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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항일전시관
제주항일전시관 ⓒ 김강임
제주시에서 동쪽 12번 도로를 타고 가다보면 조천 만세동산이 있다. 만세동산 부근에 이르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외침' 소리에 발길을 멈춘다.

잠시 차에서 내려 만세 동산에 올라선다. 그러나 만세동산은 말이 없다. 제주도에서 처음 만세운동이 벌어졌던 조천 만세동산. 많은 사람들과 차량들의 행렬이 자주 이 곳을 스쳐 지나지만, 사실 나 자신도 무심했다.

그래서 제주항일기념관을 찾았다. 과거를 모르고 현재를 살아갈 수 있을까? 역사를 모르고, 당시 역사의 현장에서 피와 땀을 흘렸던 사람들의 고마움을 얼마나 오래 간직했던가?

만세동산에 오르면 동쪽으로는 제주 바다가 보이고 서쪽으로는 고즈넉이 누워있는 한라산의 모습이 한눈에 보인다. 그러나 한라산은 말이 없다.

제주항일전시관 전시 사진
제주항일전시관 전시 사진 ⓒ 김강임
1919년 온 나라가 3·1 독립운동으로 떠들썩할 때, 이곳 만세 동산에서도 만세 운동이 벌어졌다.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해녀들부터 시작하여, 제주청년회들이 한자리에 모여 만세를 불렀던 조천 만세동산. 그러나 지금의 만세동산은 그들의 염원을 알기라도 하듯 기념탑이 우뚝 하늘을 찌르고 있다. 마치 그날의 함성을 전달이라도 하듯.

입구에 전시돼 있는 대형 사진에서 느끼는 감정 또한 가슴 뭉클하다. 사진 속에 나타나는 태극기의 물결. 그리고 양손에 들고 있는 태극기를 보며, 잠시 바쁜 일상으로 잊고 살았던 겨레의 소중함을 깨닫게 한다.

제주항일전시관 기념탑
제주항일전시관 기념탑 ⓒ 김강임
기념탑의 부조를 보기 위해서는 하늘높이 고개를 쳐들어야만 했다. 하늘을 찌를 듯 세워진 기념탑의 부조 앞에 다가서니, 내 키가 너무 작아 보였다. 어디 키만 작았으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그리고 묵념을 하였다. 굳이 향로에 향불을 피우지 않더라도, 앞서간 선열들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편히 잠재워줬으면 좋겠다.

이렇게 진지하게 묵념을 해 본적이 있었던가? 언젠가 광주 망월동 5·18 국립묘지에 갔을 때도 그러했다. 가슴에 진하게 파고드는 뭉클한 감정을 다시 한번 느껴보는 순간이다.

제주항일전시관 전시물
제주항일전시관 전시물 ⓒ 김강임
제주항일전시관 들어서자, 5인의 군상 상징조형물이 인상적이다. 5인의 군상조형물은 제주도의 지형을 8각형으로 표현한 계단 위에 험난하고 거세게 밀어닥치는 파도로 표현을 했는데, 이에 저항하는 제주인들의 항일정신을 5인의 군상으로 상징화하였다. 그리고 아기와 함께 정면을 응시하는 왼쪽 모자 상은 후손들에게 영원히 계승 될 자주독립 정신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였다.

제주항일전시관 5인의 군상 상징조형물
제주항일전시관 5인의 군상 상징조형물 ⓒ 김강임
전시관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말해! 말하라고!"
"불어! 불어보란 말이라!"

협박의 목소리에 겁을 먹었다. 협박과 고문을 당하는 항일애국지사의 고문장면이 너무나 처절하다. 온 몸에 한기가 느껴지는 순간이다.

항일애국지사의 고문 장면을 묘사한 모형
항일애국지사의 고문 장면을 묘사한 모형 ⓒ 김강임
피를 흘리는 장면. 끌려가는 광경. 그 처참한 광경은 창틀 속에 갇혀 있는 새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그 새는 자유를 달라고 외치고 있었다. 자유가 그렇게 그리운 것은 그 누가 알랴.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한다. 인간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항일애국지사 모형
항일애국지사 모형 ⓒ 김강임
저렇게 끝까지 자기의 몸을 희생하며 싸웠던 사람들. 그리고 그 바탕 위에 우두커니 서 있는 내 보습을 지켜보며, 나는 자신에게 메시지를 던져 본다.

제주항일기념관은 제주도 지역 항일운동에 대한 역사적 자료를 전시해 놓은 곳으로, 지상 2층 지하 1층이며, 1층 전시실에는 1876년부터 1945년까지 항일운동 자료가 전시돼 있다.

항일운동 재현한 모형
항일운동 재현한 모형 ⓒ 김강임
또한 2층에는 3·1운동 당시의 전국 상황도와 1918년 법정사 항일 운동을 축소 재현해 놓은 장면도 눈에 띄었다. 그리고 항일 애국지사 고문 장면과 해녀들의 항일운동. 제주에서의 항복문서 조인식 장면을 바라보며, 참담하고 암울했던 한 시대를 바라보게 된다.

특히 비록 전시관의 모습이지만, 마을 안 길에서 부녀자들이 손에 손에 태극기를 들고 만세를 부르는 장면을 보고 나는 조그맣게 입을 열었다.

"만세!"

만세동산에 있는 3.1운동기념탑
만세동산에 있는 3.1운동기념탑 ⓒ 김강임
이렇게 아픈 역사의 순간 뒤에 자유로운 해방을 거침없이 누리고 있다고 생각하니 발걸음이 무거워 졌다. 우뚝 솟은 제주항일기념관 기념탑은 한참동안 내 옷소매를 붙잡고 있었다. 그리고 잘 단장된 광장을 걸어 보면서 "저 바다를 잠재우고, 저 하늘을 가릴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라는 생각에 잠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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