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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2004년 4월 동학 혁명 기념탑 제막식. 관군의 후손과 농민군 후손 그리고 군 관계자가 처음으로 참석했다. | | ⓒ 마동욱 | | 지난 25일 월요일 아침, 때마침 봄비가 내렸다. 110년 전 이 땅에서 일본군에 쫓기고 관군의 총칼에 쓰러진 동학 농민군의 서러운 죽음을 떠올리게 하는 서러운 눈물 같은 봄비였다.
동학농민전쟁의 마지막 혈전이 치러졌던 전남 장흥군 장흥읍 충렬리. 올해는 우뚝 솟은 동학혁명기념탑이 건립된 지 11년 되는 해이다. 110년 전 이곳 석대들에는 피 비린내가 하늘과 땅에 진동했다.
전남 장흥은 동학농민전쟁 최후의 혈전을 치른 석대들 전투의 무대이자 장태 장군으로 유명한 이방언 장군의 고향이다. 공주 전투와 태인 전투에서 패한 동학 농민군은 장흥 용산 출신 이방언 장군 휘하로 집결했다. 이후 농민군은 장흥 박헌양 부사와 아전 등 관군 95명을 사살하고 강진과 병영성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1895년 1월 8일 미나미 소좌가 이끈 일본군과 관군의 연합부대와 농민군은 석대들에서 생과 사를 오가는 피 비린내 나는 살육 전쟁을 벌이게 된다.
석대들 전투에서 일본군은 구르포와 무라다시 라이플 등 최신 무기를 앞세워 3만여 명의 농민군을 처참하게 학살했다. 석대들 전투에서 살아남은 농민군은 강진과 해남으로 도망갔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일본군이었다. 해남 앞 바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일본군은 피신하는 농민군을 무참히 사살했다.
또한 장흥 인근으로 피한 농민군은 뒤쫒아 온 관군에게 붙잡혀 장흥읍 기양리, 지금의 서초등학교 운동장과 장흥 장터로 끌려나와 죽음을 당했다. 나무에 목이 매달리고 짚더미에 불을 지펴 처참하게 살육해 장흥읍을 가로지르는 탐진강에 띄웠다. 이 때 탐진강은 핏빛으로 붉게 물들었다고 한다.
1919년 3월 1일 대한민국 전국에서는 3월 1일을 맞아 만세 운동이 거세게 일어났지만 이곳 전남 장흥에서는 만세 운동이 일어나지 못했다. 이유인즉 동학농민전쟁이 끝나고 장흥에서는 농민전쟁에 참여했던 농민군의 후손을 응징하는 처절한 살육이 수년간을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장흥의 민초들은 일제의 무서운 칼날 앞에 숨죽이고 살아야 했으며 어느 누구도 감히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올 수 없었다고 한다.
1992년 장흥군 충렬리 언덕 위에 동학혁명기념탑을 세운 지 11년이 지난 오늘에서야 비로소 김인규 장흥 군수와 김태빈 장흥군의회 의장을 비롯한 군 의원들과 관군의 후손들 일부가 참여해 뒤늦은 제막식을 치렀다.
2003년 11월 장흥동학기념사업회(김현국 상임대표)가 발족하면서, 이전까지 장흥 농민회에 의해 초촐하게 치러졌던 농민군 위령제가 공식적인 기념식으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그동안 공식적인 제막식을 갖지 못했던 것은 관군의 후손과 농민군 후손 간의 보이지 않은 갈등 때문이었다. 관군의 후예들은 장흥읍 기양리 영회당에서 박헌양 부사를 비롯한 95명의 위령제를 지내왔고 농민군 후손들은 1992년 동학혁명기념탑을 건립하고 농민회와 함께 위령제를 지내왔다.
장흥동학농민기념사업회 김현국 상임대표는 "이제 지난 날의 어두웠던 과거를 깨끗이 씻고 새 시대를 맞이해 양쪽 후손들이 화합의 시대를 열어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후손으로 참석한 장흥읍 김모씨는 "그동안 서로 보이지 않는 마음의 앙금으로 서로 갈등을 풀지 못했지만 동학기념탑 제막식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만큼 모든 후손들이 선조들의 진정한 뜻을 이해하고 받들어 상생의 길로 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침부터 내리던 비는 제막식 행사가 시작되자 잠시 멈추었다. 이날 행사에서는 제막식과 위령제, 구천을 떠돌며 방황하는 영혼을 달래는 황경순 선생의 살풀이 춤사위도 선보였다.
기념탑에 오르는 돌계단의 좌우에는 장흥동학기념사업회에서 세운 만장들이 펄렁이고 있었다. 만장에는 110년 전 동학 농민군이 외쳤던 폐정개혁안 12조 "동학도와 정부가 원한을 풀고 서정을 협력한다" "탐관오리는 엄징한다" 등이 적혀 있었다.
그리고 오늘의 농촌 현실을 말해 주는 "FTA 수입개방 철폐" "쌀 수입 개방 반대" "이라크 파병 철회, 미국 반대" 등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110년 전에 외쳤던 개혁과 농민들의 아픔이 지금 이 시대에도 이어지고 있다"는 장흥군농민회 문승후 부회장의 말이 가슴 저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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