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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강.
김관식, 쌍놈의 새끼들이라고 소리지름. 지참한 막걸리를 먹음.
교실내에 쌓인 두터운 먼지가 다정스러움.
김소월
김수영 휴학계
전봉래
김종삼 한 귀퉁이에 서서 조심스럽게 소주를 나눔.
브란덴브르그 협주곡 제5번을 기다리고 있음.
교사.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에 있음.
김종삼 詩 「시인학교」全文
김종삼 시인이 <시인학교>라는 시에서 얘기한 바에 따르면 시인학교는 아름다운 레바논 골짜기에 있어야 하지만 카페 <시인학교>는 인사동에 있다.
그때는 내가 국악 음반 수집에 한창 열 올리던 시절이었다. 청계천으로, 장안평으로 한참 돌아다니다가 두 다리가 아파오면 인사동으로 건너간다. 그리고 아무 카페나 들어가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靑春)을 찾은 뱀과 같이' 몇 잔의 술을 마신다.
아마 내가 맨 처음 카페 <시인학교>에 간 날은 비오는 여름 날이었을 것이다. 근처 <솟대>라는 카페에서 김소희의 "구음(口音)"을 안주 삼아 빛(light)나게 걸치고나서 길을 걸어가던 중 내 망막에 <시인학교>라는 간판의 글씨가 맺혔다.
그순간 체내 혈중 알코올 농도가 현격히 떨어지는 게 아닌가. "오냐, 내 저기서 부족한 혈중농도를 채우지 않으면 십리도 못 가서 객사원귀가 되고 말 것이다." 주저없이 이층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밟을 적마다 계단에서 '삐걱삐걱' 마치 현대음악의 한 소절처럼 불협화음이 들려왔다.
손님이 없는 실내는 음습하기 짝이 없었다. 술에 찌든 냄새가 코 끝에 와 잉잉거렸고, 실내 장식이라고 할만 한 것도 그다지 눈에 띄지 않았다. 그저 문풍지를 발라놓고 거기에다 시를 써 붙인 이동식 칸막이 몇 개가 전부일 뿐이었다.
쓸쓸함을 색다른 쾌락으로 즐기는 시인들이란 족속들에겐 정말 안성마춤인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몇 마리의 파리들을 눈으로 쫓으며 주문을 받으러 오기를 기다리는데 주인으로 보이는 이가 다가왔다. 맥주 세 병을 시켰다.
사실 혼자 마시는 술은 심심하고 멋쩍다. 난 주인을 불러 자리에 앉기를 권했다. 고향이 어디냐는 둥, 나이가 몇이냐는 둥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생계에 전혀 지장이 없는 얘기들이 수인사(修人事)라는 형태로 오고 갔다.
삼십이 채 안된 그의 고향은 전북 익산 함열이라고 했다. 시를 쓴단다. 그는 카페 안 책장에서 <현대시학>이라는 그당시 나로서는 처음 보는 문예지 한 권을 가지고 와서 자기 시를 보여 주었다. 난 그의 시가 좋다, 싫다에 대해 아무런 촌평도 가하지 않았다. 나는 주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원려를 계산에 넣었다. 내가 가타부타 얘기를 안하자 그가 먼저 치고 들어왔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꺼내놓을만한 이름이 아니오. 피래미에 이름 붙은 거 봤소?"
"시 쓰십니까?"
"아니, 난 그저 시 읽는 걸 좋아하는 사람일 뿐이요."
일배일배 부일배(一盃 一盃 復一盃)라. 거기에 곁들여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 하기만 한 생이라는 안주를 통째로 씹어댔다. 그 사이 몇 팀의 손님이 들어왔다. 그는 나와 술 마시는 사이사이 손님이 부르면 총알처럼 달려 갔다가도 그 일이 끝나면 다시 내 앞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온 몸의 피가 차츰 관자놀이로 모여 들었으며 이야기가 문득 문득 길을 잃기 시작했다.
이쯤되면 자리를 털고 일어나주는 게 술꾼들 사이의 관행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모르는 척 자리에서 일어날 줄 몰랐다. 아무래도 그의 내부에서 기필코 "고지를 사수해야 한다!"는 단심(丹心)이 활활 타오르고 있는 모양이었다.
손님 옆 자리를 결사적으로 사수하려는 이 억척스런 주모가 차츰 얄미워지기 시작했다. 증오를 좀 더 확실히 부풀리기 위하여 난 그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보았다. 내 눈길을 의식했는지 그가 힐끗 웃는다. 어느새 그의 얼굴은 선량하기까지 했다. 그를 미워하는 것은 더이상 의미가 없었다.
