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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버팔로를 방문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대 테러법인 애국법(Patriot Act)의 시한 연장을 거듭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20일 버팔로를 방문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대 테러법인 애국법(Patriot Act)의 시한 연장을 거듭 주장하고 있다. ⓒ AP/연합뉴스
부시 대통령은 현재 '포로학대' 악몽에 시달리고 있다. 어쩌면 부시에게 이 악몽은 대선 가도에 최대의 악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선거 관측통들은 매 선거 때마다 최대의 이슈가 되어왔던 경제문제와 더불어 올 대선은 또 하나의 빅 이슈인 이라크 문제가 당락을 판가름할 것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그동안 부시는 이라크 침공의 성공과 사담후세인의 체포 등을 내세워 '전시 대통령'의 위세를 한껏 떨쳐왔으며, 이라크전 1주년을 맞아 3월 20일 플로리다에서 가진 첫 공식선거 캠페인 때까지만 해도 이러한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부시는 당시 연설에서 스페인 등 동맹국들의 이라크 철수 선언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가겠다"고 당당하게 선언했다.

그러나 바로 이틀 후부터 부시의 이러한 기세는 조금씩 꺾이기 시작했다. 3월 22일 리차드 클라크는 <모든 적들에 대항해서>라는 책을 통해서 "이라크전이 조작되었다"고 폭로해 워싱턴 정가에 큰 파문을 일으켰으며, 3주 후인 4월 16일 닉슨의 워터게이트 추문 폭로로 널리 알려진 워싱턴 포스트의 밥 우드워드 기자가 <공격의 계획>이라는 책에서 "부시가 2001년말부터 이라크를 공격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고 폭로해 부시를 곤궁에 몰아넣었다.

그러나 이런 악재에도 불구하고 부시의 지지도는 예상보다 큰 폭으로 떨어지지 않았으며, 상대 후보인 민주당의 존 케리와 엎치락뒤치락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는 아직 인지도가 낮은 케리에 대한 부시측의 네거티브 광고가 효력을 발휘한 데다, 케리 진영이 부시의 '이라크전 실패'에 대해 지나치게 조심스럽게 대응한 데에도 원인이 있었다.

케리가 부시의 이라크전 실패를 적극 공략하지 않은 이유는 9.11이라는 초유의 비극을 경험한 미국사회의 '애국주의' 분위기 때문이었다. 그동안의 여러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부시의 지지도가 좀처럼 가라 않지 않았던 주된 원인은 실제 이러한 애국주의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분명하게 드러났다.

'애국주의' 분위기에 톡톡히 덕 본 부시

그러나 부시의 기세는 '피의 4월'을 보내면서 완전히 꺾이기 시작했다. 3월말 이라크 팔루자에서 4명의 미국 민간인이 처참하게 살해되면서부터 이라크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격화되었고, 4월에 들어서만 136명의 미군이 사망하며 이라크 사태가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미국의 여론은 '반전' 분위기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골수 공화당원들도 대선 가도에서 막상막하의 게임을 벌이고 있는 부시에게 끼칠 영향을 고려해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을 따름이지 미국이 명분 약한 이라크 진창으로부터 빨리 헤어나오기를 고대하고 있는 듯한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러던 차에 이번의 이라크 포로 학대 사건이 터진 것이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터진 이번 사건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의 정당성에 대한 질문은 물론, 특히 부시 정권과 미국의 도덕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9.11 이후의 애국주의 정서 속에서 가급적 반전 보도를 자제해오던 미국의 언론들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라크 침공의 문제점을 본격적으로 짚고나서는 분위기다. ABC, CBS 등 미국의 주요 방송들의 뉴스 앵커들은 이라크 전사자들의 이름을 큰 목소리로 호명하며 이라크전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고 있으며, 워싱턴 포스트, LA타임스 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도 거의 매일 이라크 전사자들의 사진을 1면 또는 주요 면에 크게 싣고 은연중 반전 분위기를 부추기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3일 사설에서 "이번 포로학대 사건은 부시 행정부가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아랍인들의 마음 속에 새겨진 상처를 씻어낼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라크 침공은 이미 여러 방면에서 악몽으로 보이기 시작했지만 이번 보다 더 악몽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포로학대, 부시에게 최대의 악몽"

