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식 이화여대 교수가 쓴 책 <콜라 독립을 넘어서>에서 이런 얘기가 나온다.
박찬호나 김병현의 시합이 있는 날은 스포츠 신문이 온통 그 친구들 기사투성이다. 박찬호가 몇 승을 거뒀다느니 김병현이 몇 세이브를 기록했다느니 난리법석을 떤다. 또 박세리를 위시한 조선 낭자들이 골프를 칠 때면 온 국민이 촉각을 곤두 세운다. 이들이 승리를 하거나 우승을 하면 전 국민이 환호한다.
최 교수에게 대한민국은 스포츠 편식증에 걸린 나라처럼 보인다. 특히 해외에서 뛰는 한국 선수들에게 열광하고 그들의 승패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대한민국으로 말이다.
‘이승엽 4호째 홈런’, ‘김병현·서재응 첫 승 신고’, ‘최희섭 8호 홈런’
한 인터넷 뉴스 사이트의 주요 스포츠 머릿기사들이다.
대한민국 스포츠계의 현실은 어떠한가? “우리 나라는 인기종목, 비인기 종목이 나눠져 있다”는 경기대 고준희(수학·3학년)씨의 말은 단순한 이분법이지만 가장 정확한 이분법이기도 하다.
주요 스포츠 관련 언론매체들의 인터넷 사이트 내용 구성을 살펴보면 <스포츠서울>의 경우 야구, MLB, 축구, 농구, 스포츠종합으로 되어 있다. '스포츠종합'은 마치 종합선물세트처럼 기타 스포츠 기사가 실린다.
<스포츠투데이>도 다르지 않다. 크게 야구, 축구, 스포츠종합으로 되어 있다. 이런 상황은 일간지와 3대 방송사 홈페이지도 마찬가지다. 보수언론이라 지칭되는 ‘조중동’과 진보적이라는 ‘한겨레’를 비교해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
▲문화방송
야구- 축구- 골프- 농구- 종합 ▲<중앙일보> 야구- 축구- 농구- 배구- 골프- 기타스포츠- MLB> ▲<한겨레> 축구- 야구- 골프- 테니스- 배구·농구- 스코어보드- 경기일정. 다만, 한국방송은 ‘씨름’을 넣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이렇듯 스포츠 관련 언론들은 축구, 농구, 야구를 비롯하여 몇몇 스포츠에만 관심을 집중한다. 일본에 진출한 이승엽 선수의 경기 결과는 연일 지면에 크게 실리고 보도된다. 반면 양궁, 탁구 등은 단신이나 하단으로 짤막하게 처리된다. 올림픽 때나 효자 스포츠로 각광을 받는 스포츠가 되어 버린다.
문화방송 홈페이지에 송두원씨는 ‘여자축구에 10분의 1만 더 관심을 가집시다’라는 글을 썼다. 그는 “오늘 뉴스에서 올림픽여자축구팀이 중국에 1:0으로 졌다는 단신뉴스로만 언론에서 나오는 걸 보면서 조금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올림픽남자축구팀이 그렇게 많은 스포트라이트에 일거수일투족까지 KFA에서 신경을 써주는 반면에 여자축구는 몇몇 기자들에 얼마 없는 실업팀. … 너무나 여자축구에 대한 관심이 열악하다는 걸 이번 올림픽축구예선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다양한 스포츠들이 공존하지 못하고 일부 스포츠만에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는 상황에서 가장 큰 기능을 해야하는 것은 스포츠 신문들이다. 그러나 중앙일간지들이 운영하는 5개 스포츠 신문의 현실은 어떠한가? 오히려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평을 받고 있다. 스포츠 기사뿐만 아니라 연애오락 기사로 채워놓고 스포츠 이외의 내용이 반을 차지한다. 게다가 축구나 야구, 농구 시즌이 끝나면 스포츠기사 대신 다른 기사들이 1면을 차지한다. 이렇듯 스포츠 신문이 비인기 종목의 소외 현상을 더욱 부추긴다.
한편 스포츠 전문성을 갖춘 기자가 없다는 이유도 있다. 경기대 서경수(체육·4학년) 총학생회 체육부장은 “실질적으로 스포츠뉴스는 스포츠 분야를 잘 아는 사람이 진행하고 이 부분을 다뤄야 하는데 완전 다른 부분을 전공한 사람이 스포츠 분야를 다루는걸 보면 아주 황당하다”며 “체육부분 전문 인력이 매우 부족하다. 그래서인지 깊이가 없고 각 신문사와 방송국에서 다루는 내용들이 주요 몇몇 스포츠 종목들과 큰 메이저 경기들 위주로 집중돼 있다”라고 지적했다.
앞서 말한 경기대 고준희(수학·3학년)씨는 “갑자기 인기종목, 비인기 종목이 나눠진 현실을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다양한 스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활성화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자는 논의부터 시작해야겠지만 주류 스포츠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언론매체들부터 달라져야한다.
스포츠 매체들의 중요성에 대해 송해룡 성균관대 교수(신문방송)는 ‘우리는 왜 스포츠 신문의 문제점을 제기 하는가’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미디어 스포츠를 소비하는 행위가 최근 점점 더 우리의 삶 속으로 편입되면서 스포츠신문의 뉴스가치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그 이유는 스포츠 기사가 단순한 스포츠 경기만을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 사회규범, 커뮤니케이션 행위를 배우게 하는 다면체적인 장의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에 대한 제대로 된 교육철학의 부재 또한 국민들의 스포츠에 대한 인식을 좁게 만든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