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젊은 선생님을 더 좋아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젊은 선생님이 더 잘 가르쳐서 좋아하는 걸까?
최근 호주의 한 대학이 그 의문에 대한 연구결과를 발표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결론부터 밝히자면 "학생들이 좋아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나이든 교사가 더 잘 가르친다"는 것.
경륜이 젊음보다 더 중요하다
뉴잉글랜드대학교 부설 교육문제연구소가 2001년 1월부터 3년 동안 NSW주의 공립학교들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상위 50위권 안에 든 학교들 대부분이 나이든 교사들의 축적된 지식과 열의에 힘입어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고참교사들의 원숙함과 교육에 대한 확고한 철학, 사명감 등이 더 높게 평가된 것. 평가기준에는 해당학교 학생들의 상급학교 진학 결과와 교육을 통한 인성개발, 교육발전 기여도 등이 포함됐다.
보고서가 밝히고 있는 가장 이상적인 교사의 연령별 구성은 나이든 교사와 젊은 교사가 혼합된 형태다. 젊은 교사들의 열정이 일정 수준의 경륜으로 승화될 때까지 선배교사들이 후배교사들을 이끌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박봉과 열악한 근무여건 때문에 대부분의 남자 교사가 60세 이전에, 여자교사가 55세 이전에 교직을 떠나고 있어 교육계가 바라는 자연스런 교사의 세대교체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한편 앤드류 랩쇼기 NSW주 문교장관은 "존 페그 교수 팀의 연구가 구체적인 사례중심으로 진행되어 만족스럽다. 이번 조사결과를 의회에 보고해서 나이든 교사들이 조기에 퇴직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호주교육제도는 세계 최고 수준
연구결과를 좀 더 자세하게 알아보기 위해서 5월 13일, 교육문제연구소의 책임자인 뉴잉글랜드대학교 존 페그 교수를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페그 교수와의 일문일답.
-이번에 발표된 보고서가 최종적인 결론을 담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NSW주 문교성의 요청으로 2000년 1월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연구가 끝나는 기한은 2004년 11월까지인데 정부와 언론에서 중간보고를 요청해 개략적인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최종연구결과는 12월에 발표될 예정인데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연구비로 정부에서 1백만 호주달러나 지급했는데 연구규모가 그렇게 컸나?
"그렇다. 교육정책을 연구하고 결정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대규모의 연구팀을 구성해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연구하느라 많은 예산이 소요됐다."
-무려 4년 동안이나 교육문제를 연구할 정도로 호주의 교육제도에 문제가 많은가?
"그렇지 않다. 나를 비롯한 많은 교육전문가들은 호주의 교육제도에 대해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교사들이 다른 직종에 비해서 너무 빨리 은퇴하는 것으로 조사되어 그 방책을 세우기 위한 연구였다."
-학부모나 학생들도 나이든 교사들의 기여도가 높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신선하고 패기 넘치는 젊은 교사들을 여전히 선호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은?
"그건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일 뿐이다. 별다른 대책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문교성이나 교사협회 등에서 나이든 교사의 가치를 더 많이 알려야한다고 촉구했다."
-지금 세계는 광속(光速)으로 변화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과 첨단과학 분야는 젊은 교사들이 훨씬 우위에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 그러나 연구결과에 의하면 그 분야조차도 교수법에 따라 학생들의 학습성취도가 달라진다. 나이든 교사들은 오랜 경험을 통해서 보다 효과적인 교수법을 알고 있다."
-보고서에 명시된 것 외에 구체적인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교사는 마치 홈 닥터 같은 존재다. 학생 개개인의 성장과정을 파악하고 있어야 제대로 지도할 수 있다. 나이든 교사들이 갖고있는 자기만의 강의노트도 큰 무기다. 또한 고등학교 졸업시험 등의 중요한 시험을 채점한 경험도 나이든 교사들의 강점이다. 그들은 주요시험의 출제경향을 채점하면서 파악한다."
