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출신 17대 국회의원 당선자가 한 자리에 모였다. 한국기자협회가 20일 정오 프레스센터에 국회에 입성한 기자 '선배'들을 불러 간담회를 가진 것이다. 17대 국회의원 당선자 중 기자출신은 모두 32명. 이중 16명이 간담회에 참여했다.
이날 간담회의 가장 큰 주제는 언론개혁이었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당선자들은 "언론개혁을 주요과제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인 반면, 한나라당 당선자들은 "언론개혁은 신중하게 접근할 과제"라는 태도를 보였다.
김재홍 열린우리당 당선자는 "당이 민생, 경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지만 언론개혁도 주요 과제"라며 "시민사회의 논의를 관리·지원해주고, 이를 바탕으로 언론개혁입법을 추진할 것"이라며 당의 언론개혁 계획을 설명했다. 김 당선자는 또한 "언론의 자유는 언론사 경영의 자유가 아니"라며 "현장 동료들이 양심의 자유를 누리는 언론환경을 만드는 것이 개혁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당선자는 "16대 국회에서 언론개혁을 놓고 의원들과 접촉을 가진 바 있는데, 처음엔 앞장서던 분들이 나중에는 '언론이 무섭다'며 조심스러워 하더라"고 전하며 "17대에 다시 언론개혁 과제가 등장할텐데 당과 연륜을 가리지 말고 이 문제를 풀어나가자"고 초당적 협력을 호소했다.
그러나 고흥길 한나라당 당선자는 "총선 끝나자마자 언론개혁, 사법개혁이 등장하는데, 해묵은 과제를 꺼내 난리를 피우는 저의가 무엇인지 의심스럽다"며 반감을 나타냈다. 고 당선자는 "언론개혁은 보다 심도깊게 다룰 문제지, 호떡집에 불난 것처럼 떠들 일이 아니"라고 말하며 "개혁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고 당도 특위를 구성해 연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택수 한나라당 당선자 역시 "언론개혁은 공정성, 형평성, 합리성이 있어야 한다"며 "신문만이 아니라 방송과 인터넷 매체도 진지하게 개혁해야 한다"며 현재 논의되는 언론개혁 내용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했다.
당선자들은 후배 기자들에게 언론보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며 신중한 취재를 요구하기도 했다.
김형오 한나라당 당선자는 "탄핵풍 이후에 방송을 보면 꼭 싸움하는 장면이 나와서, 내가 봐도 국회의원은 싸움만 하는 것으로 비친다"며 "언론 보도 때문에 정치인들이 죽고 사는데, 기자들이 한번 더 생각하고 기사를 써달라"고 당부했다.
김원기 열린우리당 당선자 역시 "그동안 언론에서 비판받으면서 국회는 아무 힘도 없는데 독재정권 대신 매를 맞는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안택수 한나라당 당선자는 "우리가 기자할 때는 사실확인에 생명을 걸다시피 했는데 지금 언론 동문들은 적당하게 기사쓰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또 예전에는 국회 안팎에서 밤늦게까지 취재를 했는데 요즘은 현장취재를 소홀히 하는 모습을 본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한국기자협회는 간담회에 앞서 내부회의를 통해 결의문을 채택하고 ▲신문판매 시장 정상화를 위한 신문공동배달제 ▲언론사의 투명경영과 편집권 독립을 위한 정간법 개정폐지 ▲언론사의 개인소유 지분제한 ▲지역언론 경영합리화 및 주재기자 제도 개선 등을 요구했다.
기자협회는 간담회에 참석한 당선자들과 결의문 내용을 공유하지는 않았지만, 이후 기자출신 당선자들에게 언론개혁 추진을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이 자리에서 이상기 기자협회 회장은 당선자들에게 "앞으로 기자출신 의원들이 친정식구를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다음은 결의문 전문.
<결의문> 오늘 언론이 바로 서야 대한민국의 내일이 열린다
언론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이는 오늘 우리사회에 만연한 갈등과 혼돈을 걷어내고 미래의 희망과 꿈을 곧추세우는 주춧돌이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해방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 언론은 나름대로 민족과 국가를 위해 노력해왔고, 국민들로부터 분에 넘치는 관심과 사랑을 받아왔다.
