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은 기자] 영화배우 김진아(41)씨가 엄마가 된다. 출산이 아닌 입양을 통해서. 입양기관을 통해 우연히 만난 아기를 위탁해 키우던 그는 ‘진짜 엄마’가 되는 절차를 밟고 있다. 가정위탁으로 만난 아기와 ‘엄마와 자식’ 관계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김씨는 7개월 전 가정위탁으로 만난 아기(마태오, 생후 11개월)와 ‘엄마와 자식’ 관계로 다시 만나기 위해 입양 절차를 밟고 있다. 지난 2000년, 외국인 남편 케빈 오제이와 결혼한 김씨는 임신 2개월만에 유산을 한 뒤 임신에 어려움을 겪자 위탁모로 자원봉사를 하며 입양의 꿈을 키워왔다.
김씨는 “지난해 10월, 4개월 된 아기를 가정위탁해 키우기 시작했고, 현재는 입양의 마지막 절차만 남겨둔 상태다. 간절히 바랐던 아기인 만큼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많은 공부를 하고 있다”며 “입양을 결심하기까지 갈등과 걱정도 많았지만 공개입양을 통해 아이와 부모가 감당해야 하는 아픔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전했다.
유산 아픔 치유 위탁모 선택...봉사활동서 더욱 간절해져
“작년 10월 마태오와 처음 만났어요. 성가정입양원의 바자회에 갔는데 눈을 뗄 수가 없는 아이가 있었거든요, 그 아이가 이제 곧 ‘우리 아들’이 된답니다.”
김진아씨는 지난 2000년 케빈 오제이(42·리번 브라더스 수석부사장)씨와 결혼했다. 뒤늦게 꾸리는 가정이기에 이들 부부는 보다 많은 아이들에게 사랑을 나눠주고 싶어 연애시절부터 입양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눴다. 다만 연애시절에는 자신이 임신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2명은 낳고 1명은 입양을 해, 3명의 아이를 키우겠다는 야무진 꿈을 꿨다.
그러나 임신은 쉽지 않았다. 시험관 아기도 시도해 봤고, 좋다는 약도 다 먹었지만 매번 실패로 돌아갔다. 온갖 노력 끝에 갖게 된 아기는 임신 2개월만에 자연 유산됐다. 아기에 대한 열망이 강했던 만큼 아픔과 좌절은 컸고,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는 위탁모가 되는 것을 선택했다.
위탁모로 봉사활동을 시작하기 전만 해도, 입양은 사실 부부의 머리 속에서만 존재했다. ‘내 아이’가 생긴 후에나 생각해 볼 문제로 미뤄 놓았고, 입양은 가정을 이루는 차선일 뿐 최선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이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입양에 대한 막연함이 많이 사라졌어요. 아기들의 맑은 눈을 바라보고 있으면 복잡한 생각들은 다 사라지고 하루 빨리 입양해서 사랑을 듬뿍 주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거든요.”
이들 부부는 아이를 낳고, 입양을 하겠다던 계획을 수정했다. 임신과 입양의 순서를 뒤바꾸기로. 그러나 입양은 어려웠다. 남편이 외국인인 까닭에 입양 자격부터 제한당했다. 절차도 까다롭고 어려웠지만 정작 그를 힘들게 한 것은 ‘입양을 하겠다’고 결심한 후 마음에 이는 동요였다.
‘입양은 떳떳하고 아름다운 일’...공개입양 고집
“우리 아들이 성인이 된 다음에는 생부모를 만나게 해줄 생각이에요. 아이가 타고난 운명이 있는데 입양부모라고 해서 마음대로 뜯어고치고 변경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렇지만 입양부모가 되면 늘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변수를 안고 가야 한다는 사실이 큰 부담으로 다가왔죠.”
‘어느 날 돌연 친모가 나타나지 않을까’ ‘사춘기 때 정체성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까’ ‘입양이 될 수밖에 없었던 환경에 좌절하지 않을까’ 등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아픔의 가능성에 늘 마음 졸이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두려웠다. 입양부모가 된다는 것은 훤히 보이는 가시밭길을 맨발로 걸어가는 것과 같은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김씨는 더욱 공개입양을 고집했다. 아이와 부모가 감당해야 하는 아픔을 최소화하는 방법은 아이에게 ‘입양은 떳떳하고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자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남편 주변에 입양을 한 부부가 많았어요. 그 중 모범적인 입양사례로 꼽을 만한 부부가 있는데, 이 부부는 아기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아들아, 네가 우리 가정에 입양이 되어 우리는 너무 행복하고 고맙단다”하고 말을 해줬더니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무렵부터는 입양을 자랑스러워하고 자기 스스로 ‘입양은 아름답고 축복된 일’이라고 받아들였대요.”
