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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블라디보스톡 다모나 경기장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서태지씨.
8일 블라디보스톡 다모나 경기장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 서태지씨. ⓒ 서태지컴퍼니
한·러 수교 120주년이자 한인정착 140주년을 맞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열린 서태지(32)씨의 공연 및 문화교류행사 참가단인 '상상체험단'이 10일 상상호와 희망호 두 대로 나눠 오전과 오후에 걸쳐 속초항으로 귀국했다. 지난 5일부터 시작된 5박 6일간의 일정은 모두 끝났다.

총 600여명의 상상체험단은 서태지씨 등 200여명의 스태프들과 함께 유람선으로 러시아로 향했고 바로 그 배를 타고 다시 귀향했다. 왕복 50여 시간. 그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역시 체험단원들은 자신들의 우상인 '서태지 오빠'의 해외 공연을 경험했다는데 큰 만족감을 보였다.

한 체험단원은 돌아오는 배안에서 기자에게 "서태지씨의 공연을 비롯 한국문화를 러시아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어 기뻤다"며 "특히 공연장에서 러시아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을 보고 감동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행사에 긍정적인 면만 있던 것은 아니다. 어두운 그림자 역시 있었다.

최영재 영사 "러시아인들 문화적 충격 받았을 것"

"이번 서태지씨의 공연은 성공적이었고 러시아인들에게 문화적인 충격을 줬다. 한·러 수교 120주년과 한인 이주 140주년을 기념하는 첫 번째 행사에서 서태지씨가 큰 반향을 일으켜 이러한 분위기가 경제, 문화, 학술분야 등으로 이어질 것이다."

주블라디보스톡 최영재 영사의 말이다. 이처럼 서씨의 8일 러시아 공연 반응은 좋았다. 1만 5천여명의 러시아 젊은이들은 록음악에 심취했다. 물론 대부분 학교 등을 통해 나눠준 초대장으로 공연을 보러왔지만, 다나모 경기장에 그만큼의 관중이 모인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러시아 관중들은 열광적인 반응을 보였다. 공연을 위해 준비된 거대한 무대는 분위기를 압도하고도 남을만 했다. 서태지 군단의 '넬' '피아'와 서태지밴드는 각각 록음악의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선보였고, 러시아 젊은이들은 자유분방한 방식으로 각자의 감정을 표출했다.

서씨의 공연이 관심을 모은 것은 러시아 현지 언론의 관심도 작용했다. 러시아 방송에서는 서씨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내보냈다고 하고. 다른 언론서에서도 이번 공연의 의미와 규모, 내용 등에 대해 자세히 다뤘다고 한다. 서씨가 유람선을 통해 러시아에 도착했던 7일 오후에는 러시아 공영 TV PFT, 라디오 REMMA등 30여명의 현지 보도진들이 취재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8일 오호 블라디보스톡의 '명동' 퍼키나 거리에서 한러 문화교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8일 오호 블라디보스톡의 '명동' 퍼키나 거리에서 한러 문화교류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이번 행사 중 블라디보스톡의 '명동'이라 할 퍼키나 거리에서 펼쳐진 한·러 문화교류 프로그램 역시 러시아인들의 관심이 모아졌다. 러시아 거주 한인 역시 이에 대해 자랑스러워했다.

퍼키나 거리에서 만난 스베따(20)씨는 풍물놀이를 보며 "한국인들의 축제를 보니 저절로 흥이 난다"며 "매우 아름답고 마음에 든다. 특히 북소리의 쿵쿵거림이 인상깊다"고 신기한듯 지켜봤다.

러시아 경찰 비협조, 운영미숙 등 문제

하지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았다. 그 첫째가 러시아 경찰의 경직된 태도다.

러시아 경찰은 사전조율 없이 공연 하루를 남겨놓은 상태에서 공연시간 30분 전인 7시 30분에 공연장 진입을 제한한다고 주최측에 통보했다. 또 밤 10시엔 무조건 전기를 끊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러시아 경찰은 러시아인들은 스탠드에서만 공연을 보게 하겠다는 제안까지 했다.

물론 이전까지 블라디보스톡 경찰은 기껏해야 최고 5천여명 규모의 행사를 경호한 경험밖에 없기 때문에 대규모 행사가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일방적인 통보만으로 일관했다는 것은 지나쳤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이날 경찰은 총 1500여명이 배치됐다. 그럼에도 공연 도중 부상당한 관객들을 모른체 하는 경찰의 태도도 이해할 수 없었다. 통역을 담당했던 극동대 학생은 "러시아 경찰은 아마 관객들이 술을 마시고 스스로 주의하지 못해 부상을 입은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라면서도 "(러시아 경찰의 태도가) 너무 심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갑자기 밀려드는 관객들 사이에서 20여명이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있다. 이 중 1명이 기절했다
갑자기 밀려드는 관객들 사이에서 20여명이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있다. 이 중 1명이 기절했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이번 행사를 주최한 서태지컴퍼니와 KT&G의 운영 미숙 또한 옥의 티로 남았다. 상당한 준비과정을 거쳤음에도 세심한 배려가 부족해 참가자들에게 욕을 먹었다.

이번 행사 실무를 담당한 KT&G는 한 광고회사에 총기획을 맡겼다. 광고회사는 각 영역별로 협력업체를 선정해 업무를 분담했다. 하지만 분야별 업무 파악이 주최측에 제대로 전달이 안 되는 등 커뮤니케이션에도 문제가 있었다. 때문에 곳곳에서 불편함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특히 체험단 수송을 맡았던 유람선 '희망호'의 '선상소동'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 150명이 들어가기엔 너무나 좁고 열악한 방에 사람들이 배정된 것을 주최측은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주최측은 배에 타기 전까지 이 사실을 체험단에게 제대로 알리지 못했고, 승선 뒤 배에서 내리겠다는 사람들이 있었음에도 무작정 출발했다.

