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전두환 장군께서는 민주의 횃불이 되어주소서!"(송숙영·69·소설가)
전두환 정권을 향한 지식인들의 찬양과 칭송은 계속된다. 그들의 세치 혀에 전두환씨는 '새 역사의 창조자' '국난극복의 구원자' '온 겨레의 아버지'로 거듭난다. 이제 전씨는 '구국의 등불' '전지전능의 구세주' '미래의 영도자'가 되어 국민 위에 군림한다.
암울했던 폭압의 시대가 허름한 책 한권 속에서 생생히 재현된다. 그를 칭송했던 수많은 '나팔수들'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160쪽 남짓한 작은 책 <전두환 체제의 나팔수들>(한상범·이철호 편저)은 독자들에게 '쿠데타 권력에 기생했던 지식인들'의 행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이 책은 "주인은 바뀌어도 해먹는 놈은 여전히 그 놈"이라는 시집 <한강>(1967)의 작가 양수정 전 민족일보 편집국장의 말로 시작한다. 6공·문민·국민·참여정부. 세상이 변해도 한참 변했을 거라고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 편저자들은 "신군부 쿠데타에 편승한 지식인 무리들의 면면을 공개하는 이유는 바로 불의에 분노할 줄 아는 시민이 되기 위해서"라고 한다.
전씨 부부의 '드라마틱한 러브스토리' 작성한 한 기사
'알토란 여사' 이순자씨를 다룬 부분을 살펴보자. 장명수 전 한국일보 사장(당시 한국일보 기자·63)은 이씨와 전씨와의 만남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때 20살짜리 여대생(이순자씨)은 놀랄만큼 현명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사태를 극복해 갔다. 사랑하는 사람의 결심이 얼마나 확고하다는 것을 눈치챈 그는 자칫하면 그들의 사랑이 물거품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가난 때문에 사랑을 잃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후략)"
기사가 실린 80년 9월 2일은 광주도청에 대한 계엄군의 무력진압이 끝난 지 채 100일도 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장명수는 기사 말미에 "대통령의 드라마틱한 러브 스토리와 화목한 가정풍경, 그리고 결혼생활에 얽힌 얘기들은 친근한 느낌을 주고 있다"며 "그것이 바로 이해의 시작인지도 모른다"고 끝맺음 하고 있다.
조병화·서정주 낯뜨거운 '전두환 찬시'
기자의 글이 이 정도면 '언어의 마술사'라 불리는 시인들의 말솜씨 역시 빠질 수 없다. 베레모와 파이프 시인으로 유명한 편운 조병화(2003년 작고)와 미당 서정주(2000년 작고)의 시를 접하고 있자면 낯이 뜨거울 정도다.
온 국민과 더불어 경축하는 / 이 새로운 출발 / 국운이여! 영원하라 …(중략)… 부강한 나라 만들려는 / 이 새로운 영도 / 오, 통치자여! 그 힘 막강하여라 … 후략 (새 대통령 당선을 축하하며·조병화)
한강을 넓고 깊고 또 맑게 만드신이여 / 이나라 역사의 흐름도 그렇게만 하신이여 / 이겨레의 영원한 찬양을 두고두고 받으소서 …(중략)… 이 겨레의 모든 선현들의 찬양과 / 시간과 공간의 영원한 찬양과 / 하늘의 찬양이 두루 님께로 오시나이다 (전두환 대통령각하 제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서정주)
서정주 시인의 시는 87년 1월 18일 작성됐다. "'탁'치니 '억'하고 죽었다"고 경찰이 밝힌 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한 것은 나흘 전인 1월 14일이었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언론인·문인·학자·정치인 등 모두 20명, 23편의 전두환 정권에 대한 찬양글이 실려 있다. 특히 71년 <조선일보> 논설위원을 역임한 뒤 79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에 취임했고, 80년 입법회의 의원, 81년 제11대 민정당 국회의원, 84년 한국방송공사 이사장 등을 역임한 송지영씨의 글은 3편이나 실렸다.
"전씨의 행적에 대해 잊지 말 것"을 당부
친일의 역사가 반민족·반민주의 역사로. 이 책은 한국사회에서 기득권이 살아가는 일부의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고 있다. "드러난 환부의 고약한 냄새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다.
이 책을 정리한 한상범 교수(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와 이철호 교수는 '닫는 글'에서 "1988년 광주청문회에서 '살인마'라고까지 소리 지르고 명패까지 집어던지며 울분을 삭히지 못하던 현 노무현 대통령은 정무수석을 보내 세배까지 드리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며 개탄하고 있다.
