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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앞, 작년에 피었던 벚꽃. 올해도 똑같이 피었다. 해마다 꽃은 같은데, 사람 마음도 그와 같을까?
학교 앞, 작년에 피었던 벚꽃. 올해도 똑같이 피었다. 해마다 꽃은 같은데, 사람 마음도 그와 같을까? ⓒ 최성수
일주일 만에 찾은 보리소골에는 온갖 꽃들이 만발해 있습니다. 서울의 봄은 여름에게 자리를 양보해 주고 있는 듯한데, 강원도 보리소골은 이제야 봄입니다.

마당에 들어서니 개울 쪽으로 심어 놓은 왕벚나무가 눈같이 흰 꽃을 한창 피워 올리고 있습니다. 변소 양 옆으로 심어 놓은 두 그루 앵두나무도 작은 키에 버겁도록 눈부신 꽃을 매달고 있습니다.

지난 삼월, 학교 입구에 제일 먼저 살구나무 꽃이 피었습니다. 꽃 핀 나무 한 그루 없이 아직도 겨울 같은 교정에 눈이 시리게 피어난 살구꽃이 너무 아름다워 나는 출근 시간이면 살구나무 꽃그늘 아래 한참을 서있곤 했습니다.

마당 가에 핀 앵두꽃, 그 꽃에 달릴 붉은 앵두 열매가 그립다.
마당 가에 핀 앵두꽃, 그 꽃에 달릴 붉은 앵두 열매가 그립다. ⓒ 최성수
살구꽃에 다투어 목련이 피고, 개나리와 진달래가 뒤를 잇더니 목련이 짓물러 터지듯 툭툭 지는 날에 벚꽃이 피었습니다. 아이들 데리고 수련회에 갔다 오니 교문 앞으로 벚꽃들이 터널을 이루며 피어 바람결에 꽃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교정에 꽃들이 지고, 온갖 나무들의 잎이 싱그럽게 피어납니다. 엊그제 마지막으로 자귀나무가 잎을 틔워 이제 봄은 여름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보리소골은 이제 봄이 한참입니다. 지난 주에 터질 듯 부풀어 있던 앵두꽃이 피어나더니, 산에는 진달래가 한창이고 들에는 조팝나무 흰 꽃이 별천지를 연출해 냅니다.

한 해에 봄을 두 번이나 만나는 것 같은 즐거움이 보리소골에 올 때면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줍니다. 상추와 쑥갓 따위를 심고, 이미 쇠도록 돋아난 파 밭의 쑥을 캐내다가 바라본 산에는 낙엽송이 어린 아이 손바닥처럼 여리고 순하게 새순을 내밀고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집을 비운 새 마당에는 작년에 심어 놓은 꽃잔디가 저 혼자 곱디고운 꽃을 피웠습니다. 사람도 없는 사이 저 혼자 꽃을 피운 것입니다. 아니, 어쩌면 꽃들은 사람이 없어 피어난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또 새 계절이 문을 열고, 나는 그 계절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텃밭에 옥수수와 무, 배추 씨를 뿌립니다. 올 여름이면 하늘로 올라가듯 자라 토실토실한 옥수수통을 매달고 있을 씨앗을 희망처럼 뿌립니다.

작년에 심은 꽃잔디가 겨울을 나고, 사람도 없는 골짜기 마당가에서 이렇게 고운 꽃을 피웠다.
작년에 심은 꽃잔디가 겨울을 나고, 사람도 없는 골짜기 마당가에서 이렇게 고운 꽃을 피웠다. ⓒ 최성수
우리 늦둥이 진형이 녀석도 신이 나서 밭을 뛰어다니고, 호미를 가져다 준다, 흙을 퍼 나른다고 부산합니다. 아마도 녀석은 제가 따 먹을 옥수수 생각에 더 신이 나는지도 모릅니다.

벗겨진 비닐에 흙을 덮기도 하고, 마당가 야생화 화단에 돋아난 쑥을 캐느라 정신이 없을 때였습니다.

“아빠 이거.”
저 혼자 바빠 정신이 없던 늦둥이 녀석이 갑자기 무언가 내게 내밉니다.

“뭐니?”
호미를 손에 든 채 흙 묻은 손으로 내가 묻자 녀석은 제 손에 들려 있는 진달래 꽃잎을 내 얼굴로 들이댑니다.

“한 입만 드세요.”
진달래꽃은 먹는 꽃이라고 알려준 적이 있는데 녀석이 마당가에 핀 진달래 꽃잎을 몇 송이 따 들고 온 것입니다.

“한 입? 한 잎?”
나는 녀석의 말이 어느 쪽인지 몰라 잠시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녀석은 꽃잎을 한 잎 똑 따 내 입에 넣어 줍니다. 입 안 가득 새콤하고 상큼한 맛이 가득 굅니다. 봄맛입니다.

나는 녀석의 말이 재미있어 자꾸 녀석이 한 말을 되뇌어 봅니다.

“한 입만 드세요? 한 잎만 드세요?”

녀석은 꽃잎을 들고 제 엄마에게 가서 또 한 잎을 따 주며 한 마디 합니다.

“한 잎만 드세요.”

개나리와 진달래와 왕벚꽃. 어울려 피는 꽃들의 아름다움
개나리와 진달래와 왕벚꽃. 어울려 피는 꽃들의 아름다움 ⓒ 최성수
그런 녀석의 손바닥이 꼭 꽃잎을 닮아 있습니다. 봄이 아름다운 것은 꽃이 있어서고, 꽃이 아름다운 것은 꽃을 바라보는 녀석과 같은 마음이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둘러본 보리소골은 그야말로 온통 꽃 대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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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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