있어서는 국가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특히 스스로 일어서기 어려운 중증장애인은 사회 전체가 연대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식이 따라야 합니다.”

-장애인이 특별하지 않은 사회가 되자면 궁극적으로 ‘장애인의 날’이 필요 없는 사회가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어린이날이나 어버이날이 그렇듯 장애인이 함께 뛰고 놀며 즐기는 축제의 날로서의 장애인의 날은 필요하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가 극복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우리 사회에 널리 퍼져있는 ‘따로 따로’의식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정치에서는 여ㆍ야가 각기 따로 놀고 지역은 남ㆍ북이 갈라진 것도 모자라 동ㆍ서가 또 벽을 이루고 남ㆍ여간, 노ㆍ사간, 세대간, 계층간 등 곳곳에 반목과 갈등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다른 의견이나 차이를 수용하지 못하고 그것을 배제의 모티브로 삼는 것을 하루 빨리 극복해야 합니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것을 너그럽게 수용하는 것을 말합니다.”

차이가 차별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세상, 이것이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차별과 한계를 극복하고 마침내 한 나라의 국회의원이 된 장향숙이 꿈꾸는 세상이란다.

-앞으로 국회의원으로서 역점을 기울이고 싶은 분야는?
“나는 국회라는 것을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해 왔던 운동의 정신과 가치관을 가지고 국회라는 다른 자리로 옮겨가서 이때까지 해왔던 것처럼 똑 같이 일할 따름입니다.

지금까지 주로 지역장애인운동을 해왔습니다만 지역장애인운동은 매우 중요합니다. 장애인들에게는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이 가장 중요한 곳이니까요. 그런 관점에서 장애인운동이 지역에서 제대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고 각 지역에 장애인자립생활지원센터 같은 것을 만드는 것에도 힘을 쏟을 계획입니다.

이와 더불어 장애인의 이동권확대를 위해서도 노력하고 장애인연금제도 도입도 중점 연구과제로 삼을 생각입니다. 장애인이 독립적으로 자립하게 되면 사회부담도 그만큼 줄어든다는 인식이 심어져야 합니다.

장애인을 위한 시설은 반드시 장애인을 위한 것만은 아닙니다. 앞으로 노령인구가 늘어나면서 장애인을 위해 마련된 시설은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나 그밖에 임산부와 같이 몸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한 비장애인들도 많이 이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공간이 열려있어야 의식도 확대되는데 우리 사회는 그동안 여러 부문에서 너무 닫혀 있었습니다. 장애인복지문제도 장애인만을 위한 부담이라고 생각할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의 복지 속에 장애인복지를 포함시킨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합니다.”

묻는 말마다 대답이 시원시원 거침이 없다. 할 말이 끝이 없을 듯싶지만, 이제 곧 시작하게 될 의정활동을 준비하자면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텐데 너무 많은 시간을 뺏을 수는 없는 일, 아쉽지만 이쯤에서 작별을 하는 것이 옳겠다.

-마지막으로 이 땅의 모든 장애우들에게 하실 말씀은?
“평생 학교를 가보지 못했고, 직업 없어서 돈을 벌어보지 못했고, 아무도 나를 부르는 곳이 없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저는 끝없이 ‘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고 장애인인권운동을 하면서도 ‘내가 내 자신을 믿으면 마침내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모든 장애우들이 ‘주어진 삶을 변화시키는 힘은 곧 내 자신에게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위한 노력을 해 주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십여 년 동안 엎드린 채 세상을 바라봤다. 엎드린 사람은 지구의 진동을 더 가깝게 느낀다. 사람들의 진동을 더 가깝게 느끼는 정치,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새로운 정치이다.”

‘사람들의 진동을 더 가깝게 느끼는 정치’ 이는 제17대 국회의원 당선자 장향숙이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1번 배정을 받고 전국의 유권자들에게 띄웠던 인사에서 한 말이다.

‘내내 건강하시라’는 작별인사를 하고 전화기의 수화기를 내려놓은 나는 불현듯 그가 말한 ‘진동’이라는 말을 떠 올렸다. 그리고 그 진동은 그날로부터 나흘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 가슴 속에서 잦아지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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