지난 몇 년간 언론·시민단체는 꾸준히 언론개혁운동을 펼쳐왔다. 우리는 이를 높이 평가하는 한편 언론과 언론인 스스로 자기를 새롭게 고치는 일에 게을리한 점 부끄럽게 생각한다.
오늘 우리 언론은 어디로 가고 있는가. 언론인들이 자신의 가치와 위치를 과연 국민과 국가, 그리고 민족의 장래를 위해 사용하고 있는가.
일부 언론의 권력화, 시장독과점, 사적 이익 추구, 자사이기주의 등에 대해 시민사회가 경고음을 발한 지 오래다. 사회적 통합과 화해 상생보다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는 중심에 서 있었지 않았는지 반성할 일이 한둘이 아니다. 겸손과 자기혁신이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에 우리는 와있다.
바야흐로 언론 안팎의 환경은 크게 변하고 있다. 과거처럼 정치권력에 유착하는 대신 광고자본에 고개를 숙이는 일이 잦아졌다. 각종 매체의 급증으로 시장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90년대 대안매체로 출발한 인터넷 언론은 이제 여론 응집력이나 영향력에서 크게 성장했지만, 미확인 보도 등 일부 역기능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우리는 이러한 언론환경의 변화와 언론개혁에 대한 시대적 요구에 발맞춰 자기혁신과 제도적 개혁이 시급하다는데 깊이 공감하며, 몇 가지 사안에 대한 의견을 원론적으로 밝히고자 한다.
첫째, 신문판매시장의 정상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전투구식, 제살깎기식 구독자 확장경쟁은 언론계 뿐 아니라 전 사회의 문제가 돼버렸다. 고가의 경품 없이 공정경쟁을 하는 신문시장 질서가 확립돼야 한다. 같은 차원에서 신문시장의 유통 합리화를 위한 신문공동배달제에 대한 합리적인 공론의 장이 마련돼야 한다.
둘째, 정기간행물등록에 관한 법률은 급변하는 뉴미디어 환경에 맞지 않는 까닭에 개폐되는 것이 마땅하다. 새로 만들어질 법률엔 언론사의 투명경영과 편집권 독립에 대한 구체적 보장 조항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셋째, 언론사의개인소유지분제한은 시대적 요구 속에서 반드시 공론화 하되, 위헌·위법 소지가 없는 범위 내에서 진행해야 한다.
넷째, 현실적으로 여론 형성의 큰 영향력을 갖고 있는 방송이 언론 본연의 기능을 다 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인터넷 언론의 순기능을 확대하기 위한 제도 마련도 절실한 과제다.
다섯째,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의 온전한 실현을 위해 지역언론은 경영합리화와 주재기자 제도 개선 등 내부 개혁에 적극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국민의 바람으로 제정된 지역신문발전지원특별법에 부응하는 길이다.
새삼 강조하는 바 언론개혁은 국민적 공론화과정을 충분히 거쳐야 한다는 것이다. 집권당이 이에 대한 로드맵을 갖고 실천에 옮기는 것은 당연한 책무이나, 언론개혁은 국민 대다수의 공감을 바탕으로 이뤄져야 한다. 언론계를 타율적으로 개조하려는 시도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실패로 귀결된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이른바 보수 언론들도 언론개혁의 공론화 마당에 적극 나서주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언론개혁은 시대적 요구임을 겸허히 귀기울이길 바란다.
진실보도와 공정보도를 최고의 사명으로 삼고 있는 현업 기자들로 구성된 한국기자협회는 이런 중차대한 시점에서 제 역할을 분명히 할 것임을 국민 앞에 약속한다. 신문 기사 한줄, TV 뉴스 한 대목은 국민에게 희망이 되고 사랑이 되고, 어둠을 밝히는 촛불이 돼야 한다. 한국기자협회는 그 맨 앞줄에 설 것임을 엄숙히 선언한다.
2004년 5월 20일
한국기자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