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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사랑에 관한 다섯개의 소묘'
ⓒ 극단 오늘
오늘도 수많은 연인들이 만나고 헤어졌으리라. 사랑은 교통사고와 같은 것, 언제 내게로 와서 나를 덮쳐버릴지 아무도 알 수 없고 우리는 그저 운명처럼 만나고 또 헤어진다. 사랑이 어떻게 와서 어떻게 시작되고 어떻게 끝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다만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사랑이 왔다간 다음 결코 우리는 이전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이다.

개별적인 두 개체의 충돌과 조화는 핵폭발처럼 존재를 변화시킨다. 사랑의 불가지성과 무한한 힘, 바로 그 이유로 인해 수많은 예술가들이 음악과 미술, 문학과 영화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사랑을 이야기했지만 아직도 다하지 못한 사랑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일 게다.

극단 오늘의 <사랑에 관한 다섯개의 소묘>는 1996년 <사랑은 해도 외롭다> 이후 계속된 사랑 연작의 하나이며 극단 오늘 창단 10주년 레퍼토리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극단 오늘의 대표로서 활동하고 있는 연출가 위성신이 직접 대본을 쓰고 연출한 이 작품은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랑의 풍경들을 소묘처럼 부드럽게 그려낸다.

그들은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지는 여관방을 배경으로 자신들만의 사랑 이야기를 엮어나간다. 여관이라고 하니 불륜의 냄새가 난다고? 그러나 이경표가 꾸며낸 4차원적 여관 공간은 자연스러운 만남과 이별의 공간으로 기능할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새로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들의 떨리는 풋풋함과 오래된 연인의 지루함과 잘 익은 사랑의 다정함, 그리고 안타까운 사랑의 비애와 노년의 쓸쓸한 사랑이 주는 다양한 감동을 만날 수 있다.

프롤로그를 제외하고 노총각 노처녀와 오래된 연인, 경상도 부부와 버릴 수 없는 사랑, 다시 만난 사랑 등으로 이루어진 5막의 극에서 우리는 사랑이 어떻게 시작되고 익어가며 또 어떻게 끝나고 끝나지 못하는지를 모두 보게 된다.

▲ 연극 '사랑에 관한 다섯개의 소묘'
ⓒ 극단 오늘
다섯의 커플들은 그 안에서 때론 웃고 때론 싸우고 때론 하품하고 때론 눈물지으며 우리에게 사랑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초등학교 동창이라는 애매한 관계에서 새로운 연인 탄생을 예감하는 커플과 머리가 빠져가는 개그맨 지망생의 나른한 개그처럼 지루한 커플, 무뚝뚝한 경상도 사내와 곰살맞은 경상도 아즈매 부부, 결코 헤어지고 싶지 않으나 헤어질 수밖에 없는 처연한 운명의 커플, 생의 절정을 다 흘려보내고 다시 만나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려는 노년의 커플. 그들을 바라보며 우리는 자신이 거쳐온 사랑과 지금 진행 중인 사랑, 그리고 앞으로 하게될 사랑을 떠올려보는 데 부족함이 없다.

사랑은 때론 서로를 '떡판'과 '변태'라고 부르며 싸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싹트기도 하고 3천원짜리 머리핀 선물을 무뚝뚝하게 건네며 '사랑한데이'라고 고백하는 부부 사이에도 있을 것이다. 요사이 둘만의 섹스가 별로 좋지 않은 연인들에게도, 나 죽으면 친구와 결혼하라며 악다구니를 퍼붓는 가슴 저리는 부부에게도, 돋보기를 꺼내고 젤리를 나눠 먹는 노년의 연인에게도 다 제 나름의 사랑이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좁은 여관방에서 사랑을 나누면서도 사랑을 만들고, 확인하고, 연장하기 위해 소풍을 꿈꾼다.

안에서 밖을 꿈꾸며 오늘을 넘어 미래를 기약하고자 하는 연인들의 모습은 작가 겸 연출가인 위성신의 잘 다져진 언어 감각을 통해 생생하게 살아난다. 자신들의 몫을 충분히 해내는 연기자들의 안정된 연기도 쏠쏠한 감동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요소다. 특히 불치병을 앓는 남편과 부인의 안타까운 사랑을 연기한 배우 이춘희와 오주석의 열연은 관객들의 진한 눈물을 빼놓기에 충분했다. 각 막 사이사이 흘러나오는 노래들도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증거하며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효과적인 요소였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한 연인이건 혹은 아직 뜨거운 사랑을 진행중인 연인이건 서로를 위해 봉사한다고 생각하는 오래된 연인이건 소풍 가기 참 좋은 초여름이다. 이런 날 잘 만든 사랑 연극 한편과 함께 색다른 소풍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사랑은 원래 수많은 이벤트와 함께 더욱 잘 익어가는 것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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