마지막으로 서태지씨 개인의 역량에 대한 아쉬움. 한국 최고의 록커로 러시아인들에게 소개됐던 서태지씨는 공연에서 성량의 한계를 드러냈다. 물론 여러 이벤트로 공연장 분위기는 고조됐지만, 야외무대를 압도할만한 카리스마를 보이지는 못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번 공연을 본 한 전문가는 "전체적으로 훌륭했음에도 힘이 떨어진 듯한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해외 진출을 꾀하고 있는 서씨가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다.

나는 사건을 몰고 다니는 기자?
[취재후기] 우여곡절 숱했던 블라디보스톡에서의 날들

▲ 서태지의 공연이 펼쳐진 블라디보스톡 현장.
ⓒ강이종행

사건을 몰고 다니는 사나이?

위의 말은 이번 '서태지 라이브 인 블라디보스톡'을 취재한 기자를 일컫는 것이 아닐까. 기자는 이번 취재기간 동안 수차례 사건(?)발행 현장에 현장에 있었다. 그 경험을 들려주려 한다.

첫 사건은 6일 오후 러시아행 유람선 '희망호'에 타면서 시작됐다. 이번 행사 취재에 나선 기자들은 공식적으로 22명. 나머지 기자들은 모두 다른 배인 '상상호'에 탑승했지만, 기자는 '태극기 휘날리며'의 강제규 감독과 세계적 탐험가 허영호 대장의 인터뷰를 위해 희망호에 올랐다.

윙윙거리는 엔진소리와 함께 희망호가 출발한다. 한 15분쯤 지났을까. 밖을 보니 여전히 속초항이다. 멈췄네. 이상한 생각이 들어 나가보니 난리가 났다. 여기저기 흥분한 체험단들이 눈에 띄었다.

"내리고 싶단 말야"는 목소리는 절규에 가까웠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150명의 인원을 수용할 수 없는 열악한 환경의 방에 여성 체험단원들을 배정했다는 것. 이에 대한 정확한 공지와 대안 없이 무조건 출발했기 때문에 배를 멈춰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주최측과 체험단 대표간의 협상이 늦어져 배는 무려 3시간 동안 공해상에 떠있어야만 했다.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도착한 숙소

우여곡절 끝에 러시아행 희망호는 한국을 떠날 수 있었다. 만하루가 지난 7일 밤 8시 30분경(현지시간) 러시아 블라디보스톡항 도착. 하지만, 승선한 사람들은 배가 도착한지 6시간만인 새벽 새벽 3시에야 하선할 수 있었다. 먼저 도착한 상상호는 9시께 하선했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보니 모 방송사 중계차 기사가 차량은 희망호에 두고 상상호를 타고 러시아에 도착한 후 늦게 도착한 희망호를 기다리지 않고 호텔로 간 것. 때문에 두차례나 러시아 입국 심사관이 배에 올랐다가 퇴근하는 바람에 그런 일이 발생했다고 한다.

게다가 본 기자의 이름이 수속에 문제가 됐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여권에는 '이종행'으로 돼 있는데 왜 '강이종행'을 쓰냐는 것. 이에 대한 설명을 위해 시간이 지체됐다고 한다.

이때문에 결국 행사 당일인 8일 새벽에야 숙소에 도착해 잠을 거의 자지 못하고 일정을 소화해야만 했다.

기자가 만난 해프닝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8일 오후 서태지 밴드의 공연이 벌어진 다나모 경기장. 기자석은 스탠드에 마련돼 있었다. 기자는 러시아 젊은이들의 반응과 여타 공연장 상황취재를 위해 그 자리에 앉아있지 않고 일어나 돌아다녔다.

오후 7시 30분. 경기장 동쪽 문이 10여명의 경찰에 의해 닫혔다. 경기장 밖에는 수백명의 젊은이들이 입장하지 못한 채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조금 열려진 철제문 틈 사이로 순식간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순간 철제 바리케이드가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수십명의 사람이 쓰러졌고 현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다행히 많은 사람이 다치진 않았지만 위험한 순간이었다. 이 역시 다른 취재진들은 보지 못하고 기자만 목격했던 장면이다.

본의 아니게 불법체류자 된 기자

이 정도만으로도 나름의 기억이 남을 취재였을 텐데 귀국을 위해 9일 오전 유람선에 오르는 순간 또 문제가 생겼다. 배 입구에는 러시아 국경수배대원들이 탑승자격이 있는지 점검을 한다고 했다. 모두들 간단한 확인절차 뒤 승선했다. 하지만 기자는 그렇지 못했다.

수비대원은 러시아어로 여권의 한 페이지를 편 채 계속 뭐라고 말을 이어갔다. 잘못된 것이 있나보다. 급히 통역원이 왔고 자초지종을 알아봤다. 그가 지적한 잘못은 기자의 여권에 '입국심사필증'이 찍혀있지 않다는 것. 희망호에서 내릴 때 단체로 확인을 하다가 기자의 것만 누락시켰던 모양이었다. 결국 기자는 그 동안 '불법체류자'였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고 본인들의 실수임을 확인한 러시아인들은 곧 입국심사관을 데리고 왔고, 그 자리에서 '입국심사'와 '출국심사'를 한꺼번에 받을 수 있었다. 기자의 사연을 들은 사람들은 "우여곡절 끝에 러시아 취재를 마쳤네"라며 웃음과 박수를 보냈다. / 강이종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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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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