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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불법찬조금 문제로 교육계가 떠들썩하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경남지부와 마산창원학교운영위원협의회는 지난 12일 오전 경남도교육청 기자실에서 '불법찬조금 사례와 모범사례'를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불법찬조금 이야기가 나오면, 어찌 된 영문인지 불법 운운하는 일인데도 문제를 인식하고 대처하는 방식은 학교와 학부모가 많이 다르다.

특별히 건전하고 바른 인성을 길러야 하는 교육 공간이 이러할진대 애초부터 신뢰를 주고받는 교육공동체를 이루기란 멀고도 험한 것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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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단체, 학교 불법찬조금 모금사례 공개

학교불법찬조금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학교불법찬조금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 김현옥
대체로 학교 예산에는 청소용품 구입비가 책정돼 있다. 그럼에도 학기가 시작되면 학부모들이 자비를 들여 청소용품이나 선풍기를 사다 놓는다. 그러나 이마저도 관리 소홀로 학부모들이 매년 같은 비품을 사다 나르는 진풍경이 재연되고 있다.

학교행정실에는 학교발전기금 접수처라는 현판이 걸려있지만, 학부모 대다수는 이곳을 이용하기를 꺼리고 비품을 사서 곧장 교실로 가져간다. 그러다보니 이것들은 학교 비품으로 등록돼 관리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 이유는 학급 비품 구입을 학부모가 한다는 데 있다. 학부모들은 관례적으로 이 정도의 비품 구입은 학부모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학급 어머니회 중심으로 돈을 걷어서 마련한다.

책정된 학교 예산을 쓰지 않고 학부모들이 대신 돈을 쓰면 원래 책정된 예산은 어떻게 쓰여질까? 알 수 없다. 알 수 없다는 데 그 문제가 있다. 학교예결산을 심의해 본 사람은 대체로 학교에서 세부 항목없이 예결산안을 준다는 것과 이러한 두루뭉술한 안을 가지고 심의하는 것이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 것이다.

기자회견 후 경남 교육청 감사실에서 감사를 요청하고 있다
기자회견 후 경남 교육청 감사실에서 감사를 요청하고 있다 ⓒ 김현옥
학부모회 회비도 사업을 세워서 예산이 집행되는 것이 아니라서 돈의 쓰임새가 불투명하다. 학교예결산은 계획대로 세워지고 투명하게 집행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부모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모든 물품이나 돈은 행정실의 학교발전기금 창구를 통해서 들고 나가야 한다. 학교발전기금 외에 일체 돈을 할당하거나 반강제로 걷는 모든 행위가 불법이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에 만연한 접대문화가 학교라고 예외는 아니다. 아이들 회장선거를 보더라도 어른들의 그것을 그대로 흉내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학부모들이 낸 학교불법찬조금은 자율학습비, 소풍, 스승의 날, 수련회, 체육대회 등의 명목으로 많이 쓰여지고 있다.

이것은 모두 교사 접대비로 들어간 돈이다. 인격으로 만나야 할 교육현장에서 접대비가 관례적으로 들어가야 할 이유가 없다. 일반 사회에서도 접대문화 때문에 얼마나 많은 비리가 저질러지고 있는가?

혹시 학부모들이 이런 접대문화를 교사에 대한 예우나 존경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대다수의 학부모들은 아직까지 그들이 몇 번 권유하더라도 교육적인 소신을 밝히고 자신의 원칙을 지키는 교사를 존경한다. 이는 적어도 학교에서 만큼은 뇌물성 접대문화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렇고, 또 바른 교육환경 속에서 아이들이 커가기를 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학년 초 학부모총회에 오는 학부모는 대체로 학부모회나 기타 다른 학부모 모임에 가입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이다. 가입 의사가 없는 학부모는 학교에 가기를 꺼린다. 자녀의 교육 문제를 상의하고 협력해야 할 자리가 왜 학부모회 가입 유무에 따라 참석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이 돼 버린 것일까?

불법찬조금 때문이다. 불법찬조금이 존재하는 한 건전한 상식을 가진 학부모들은 학교에 가길 꺼려 할 것이다. 아직까지도 어느 학부모가 '학교운영위원'이라고 말하면, "돈이 많이 들어갈텐데 어떻게 감당하느냐"는 동정의 시선을 보내는 것이 우리 교육 현실이다.

진주 주약초등학교 최동한 교장이 말대로 찬조금 근절 및 잡부금 없이 일체의 학교운영비를 학교 예산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교사에 대한 예우를 말하기 전에, 아이들에게 부끄러운 행동인지 아닌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스승의 날에 비싼 선물을 준비하는 학부모나 받는 교사는 그것으로 인해 혹시 부모가 없거나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스승의 날 선물을 챙기지 못한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행동이 아닌지 따져보길 바란다.

불법찬조금 마련 외에 학부모들이 학교해셔 해야할 일은 참 많다. 아이들이 먹는 급식이 위생적이며 균형이 잡힌 식단인가를 살피는 일, 학생들이 지켜야 할 생활 규정을 아이들이 실천할 수 있는 민주적인 규정으로 바꾸는 일, 체벌의 교육적인 효과를 따져서 바로 세우는 일, 학교 도서관을 활성화시키는 일, 그 외 교복공동구매나 값싸고 질좋은 앨범 만들기 등….

몇 학교의 바람직한 학교 운영 사례는 학교장의 의지와 결단에 힘입은 바 크다. 하지만 불법찬조금에 있어 개인의 노력보다 교육 당국의 책임있는 자세와 엄중 조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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