학생들에게 폭행 당하는 교사도 있어
보고서를 검토한 NSW 학부모연합의 데이비드 기브린 공보관은 "조사결과에 대체로 공감한다"라고 밝혔다. NSW주 교사연합의 기관지를 만들고 있는 데니스 롱 편집장 또한 "아주 흥미로운 조사였으며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지난 5월 13일, 데이비드 기브린 공보관과 데니스 롱 편집장에게 몇 가지 동일한 질문을 던져보았다. 다음은 두 사람과의 질의응답 요약.
-나이든 교사와 젊은 교사의 이상적인 팀 구성 형태는?
(기브린 공보관) "균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젊은 교사를 여전히 선호하는 학생들의 정서도 존중해주어야 한다."
(롱 편집장) "교사의 경륜은 교육의 질을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호주의 교사들은 당국이 요구하는 엄격한 자격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호주에선 유난히 교사들의 파업이 자주 발생한다. 이유가 뭔가?
(롱 편집장) "대부분 급여인상 투쟁이다. 호주교사들의 급여수준은 업무량이나 전문성을 감안할 때 턱없이 낮다. 급여문제의 해결은 교육의 질을 높이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기브린 공보관) "교사들의 잦은 파업으로 학생들이 수업에 지장을 받는 것은 안타깝지만, 교사들의 생존권 확보를 위해서 학부모들은 기꺼이 지원하고 있다."
-보도에 의하면 학생한테 폭행 당하는 교사도 있다는데.
(롱 편집장) "극히 드문 일이지만 교사가 학생에게 폭행을 당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시드니 서부에 위치한 한 고등학교에선 교사들이 경찰이나 사설경비원의 배치를 요구한 적도 있다."
(기브린 공보관) "정치인들은 선거 때가 되면 '건강정책과' 함께 '교육정책'을 들먹이는데 선거가 끝나면 예산이 부족하다는 말만 한다. 교사의 신변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한국은 자주 바뀌는 교육정책 때문에 논란이 많다. 호주의 교육시스템은 어떤 방식으로 결정되며 통상 얼마나 오랫동안 유지되나?
(롱 편집장) "이번 사례에서 보듯이 충분한 연구조사와 의회토론을 거친 후에 정책이 확정된다. 최근엔 HSC시험제도(한국의 대학수능시험과 비슷한 제도) 등이 자주 바뀌었다."
(기브린 공보관) "교육제도는 시대의 변화에 맞춰서 불가피하게 바꾸어야하는 부분이 있다."
―최근에 존 하워드 총리가 지나치게 진보적(좌파적)인 교육을 시키는 공립학교의 젊은 교사들을 비판했데, 동의 하나?
(기브린 공보관) "학부모들 사이에선 '터무니없는 비판이다'라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반복해서 말하지만 호주교육은 세계최고의 수준이다."
(롱 편집장) "그 문제는 교사연합뿐만 아니라 봅 카 NSW 주 총리나 앤드류 랩쇼기 교육장관조차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다. 오히려 하워드 총리의 지나치게 우파적인 발상이 문제다'라고 비판했을 정도다."
한국출신 유학생에게도 영향 미쳐
세계화의 추세를 외면할 수 없는 아시아 국가들이 교육개방정책을 채택하면서 호주는 세계적으로도 손꼽는 교육수출국가로 부상했다. 조기유학생을 포함해서 약 2만명을 헤아리는 한국출신 유학생들이 공부하고있는 호주의 교육정책은 꼼꼼히 검토해야 할 사항이다.
또한 나이든 교사와 젊은 교사의 구성비율을 놓고 호주교육당국이 장기간 연구조사해서 얻은 결과를 한국의 교육당국이 참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뉴잉글랜드대학교 교육문제연구소의 Web site는
fehps.une.edu.au/education/crilt다.
존 패그 교수 팀의 연구결과는 이미 호주언론을 통해서 자세하게 보도됐다. 해외에선 처음으로 한국에 자신들의 연구결과가 소개된다는 사실에 고무되어 패그 교수는 장시간 인터뷰에 응했다. 그 중에서도 다음과 같은 말은 두고두고 음미할 만 하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지만 교육의 가치나 중요성은 변함이 없다. 결국 교육을 통해서 인류의 유산이 다음세대로 전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