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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웅 이순신 장군의 정읍과의 인연은 이렇게 이어져 오고있다.
ⓒ 이용찬
4월 28일 충무공 탄신일을 맞아 전북 정읍에서도 충렬사보존위원회(회장 김수곤) 회원 60여명이 28일 오전 10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영영(英靈)을 봉안한 충렬사에서 유덕(遺德)을 추모하는 제례를 올렸다.

올해로 탄신 459주년을 맞는 성웅 이순신 장군은 널리 알려져 있듯이, 정읍과도 적지 않은 인연이 있다.

▲ 2004년 4월 28일 정읍 충무공원
ⓒ 이용찬
조산보만호(造山堡萬戶) 벼슬에 있실 때 호인(胡人)의 침입을 막지 못해 백의종군하다 전라도관찰사인 이광에게 발탁, 전라도의 조방장(助防將)이 됐고, 1589년(선조 22) 12월에 45세로 정읍 현감에 부임하여 태인 현감을 겸직했다.

정읍에서 1년 4개월 동안 재임한 후 1591년 3월(선조 24) 유성룡의 천거로 절충장군(折衝將軍) 진도군수 등을 지내고, 같은 해 전라좌도 수군절도사에 승진, 좌수영에 부임하여 군비 확충에 힘쓰던 중 임진왜란을 당했다.

해전에서 거북선으로 왜적을 물리치고 왜군의 서해 진출을 막아 보급로를 차단하여 내륙에서도 승리를 안겼으나, 패주하는 왜구의 퇴로를 막는 노량해전에서 왜구의 조총에 의해 54세의 나이로 1598년(선조 31) 11월 19일 새벽에 전사했다.

장군의 시신은 1599년 2월에 아산군 금성산에 안장했다가 16년 후인 1604년(선조 37)에 나산에 이장하였다.

▲ 이날 제례식에는 임남곤 정읍시 문화원장을 비롯한 충렬사 보존위원회 60명이 참여하여 제례를 올렸다.
ⓒ 이용찬
정읍 충렬사에서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것은 1643년(인조 21)에 충무(忠武)라는 시호(諡號)가 내려져 1681년(숙종 7) 유림들이 장군의 유덕을 추모하여 사우(祠宇)를 여아동(餘兒洞), 즉 지금의 과교동에 창건하였다가 9년 후인 1689년(숙종 16)에 현재의 위치 과교동 진산 마을로 옮겨왔다.

그 이후 영조 때(정확한 시기는 알려지지 않음) 유애사(遺愛祠)라는 사액(賜額)을 내려 유애사로 불리었다. 이후 1798년(정조 22)에 집의(執義) 유희진의 제사를 더하고 1854년(철종 5)에 주부(主簿) 유춘필의 제사가 더해지며 함께 제사를 지내다 1963년에 현재의 정읍시청 옆으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만을 따로 모시는 충렬사를 창건하여 제사를 지내왔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만을 모시는 오늘의 충렬사는 충무공께서 부임한지 375년이 지난 1949년 8월에 준공되어 공사가 시작되었다가 6.25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어 14년 뒤인 1963년 4월에서야 완공되었다. 준공 후에는 충렬사 보존위원회가 구성되어 현재까지 해마다 충무공 탄신일에 제례를 올려오고 있다.

이전까지 제사를 지내던 과교동 진산마을의 유애사는 1974년 9월 27일에 지방문화재 기념물18호로 지정되었으며, 유애사 내부에는 아직도 1876년(고종13년) 나라에서 내린 유허비각이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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