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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동생으로, 노동자로, 노동운동가로 살아온 전순옥(50)씨. 노동절 114주년을 맞이하는 여성 노동자의 현실에 대해 그는 한마디로 "참담하다"고 표현했다.

"1970년대 다락방에서 제조업에 종사하던 여성들은 지금도 지하에서 일하고 있다. 사무직 등 다른 분야에 종사한다 해도 비정규직의 80%가 여성이라는 현실은, 급변하고 있지만 여성 노동자들은 지금까지 그대로 '방치'되어 온 것이다."

16세부터 22세까지 봉제의류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했던 전순옥씨는 오빠 전태일 열사의 분신과 노동조합운동이 계기가 되어 여성 노동자 문제에 매달리게 됐다.

1989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난 전순옥씨는 1970년대 여성노동자 문제를 다룬 논문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영어 원제 They are not machines)로 2001년 박사 학위를 받고 귀국했다.

지금은 통계조차 나와 있지 않는 봉제업 등 영세 사업장에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의 임금, 생활 수준, 대안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노동운동 여성으로 중심 이동"

그가 10여년의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와서 가장 긍정적으로 생각했던 것이 여성노동조합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전씨는 "대부분 비정규직이어서 조직하기도 어려운데 여성노조를 만들고 그만큼 열심히 하고 있어 참 좋다"면서도 영세사업장이나 제조업 여성들의 노조가 조직되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현재까지 노동운동은 남성 중심, 기득권 중심의 노동운동이었고 이로부터 소외되어 온 비정규직 등 저변의 노동자는 여성인데도 여성노동자의 문제는 사회문제화 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기득권층 노동자들의 수준 역시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라고 못박는다. 17~18년씩 일한 노동자들이 하루에 12∼15시간씩 일하고 받는 4천만∼5천만원의 연봉이 결코 많은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노동조합이 대중으로부터 고립됐던 영국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노동조합이 여성, 비정규직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모성보호 등 여성 노동운동의 과제에 대해서도 실제 적용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의 오빠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쳤다. 그때도 법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적용이 문제였다. 여성 노동자 중 적용받을 수 있는 대상은 극소수인 상황에서 법이 실제로 적용되는지 여성 노동운동가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전씨는 여성 39명의 국회의원 당선에 대해 여성의원의 수는 아직 미미하다고 전제하고 "여성의원의 국회 진출은 긍정적이지만 현장 출신의 노동운동가는 최순영 당선자 한 사람 정도다. 국회에서 여성 노동자 문제를 혼자의 힘으로 바꾸기는 힘들 것"이라며 여성 노동자들의 참여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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