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군 남면 가천마을에 가면 간혹 막걸리를 빚어 파는 집이 있다. 지난달 말 남해 팸 투어 이튿날 가천 마을에 들렀다. 지난 1월 말 가천 마을 갯바위에서 서포 김만중 기념 사업회 김성철 회장이 따라주던 막걸리 맛이 생각나 입안에는 벌써 침이 고여있었다. 투어를 나온 사람들 모두가 우리 나라에서 가장 잘 생겼다는 가천 암수바위 앞에 어슬렁 거리며 나타날 때쯤 난 슬그머니 가천할매 막걸리 집으로 들어갔다.
막거리 맛이 제법 시원하고 감칠 맛이 있었다. 이렇게 전통적인 양조방식으로 막걸리를 빚는다면 얼마든지 막걸리의 시장 경쟁력이 살아나리라. 사람들이 하나 둘씩 가천할매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천마을에 와서 막걸리를 마시지 않고 그냥 가면 도로교통법 위반으로 갈린다는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은 모양이다.
가천할매 막걸리 집 주인이신 조막심 할머니(76)는 일제 때부터 막걸리를 빚어 오셨다는데, 본격적으로 빚기 시작한 것은 4년 쯤 됐다고. 살짝 산감 이야기를 물어봤다.
"할머니, 산감한테 혼난 적 없어요?"
"왜 없어요? 산감이 오면 담근 술 감추려고 함지박을 이고, 지게에 지고 해서 논둑으로 달려가곤 했지."
그 시절을 더듬는 할머니의 눈빛이 아슴해진다. 할머니는 같이 간 남해군 문화사랑회 회원들이 단골이라고 반기며 생새우무침 두 그릇을 서비스 안주로 내놓으셨다. 한 잔을 마시니 갈증이 풀리고, 두 잔을 마시니 오관이 열리며 석 잔을 마시니 시 박목월의 시 <기계 장날>이 떠오른다.
아우 보래이.
사람 한 평생
이러쿵 살아도
저러쿵 살아도
시큰둥하구나.
누군
왜, 살아 사는 건가.
그렁저렁
그저 살믄
오늘같이 기계 장도 서고.
허연 산뿌리 타고 내려와
아우님도
만나잖는가베.
안 그런가 잉
이 사람아.
누군
왜 살아 사는 건가.
그저 살믄
오늘 같은 날
지게목발 받혀 놓고
어슬어슬한 산비알 바라보며
한잔 술로
소회도 풀잖는가.
그게 다
기막히는 기라
다 그게
유정한기라.
*기계는 포항에 있는 지역 이름.
가천 마을은 언제 바라봐도 정답다. 너무 커서 사람을 압도하지 않으며, 비스듬히 누워 응봉산과 설흘산에 어깨를 기대고 있어 정답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