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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쉬리> 어디에서도 '쉬리'란 물고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토종 민물고기인 '쉬리' 대신 외국 종인 '키싱구라미'가 시종 스크린을 채우고 있을 뿐.

그러나 영화와는 달리 '쉬리'를 실제 볼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바로 울진군 근남면 향곡리 228번지에 위치한 <민물고기 전시관>이다.

▲ 민물고기 전시관 입구
ⓒ 김정은
성류굴을 나와 불영사 계곡을 향해 달리는 길 오른 쪽에 아담하게 서있는 이곳은 국내 최초의 살아 있는 민물고기 전시관으로 이번 여행 중 생각지 못한 곳에서 발견해낸 보물이었다.

국내 최초의 살아 있는 민물고기전시관

▲ 민물고기 전시관 내부
ⓒ 김정은
경북 수산자원개발연구소 <민물고기 연구센터>가 정식 명칭인 이 곳은 1923년 연어 부화장 설립을 시초로 연어 인공부화방류사업이나 경제성 어종 대량 생산보급, 신품종 인공부화양식기술개발 및 교육 등을 통해 어민들의 양식업을 지원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는 토산 어종 종보존, 육성관리, 보호대상종, 멸종위기종, 천연기념물 인공종묘 생산기술을 개발하는 등 우리 토종물고기 보존 및 생산을 위한 연구를 담당하기도 한다.

이 연구소가 운영하고 있는 100여 평의 민물고기 전시관에는 쉬리, 산천어, 황쏘가리 등 평소 보기 힘든 토종물고기 50종의 수족관이 비치돼 있다. 이밖에도 민물어류의 액침표본 200여 점을 비롯, 교육자료와 연어의 생활사 회유도 등의 전시 자료를 갖추고 있다.

국내 최초의 살아 있는 민물고기 전시관에서는 우리 강에 산다는 말만 들었지, 생전 처음 보는 우리 토종 물고기를 많이 볼 수 있었다.

쉬리는 물론이고 천연기념물인 무태장어, 황쏘가리, 어름치 그리고 묵납자루, 꺽저기 같은 이름도 특이한 물고기들과 비교적 흔한 물고기인 피라미, 붕어들도 볼 수 있어 한마디로 우리 나라 담수어의 총 본산지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 그곳에 가면 살아있는 쉬리를 볼 수 있다
ⓒ 김정은
수족관 밑에 장치된 버튼을 누르면 그 물고기에 관한 생태나 습성을 알려주는 설명 자료도 읽을 수 있어 물고기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도 그 어류에 대한 간단한 상식을 알 수 있게 해 놓았다. 덕분에 나도 쉬리가 1급수가 아닌 2급수에 사는 물고기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아이들 교육장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좀 쉬었다 나가려고 의자에 앉아있는데, 어떤 분이 다가와서 물었다.

"야외 사육조는 구경하셨나요."
"아니요, 그런 곳도 있어요?"
"그럼요. 어쩌면 전시관보다 야외 사육조가 가장 큰 볼거리인데…."
"그곳에는 어떻게 가죠?"
"전시관 끝으로 열린 문을 통해 나가면 살아있는 물고기들을 더 가까이에서 볼 수 있을 겁니다. 생각나면 모이도 주세요."
"알려줘서 감사합니다."

국내 양식업의 메카 인공부화장

▲ 야외 사육조 전경
ⓒ 김정은
알려준 사람 말대로 야외 사육조는 민물고기 전시관의 또 다른 숨겨진 보물이었다. 넓은 마당에 둥글게 파여진 사육조에는 향어나 비단 잉어 같은 물고기를 실제로 키우고 있었다. 신기함에 구석구석 다니다 보니 운 좋게도 인공 부화장까지 발견했다.

▲ 인공종묘장에서 사육되고 있는 어종(1)
ⓒ 김정은
이 곳은 자라, 참게, 메기, 산천어, 금붕어와 같은 경제성 어종을 인공수정해서 태어난 인공 어종을 어민에게 양도하기 전에 잠시 키우는 곳이다.

▲ 인공종묘장에서 사육되고 있는 어종(2)
ⓒ 김정은
각 수조마다 새끼손가락 한 마디 만한 크기로 꾸물꾸물 살아 움직이는 새끼 비단잉어와 지금은 매우 보기 힘들다는 엄지손가락 만한 참게가 물 속에서 기어다니고, 손바닥 반 만한 새끼 자라가 수조 안을 슬금슬금 기어다니는 모습이 참 신기했다. 한참 정신없이 구경하고 있으려니 한 아저씨가 다가와 말한다.

"이곳은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이에요. 사람이 많으면 물고기가 스트레스를 받아 외부인 출입은 안 됩니다."
"문이 열려 있어 들어왔는데, 들어오면 안 된다니 미안합니다. 금방 보고 나갈게요."

▲ 야외 사육조 모습, 이곳에 비단잉어나 향어같은 어종이 자란다.
ⓒ 김정은
그러나 다 구경하고 나갈 동안 별다른 내색 없이 묵묵히 먹이를 주었던 마음씨 좋은 아저씨 덕분에 물고기를 실컷 구경한 후, 다시 야외 사육조로 돌아오니 이미 한 무리의 여행객들이 물고기 모이를 사서 수조에 던져주고 있었다.

하나라도 더 먹기 위해 발버둥치는 새끼 향어들의 모습이 매우 생동감 있게 보여 나 또한 물고기 모이 자판기에 500원짜리 동전을 넣으니 종이컵 한가득 모이가 담겨 나왔다.

▲ 모이에 향한 집착이 왕성한 향어 치어들의 모습
ⓒ 김정은
확실히 몸집이 작은 새끼 향어일수록 모이에 대한 집착이 남달랐다. 반면, 이미 몸집이 다 커버린 물고기들은 모이를 봐도 꿈쩍도 하지 않았다. 특히 몸집이 큰 비단잉어는 여행객들이 던져주는 모이에 이력이 붙었는지, 모이를 넣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넣으려면 넣고 싫으면 말라는 배짱인지, 여행객들이 귀찮게 하는 횟수가 많아져 괴로워서 인지 모를 일이다. 그도 저도 아니면 관광객의 구경거리로 전락한 이 수조에서 이제 그만 벗어나고 싶다는 무언의 아우성인 걸까?

기르는 어업을 묵묵히 준비하는 사람들

현대어업은 잡는 게 능사가 아니라 키우는 게 미덕인 시대라고들 한다. 그런 면에서 이곳 <민물고기 연구센터>는 눈에 잘 안 띄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미래의 양식어업 육성과 토종물고기 보존을 위한 중요한 일을 묵묵히 하고 있는 곳이라 하겠다.

번지르르하게 말만 잘하면 주목받는 이 세상에서 별 주목은 받지 못하지만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일을 차근차근 준비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 아닐까? 그들이 흘리는 땀방울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값지다는 생각을 하며 자동차는 한국의 그랜드 캐년이라 불리는 불영계곡을 향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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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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