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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변 대가실해변에 세워진 드라마세트(1)
죽변 대가실해변에 세워진 드라마세트(1) ⓒ 김정은
죽변항 방파제에 줄지어 들어선 횟집 어항에서는 살아있는 싱싱한 울진대게가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게 하면, 영덕 대게가 원조인가, 울진대게가 원조인가 하는 논쟁부터 생각난다. 이에 대해 영덕군은 “영덕 강구∼축산면 일대 3마일 해상에서 주로 잡히는 영덕대게는 타 지역의 대게와 차이가 있다”며 원조라 주장하고, 반면 울진군은 “현재 대게의 다수가 울진에서 생산되고 있는데, 울진이 교통의 오지이다 보니 울진대게가 영덕군에 집하되기 때문에 그것이 영덕대게로 잘못 알려진 것"이라며 맞서고 있다. 누가 원조인가를 밝히기 위해 소송까지 했다는데, 외지인들이야 국내산 대게 맛에 입맛만 다실 뿐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다.

울진 대게는 어종 보호를 위해 6월~10월까지 금어기간으로 정하고 있다. 따라서 5월이 지나면 내년 1월까지는 살아있는 대게를 맛보기 힘들다. 올해의 마지막 살아있는 대게 맛을 보기 위해 한 횟집을 들어갔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삶은 대게의 살을 쏙쏙 빼먹는 느낌, 서해안에서 살이 오른 꽃게 살을 발라먹는 것과는 확실히 다른 풍미가 있었다. 특히 내장이 있는 대게딱지에 밥을 넣고 참기름을 약간 뿌려 비벼먹었을 때 혀끝에서 느껴지는 고소한 맛이 그야말로 일품이다.

드라마 <폭풍속으로> 세트장이 있는 죽변 대가실 해변

죽변 대가실 해변에 세워진 드라마 세트(2)
죽변 대가실 해변에 세워진 드라마 세트(2) ⓒ 김정은
식사 후 근처에 있는 대가실 해변에 들렀다. 이 드라마를 쓴 극작가의 고향이라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울진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만든 세트장의 풍경은 훌륭했다.

눈이 부시도록 시린 푸른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언덕 위의 집, 조그만 교회 문 위에 달린 귀여운 종, 마당에 서 있는 하얀색 그네가 그곳에 앉으면 금방이라도 움직일 것만 같다. 왼 쪽 아래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쉴 새 없이 부서지는 파도가 보이고, 멀리 그 파도가 삼켜버릴 듯 한적하고 자그만 어촌 마을이 있다. 오른 쪽에는 대숲과 어우러져 눈부시게 하얀 등대도 보인다.

우리 나라에서 드라마 세트장이 세워지는 곳이 대부분 숨겨진 비경이었다는 생각을 하다보니, 흉물스러웠던 제주도 섭지코지 <올인>의 세트장이 떠올랐다. 그것도 지난해 9월 태풍으로 파손돼 완전 철거됐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최근 일본 관광객의 증가로 다시 기념관 비슷하게 만든다고 한다. 평소에는 관리도 안하다가 태풍으로 부서져 아무 생각없이 철거했다가 다시 필요하니까 급조하는 일회적이고 근시안적인 정부정책에 착잡한 생각이 들었다.

이곳도 드라마가 끝나면 그런 절차를 밟게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그렇게 된다면 세트장 공사를 위해 희생된 자연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안겨주는 것이다.

지나가는 갈매기만이 알고 있던 죽변의 비경, 대가실 해변이 이왕 세상 밖으로 나온 이상, 지속적인 관리를 통해 지역의 명물로 거듭나기를 바란다. 한적한 어촌에서 꿈꾸던 소박한 하룻밤을 포기한 채 뒤늦게 영동고속도로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다. 운전을 하는 동안 이번 여행에서 못다했던 많은 이야기가 머리 속을 무심하게 스쳐지나가고 있었다.

제주도 섭지코지에 들어섰던 드라마 <올인> 세트, 지난해 9월 태풍 피해로 철거되었다가 최근 일본 관광객을 위해 기념관 형식으로 건립하기로 했단다.
제주도 섭지코지에 들어섰던 드라마 <올인> 세트, 지난해 9월 태풍 피해로 철거되었다가 최근 일본 관광객을 위해 기념관 형식으로 건립하기로 했단다. ⓒ 김정은
이번 여행에 마침표를 찍어야할 시간, 역사는 말이 없지만 구석구석 깃든 전설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끈질기게 살아나 파도처럼, 시처럼 밀려들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뜨겁고 진한 하나의 의미가 되어 흐르고 있었다. 끝으로 마종기의 시 '우화의 강'을 소개하며 이번 연재를 마칠까 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를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과 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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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을 그만두고 10년간 운영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파주에서 어르신을 위한 요양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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