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일은 유럽연합(EU·European Union)이 동유럽 10개국의 새로운 회원국을 맞이하며 동유럽까지 외연을 확장, 유럽 통합 역사의 새로운 장이 시작되는 날이다.
하나의 유럽 시대 개막
폴란드, 체코, 헝가리를 비롯한 10개국이 유럽연합의 정식 회원국으로 승인되고 6월 선거를 통해 새로운 유럽의회가 구성되면 유럽연합은 2차 대전 이후 지속된 분단 역사를 청산하고 명실상부 '하나의 유럽 시대'를 시작하게 된다.
1951년 프랑스, 독일, 이태리,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브르크를 회원국으로 결성된 유럽석탄철강연합을 그 모태로 하고 있는 현재의 유럽연합은 경제 교류의 확대와 함께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로 위상이 바뀌었다.
이후 유럽경제공동체는 경제 교류의 확대를 넘어 공동의 외교, 안보 정책을 표방하는 정치경제공동체로 지속적으로 성장해 왔으며 2002년에는 경제 통합의 일환으로 영국, 덴마크, 스웨덴을 제외한 12개국에서 단일통화인 유로화를 도입하기도 했다. 현재의 명칭인 '유럽연합'은 1991년 이후 계속 사용되고 있다.
회원국으로는 위의 6개국 이외에 1973년 덴마크, 아일랜드, 영국이 가입한 이후 1981년 그리스, 1986년 스페인, 포르투갈, 95년 오스트리아, 핀란드, 스웨덴이 차례로 가입, 총 15개국이 지금까지 서유럽 중심의 유럽연합을 이루어 왔다.
동유럽의 10개국이 정식회원국으로 승인되면 유럽연합은 기존의 서유럽 중심에서 동·서유럽을 망라한 25개국의 회원국, 총 4억5천의 인구를 가진 거대한 정치, 경제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유럽연합의 동유럽 확장이 정치적 위상에 큰 변화를 의미한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유럽연합은 이번 동유럽 확장을 통해 냉전 종식 이후 여전히 남아 있던 동서 유럽 분단 구도를 극복하고 국제 사회에서 유럽의 영향력을 증대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이는 곧 유럽연합이 확장된 정치적 공간에 비례, 그만큼의 역할과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을 맞이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실례로 유럽연합은 동유럽 확장을 통해 정치, 경제적으로 불안정한 지역이라고 할 수 있는 발칸, 러시아 등과 경계를 접하게 되었고 앞으로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위기와 갈등 상황에 그만큼 적극적이고 효율적으로 대처해야 하는 책임을 안게 되었다.
동유럽으로의 확장... 경제적 효과는
유럽연합의 동유럽 확장을 목전에 두고 최근에 이루어지고 있는 논의들은 그 정치적 의미보다는 경제적 영향에 관한 것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10개국의 유럽연합 가입이 이미 작년 4월 유럽 의회에서 결정된 사안이기도 하지만 각국의 입장에서는 무엇보다 자국의 경제에 어떤 파급 효과를 가져올지가 중요한 관심사일 수밖에 없다.
기존의 회원국에서는 확장 이후 동유럽 지역에서 기존 회원국으로의 대규모 노동인구 이동을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이것이 기존 노동시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가 최대의 문제로 인식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새로운 가입 국가와 기존의 가입 국가 간의 임금의 차이가 워낙 크다는 것. 실례로 독일의 남부 바이에른 주와 새로운 회원국 체코의 임금 차이가 4배에 이르는 등 신구 회원국 간의 노동 임금의 차이는 매우 큰 상황이다. 따라서 새로운 노동 인구의 유입이 기존의 임금 체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회원국들에게는 유럽연합 가입이 정치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의미한다. 하지만 동시에 잠재력을 갖춘 젊은 인력이 대거 기존의 회원국으로 유출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섞인 견해 또한 존재한다. 유럽연합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확장 이후 초기 5년간 매년 20만명 이상이 동유럽에서 기존의 유럽연합으로 일자리를 찾아 이동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 인해 발행하게 될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유럽연합은 기존 국가들이 자국 노동 시장의 완전 개방을 최장 7년까지 유예할 수 있는 과도기적 조치를 마련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연합 국가 내 노동 시장의 완전 개방은 2011년 쯤에나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연합 위원회는 유럽연합 확장을 통해 소속 국가들 전체적으로 1% 이상의 경제 성장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서유럽 기업의 동유럽 진출이 이미 오래 전부터 이루졌긴 하지만 유럽연합 확장으로 관세가 없어지고 동유럽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면서 이것이 새로운 경제 성장을 가져오리라고 보여지기 때문이다.
폴란드와 독일이 최대 수혜국 될 듯
10개국의 새 회원국 가운데 폴란드가 최대의 수혜국이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어 보인다. 새로 가입하는 10개국의 총 인구 7천5백만 가운데 3천8백만의 인구를 차지하고 있는 동시에 가장 큰 경제 규모를 갖고 있는 폴란드는 이번 가입을 통해 유럽연합으로부터 대규모의 재정 지원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등 가입의 가장 큰 수혜자가 될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기존의 회원국 중에는 동유럽에 가장 인접, 통합의 효과를 근접거리에서 경험할 수 있는 독일이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또한 유럽연합의 반경이 동쪽으로 확장됨에 따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이 지정학적으로 유럽의 중앙에 위치하게 됐다. 따라서 독일 내에서는 베를린이 통합된 유럽 정치의 중심지로 성장하기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유럽 확장을 놓고 기존 회원국에서는 긍정적인 의견이 다수를 이루고 있지만 낯선 동유럽 국가들에 대한 걱정도 만만치 않다. 문제는 역시 각국간의 경제적 수준의 차이. 독일 쾰른의 독일경제연구소는 신규 가입 국가들이 기존의 국가들이 유지하고 있는 생활 수준의 절반으로 올라오는 데만 수십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하는 등 다소 비관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기존의 가입 국가와 새로운 동유럽의 유럽연합 회원국가들이 어떻게 손발을 맞추어 공동의 외교, 안보 정책을 추구할 것인가 하는 것도 그리 만만치 않은 과제로 인식되고 있다. 다수의 기존 유럽연합 국가들과 달리 동유럽의 몇몇 국가들이 미국과의 관계를 의식, 이라크전에 적극 참여했던 것도 그렇다.
유럽연합 확장이 추가로 이루어지고 하나의 경제정치 공동체를 지향하는 거대한 실험이 성공한다면 수십년 후 국적 '유럽연합', 출생지 '독일'로 독일인의 출생 기록과 신분증 기재 사항이 바뀔지도 모른다.
2차 대전 이후 시작된 '하나된 유럽'을 향한 노력의 밑바탕에는 '유럽이 하나가 되어야만 유럽에서 더 이상의 전쟁을 경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다. 냉전 시대를 거쳐 동서 분단을 넘어 반세기만에 '하나의 유럽 시대'가 시작되는 이때, 유럽은 지금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새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