국민을 학살하고 정권을 찬탈해 부정축재라는 엄청난 죄를 저지르고도 법원의 판결을 무시하는 전씨를 편저자들은 "아직도 살아있는 권력"으로 평가하며 국민들에게 다시 한편 "전씨의 행적에 대해 잊지 말 것"을 당부하고 있다.
이 책은 다시 한 번 묻는다. 전씨를 칭송했던 수많은 '나팔수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들 역시 가만히 숨죽인 채 '여전히 살아있는 권력'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 이 책의 결론이다.
아래는 <전두환 체제의 나팔수들> 목차.
- 역사를 거꾸로 본 언론인 : 역사의 무대가 바뀌고 있다(이진희, 서울신문 주필)
역사파괴를 창조로? : 새 역사 창조에 동참하자(이영일, 통일연구소소장)
- 반만년 이래 최고의 궤변 "어용학자" : 전두환 장군은 "위기상황" 극복의 최적임자(이선근, 정신문화연구원장)
- 쿠데타 기술을 "국가보위"로 착각한 사람 : 전두환 장군의 국가보위능력은 실증됐다(김해득, 구세군사령관)
- 국난을 자초한 야심을 찬양 하다 : 국난극복의 의지와 지혜 지녔기에(이정식, 국민회의 운영위원)
- 일제시대 친일찬가를 되풀이 : 정로가 눈앞에 있다. 머뭇거리지 말자(송지영, 문예진흥원장)
- 농군학교에 똥칠한 이 : 온 국민이 정다운 한식구가 되자 - 전두환 대통령 취임에 즈음하여(김용기, 가나안농군학교교장)
- 속 뵈는 찬양으로 편승한 넋두리 : 불굴의 의지로 국운개척 - 10·26이후 새역사창조 주도한 전두환 대통령(김길홍, 경향신문 기자)
- 국민이 미워한 지배자를 '국민이 바라는 지도자'로 꾸미는 술수 : 시론 - 국민이 바라는 새 지도자상(주영관, 서울신문 주필)
- 군부정치를 미화한 파렴치의 극치? : 청렴·온순·참신한 새출발(시)(조병화, 시인)
- 일제시대 이래 강자 찬미 논객 헛소리 : 일제시대 이래 강자 찬미 논객 헛소리 : 전두환 대통령 각가 제56회 탄신일에 드리는 송시(서정주, 시인)
- 일제 이래의 잔꾀로, 강자편에 붙는 실력 발휘 : 문화의 창달 - 전 대통령 취임사를 보고(조연현, 한국문인협회이사장)
- 잘못된 어느 동창생의 낯간지러운 찬미가 : 내가 본 전두환 대통령(백순달, 한국과학교육학회 부회장)
- 해도 너무 부끄러운 찬양 : 장군은 우리의 등불이 돼야 합니다 - - 전두환대장 전역식전에서(송숙영, 작가)
- 개똥철학의 궤변 : 이제 새모습으로 우리 인도하리라 - 전두환대장 전역식 참관기(강유일, 작가)
- 일제 이래의 잔꾀로 강자편에 붙어먹는 실력 : 제언 - 깡패소탕은 지속적으로(조연현, 한국문인협회이사장)
- 언론자유 퇴장을 찬미한 못난 소리 : 새언론 정립의 계기로 - 신문·방송·통신 통폐합 결정을 보고(한병구, 경희대 교수, 한국신문학회 회장)
- 언론인들을 부끄럽게 한 궤변 : 긍지와 정성의 군인가정 - 이순자 여사를 통해 본 사생활의 면모(장명수, 한국일보 기자)
- 출세길을 위해 악쓰는 이의 딱한 소리 : 평화적 정권교체 여망 - 국민투표에 붙여진 새 헌법안(오세응, 국회의원)
- 또 다시 군화발 시대의 정경유착의 구세주냐? : 명실상부한 새 시대가 열렸다(김용완, 전경련 명예회장)
- 글을 더럽힌 글쟁이 : 공직과 '예의염치' - 오늘에 비춰 본 <목민의도>(上)(송지영, 문예진흥원장)
- '학자'란 것을 부끄럽게 만든 사이비 학자의 변 : 오늘을 생각한다(나창주, 건국대교수)
- 닫는 글 : 국민이 잊지 못할 전두환의 더럽고 치사한 행적
* 부록 : 전두환 전 역사 / 민주정의당 발기인 및 분과위원 명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