좋은 입양부모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그는 사실 자신이 입양부모인지, 친부모인지 헷갈린다고 한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맺는데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마태오가 입양된 후 이들 부부의 삶은 180도 달라졌다. 생활의 중심에는 늘 마태오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보는 사람마다 얼굴이 좋아졌다고 해요. 마음이 행복하면 얼굴에도 나타나는 모양이에요. 순간순간 너무 행복한 느낌을 받아요. 충만한 가정을 이루고 있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좋은 부모 되기 위해 공부중...하루하루가 웃음꽃 생기 가득
누군가 지금까지 가장 잘한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그는 서슴없이 ‘입양을 결심한 일’이라고 말할 것이라고 한다. 입양은 사랑을 주는 일이기도 하지만 준 사랑의 배만큼 받을 수 있는 축복된 일이기 때문이다.
김씨가 아기 사랑에 푹 빠질 수 있었던 것은 남편의 도움도 컸다. 남편 케빈 오제이씨는 매일 아침 아기의 첫 우유를 직접 타 먹인다. 아무리 바쁜 일정이 잡혀 있더라도 하루 30분 아기와 눈을 맞추고 우유를 먹이는 데 투자한다. 그는 유아기부터 일정시간 아기와 교감을 나누는 것이 아빠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오제이씨의 사랑만 유난스러운 것이 아니다. 김씨는 감기 기운만 있어도 행여 아이가 감기라도 걸릴까봐 각종 감기약을 미리 챙겨 먹는다. 아기가 건강하려면 엄마부터 ‘무조건 건강해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다.
김씨는 아기가 집에 온 이후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겠다며 푸념 반 자랑 반을 늘어놓다가 “내년쯤 딸도 한 명 입양을 할까 생각 중”이라고 말한다. 사랑이 필요한 사람끼리 부모와 자식의 이름으로 만날 수 있는 입양은 ‘가장 아름다운 일’이라고 절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입양을 버려진 아이를 호적에 올리는 단순한 작업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입양은 부모와 아이가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오랜 시간 준비하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죠.”
김진아씨는 입양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며 입양을 통해 행복한 가정을 꿈꾸는 부부들에게 스스로 입양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을 당부했다. 입양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축하받아 마땅한 일이기 때문이다. 또 혈연이 아닌 사랑으로 맺어진 가정도 ‘똑같은 가족’으로 인정받는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 | “숨김없이 밝히는 당당한 입양을” | | | 홀트아동복지회 ‘입양의 날 제정 걷기 대회’ | | | |
| | | ⓒ우먼타임스 김희수기자 | 건전한 입양문화 확산을 위해 ‘입양의 날’ 제정을 촉구하는 행사가 열렸다. 지난 11일 오전 광화문 열린시민마당에서 입양부모와 위탁모, 입양을 기다리는 아동 등 30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입양의 날 제정 걷기 대회’를 개최했다.
미국의 경우, 지난 1996년 매사추세츠 주시사가 ‘입양주간’을 선포한 후 입양에 대한 법적, 제도적 정비에 가속도가 붙었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11월을 입양의 달로 선포하고부터 입양이 더욱 확산됐다. 홀트아동복지회가 ‘입양의 날’ 제정을 주장하는 것도 입양의 날 제정을 통해 제도적인 뒷받침이 병행된다면 입양문화가 더욱 확산될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관심·제도적 지원으로 국내입양 확산기대
국내입양부모협회 전순걸 대표는 “국내 입양문화는 여전히 사회적 관심이 요구되는 상황이고, 정부의 지원도 미비한 형편”이라며 “이 자리가 새로운 입양문화를 제정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홀트아동복지회는 “매년 친부모가 양육을 포기한 아동이 6000여 명에 이르지만 이 중 4000여 명만이 입양을 통해 가정을 찾고 나머지 아동들은 아동시설에서 자라고 있다”며 “입양의 날을 제정해 입양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해소하고 국내 입양도 활발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아이들이 탄 유모차 50여 대를 앞세우고 입양의 날 제정을 촉구하는 피켓과 풍선을 든 채 안국동 로터리, 종로 1가를 거쳐 세종문화회관까지 행진했다. 행사에 참가한 위탁모와 입양을 계획하고 있는 예비부모 등은 입양에 대한 선입견을 버리고 입양을 건전한 사회문화로 확산시키자는 데 뜻을 모았다.
선입견 버리고 건전문화로 인식...축복받게 해야
또 이날 행사에는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입양의 뜻을 밝힌 영화배우 김진아씨 부부가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김진아씨는 “사실, 생각보다 입양은 어려운 것”이라고 운을 떼면서 “그러나 아이들에게는 사랑과 관심을 줄 수 있는 가정이 필요한데 입양이 바로 가정을 만드는 한 방법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사랑을 실천하는 부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비밀리에 입양이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입양을 한 가정 스스로 입양을 자랑스럽게 알리고 주변의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했다.
참가자들은 진행자의 선창에 따라 “우리는 모든 아이들이 가정에서 자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아이들이 국내에서 입양되기를 소망합니다. 입양이 가족을 이루는 하나의 방법으로 인정받기를 소망합니다. 입양아들이 차별 받지 않는 사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입양가정이 축복 받기를 소망합니다”라고 외친 뒤 소망을 담은 풍선을 하늘 높이 날렸다. / 우먼타임스 이재은기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