특히 3일 워싱턴포스트의 인터넷판에서 제퍼슨 몰레이 기자는 "후세인같은 부시(George Bush as Saddam Hussein)""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이라크에서 미군의 이라크 포로학대 장면이 언론에서 보도된 이후로 국제 온라인 미디어에서 부시와 사담을 비교하는 것은 일반적인 주제가 되어 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과 영국의 이라크 보도가 부시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수상의 잔혹행위에 대한 비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에, 많은 외국 언론들은 미국 주도의 이라크 점령과 사담 후세인의 학정을 비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퍼슨 몰레이 기자가 미국 밖의 인터넷 미디어에 올라 있는 기사를 인용한 것 가운데 대략 몇 가지만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스콧트랜드의 선데이 헤럴드는 "머리에 두건을 씌운 채 손가락과 성기에 전기줄을 감아 놓고 박스 위에 올라가게 한 이라크 병사의 사진은 사담 후세인이 자행했음직한 행위라"고 적었다. "관측통들은 아브그라이브 감옥에서 자행된 잔혹행위는 이라크인들이 사담 후세인 정권 아래서 당한 고문을 연상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아랍의 알자지라 영어 웹사이트에서 다우드 쉬얀이라는 이란인은 "아브 그라이브 감옥은 사담 치하에서 고문장소로 사용되었다" 면서 "사람들은 지금 사담과 부시가 다른 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바레인 트리뷴은 "부시는 사담이 가지고 있는 모든 특성을 갖고 있으며, 고문 방법과 도구들을 포함해 사담이 가졌던 모든 것을 물려 받았다"면서 "부시는 제국주의적이고 부도덕하며 인종차별적이고 십자군적인 심성을 가졌다"고 비난했다.

요르단 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무사 케일라니는 "미군에 의한 잔학행위 사진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담 치하의 장면을 떠올리게 했으며, 수감자들을 학대하는 이러한 행위들이 과연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해 온 것을 자랑해온 미국이 취할 수 있는 방법인지에 대한 기본적인 질문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고 적었다.

홍콩의 아시아 타임스의 에산 아라리는 "이라크의 대량 살상무기를 발견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부시 행정부가 사담의 비 인간적 통치아래 있는 이라크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했다는 명분은 그런대로 용인될 만한 명분이었다. 그러나 이제 미군의 이라크인에 대한 악명높은 학대 행위는 미국이 겨우 내세운 그 침공 명분마저도 앗아가 버릴 위기에 처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이라크 해방 명분은 사라졌다"

제퍼슨 몰레이 기자가 인용한 외국 신문들의 논조는 한마디로 미군의 이라크인들에 대한 학대행위는 사담의 고문과 압제로부터 이라크인을 해방시키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했다는 미국의 명분을 통째로 없애버렸다는 것이며, 특히 인권의 가치를 주장해온 부시 행정부의 위선이 이번 사건을 통해 여실히 드러났다는 것이다.

브루킹스 연구소의 대외정책 분석가인 아이보 달더는 "이번 사건은 미국이 문명화된 시민들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수감자들을 다루지 않고 있다는 증거"라며 "우리는 부시 행정부로 하여금 이러한 행동이 다시는 용납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어떤 조치를 내리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콧 멕클렐런 백악관 대변인은 3일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대통령은 럼스펠드 국방장관에게 이번 행위의 관련자들을 처벌하라고 지시했다"면서 "사담 후세인은 그같은 행위를 조장하고 용인했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았다"라며 부시 대통령과 사담을 비교한 데 대한 반박성 주장을 했다.

결국 백악관의 주장은 이라크 포로학대가 부시에게 직접 책임이 없고 일부 몰지각한 군인들의 일탈행위에서 나온 것이라는 그동안의 주장을 되풀이 한 셈인데,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 침공을 최종 결정해 이라크 사태를 현재에 이르게 한 책임과, 그동안 근본주의적 신앙을 토대로 자신을 십자군에 비유하는 등 이라크전을 십자군 전쟁으로 인식시켜 참전 군인들에게 비 인간적 행위를 하도록 방조한 혐의를 벗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번 포로학대 파문은 이라크 사태가 악화일로를 거듭하게 되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다른 아랍국들과 국제 사회에 지원을 호소하고 있던 상황에서 불거진 것으로, 부시의 국제사회에 대한 리더십에 큰 타격을 줄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잖아도 명분없는 전쟁에 참여 하기를 꺼리던 국제사회는 '민간인 살상'과 '포로학대'의 부도덕한 전쟁에 선뜻 발을 들여 놓기가 여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국제사회, '부도덕한' 전쟁 참여 명분 있나?

아직은 대선까지 기간이 많이 남아있어 이번 사건이 향후 정치적으로 얼마나 오랫동안 파장이 지속되어 부시에게 정치적 타격을 안겨 줄지 속단하기는 이르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의 포로학대 사건은 그동안의 어떤 악재보다 부정적으로 부시에게 영향을 미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선거 관측통들은 부시 진영이 6월 30일 이라크에게 정권을 이양한 후 사담 후세인에 대한 재판을 진행하면서 사담의 잔인성을 대대적으로 부각시켜 이라크전의 정당성을 선전함과 동시에 미국인들의 애국주의에 다시 한번 불을 질러 대세를 휘어잡을 전략을 계획중에 있는 것으로 예측하고 있었다. 이번 사건으로 부시진영의 '악마 사담' 내세우기 전략은 '치명타'를 입게 된 셈이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미국민의 58%가 이라크전은 목숨을 걸만한 가치가 없는 전쟁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으며, 부시의 대통령직 직무수행에 대한 지지율도 취임이후 최저치인 46%를 기록하고 있어 부시 진영에 극도의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다.

과연 현재 "사담같은 부시"로 까지 불려지고 있는 부시 대통령이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 이번의 포로학대 악몽으로부터 헤어 나올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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