'이제 그만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을 무렵 한 사내가 들어왔다. 그는 자연스럽게 우리 자리에 합석했다. 주인의 친구인 그 사내는 뇌성마비 장애인인 심종록이었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대신 <현대시학>에서 자신의 시를 찾아내어 보여 주었다. 몇 줄 읽지 않았지만 제법 언어를 부릴 줄 아는 솜씨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사동에 가면 <꽃을 던지고 싶다>라는 상당히 오래된 카페가 있다. 심종록의 詩에도 <나는 꽃을 던지고 싶다>라는 詩가 있다. 이 둘 사이에 어떤 인과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꽃을 던지고 싶다
붉은 꽃을 던지고 싶다
그러니까 그대가
내 가슴에 한아름 안긴
한아름 피워 올린
뿌리 잘린 엉겅퀴 꽃을 던지고 싶다
내 사랑은 뿌리 잘린 붉은 가싯잎
내 욕망은 뿌리 잘린 붉은 줄기
내 절망은 뿌리 잘린 붉은 꽃
내 권태는 뿌리
그러니까 안개꽃 더미 속에 어울리지 않게
생생한 내 주검도 붉은 꽃
나는 꽃을 던지고 싶다
그러니까 욕을 던지고 싶다
욕도 붉은 꽃
줄기가 시퍼렇게 억세다
심종록 詩 <나는 꽃을 던지고 싶다> 全文
욕은 삶의 강자(强者)들이 즐겨쓰는 수단이 아니다. 그들에겐 그것말고도 대체 수단이 많기 때문이다. 또한 위선으로 가득찬 사람들도 욕을 뱉지 않는다. 욕이란 기본적으로 사회적 약자가 자신의 분노를 드러낼 수 있는 최후의 수단인 동시에 가장 유효적절한 수단이다.
삶의 벼랑 끝에 몰린 사람은 누군가가 안겨주는 꽃다발마저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때때로 그것마저도 세상이 던지는 비웃음으로 받아 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심종록 시인. 그는 겉으로는 온화한 사람이었지만 속으로는 세상을 향해서 욕이라는 "줄기가 시퍼렇게 억센" 꽃을 키우고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재작년 8월 국악인의 첫 모임인 <신명나는 세상>을 나의 제안으로 <시인학교>에서 갖게 됐다. <시인학교> 주인인 정동용 사장이 "형, 8년만에 왔네"라며 반겼다. 그러고 보니 참 오랜만에 온 것 같다. 그동안 '내가 겪었던 생의 곡절이 만만한 것이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새삼 스쳤다.
제 멋대로 흘러가는 세월은 엉뚱하게도 내게 흰 머리만 남긴 채 흘러갔지만 이 집 주인의 손님 술자리 절대 사수라는 불굴의 의지만은 그대로였다. 연신 "형, 나 가봐야돼, 장모님이 위독하시다니까"라고 말하면서도 막상 자리를 털고 일어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심종록의 안부를 물었다.
"응, 종록이 자가용 운전해."
뇌성마비 장애인인 그가 남의 자가용 운전으로 먹고 살다니…. 삶이란 어쩌면 자기에게 안겨진 '욕'이라는 붉은 꽃을 차마 던지지 못하고 사는 것인가? 던져버리고 싶은, 차마 던져 버리지 못하는….
모임 이후 <시인학교>에 발걸음을 할 적마다 한 사내가 눈에 띄었다.허름한 점퍼를 걸쳐입고 홀로 하릴없이 앉아있는 사내. 정 사장에게 누구냐고 물었더니 그가 바로 함민복이라는 것이었다.
"불러 올까"
나는 손사래를 저었다. <눈물은 왜 짠가>라는 자연과학에 대한 그의 소박한 탐구심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 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나를 위해 고깃국을 먹으러가자고 하시는 마음을 읽자 어머니 이마의 주름살이 더 깊게 보였습니다 설렁탕집에 들어가 물수건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습니다
"더울 때일수록 고기를 먹어야 더위를 안 먹는다 고기를 먹어야 하는데…. 고깃국물이라도 되게 먹어둬라."
설렁탕에 다데기를 풀어 한 댓 숟가락 국물을 떠먹었을 때였습니다 어머니가 주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주인아저씨는 뭐 잘못된 게 있나 싶었던지 고개를 앞으로 빼고 의아해하며 다가왔습니다 어머니는 설렁탕에 소금을 너무 많이 풀어 짜서 그런다며 국물을 더 달라고 했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흔쾌히 국물을 더 갖다주었습니다 어머니는 주인 아저씨가 안 보고 있다 싶어지자 내 투가리에 국물을 부어주셨습니다 나는당황하여 주인 아저씨를 흘금거리며 국물을 더 받았습니다.
주인 아저씨는 넌지시 우리 모자의 행동을 보고 애써 시선을 외면해주는 게 역력했습니다 나는 그만 국물을 따르시라고 내 투가리로 어머니 투가리를 툭,부딪쳤습니다 순간 투가리가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왜 그렇게 서럽게 들리던지 나는 울컥 치받치는 감정을 억제하려고 설렁탕에 만 밥과 깍두기를 마구 씹어댔습니다 그러자 주인 아저씨는 우리 모자가 미안한 마음 느끼게 조심, 다가와 성냥갑 만한 깍두기 한 접시를 놓고 돌아서는 거였습니다 일순, 나는 참고 있던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습니다. 나는 얼른 이마에 흐른 땀을 훔쳐내려 눈물을 땀인 양 만들어놓고 나서, 아주 천천히 물수건으로 눈동자에서 난 땀을 씻어냈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눈물은 왜 짠가
함민복 詩 <눈물은 왜 짠가> 全文
그는 이 <시인학교>라는 생의 대안학교에서 "눈물은 왜 짠가?"라는 숙제를 완결치 못해 아직도 유급중인 상태인 모양이다. 나한테 물어보면 금방 가르쳐 줄텐데 말이다. KBS의 <개그 콘서트>라는 프로그램 식 버전으로….
"눈물은 왜 짠가?"
"안 짜면 이상하니까."
내가 보기에 함민복은 숨바꼭질 선수다. 세상의 어딘가에 꼭꼭 숨어있는 온갖 눈물의 소스를 찾아낸다. 그리고 맛 볼수록 싱거운 세상의 간을 맞춘다. 그래서 그의 시는 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