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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에 응하는 여균동 감독
ⓒ 강성란
“대입 시험 삼일 전이었나? 모든 게 부질없단 생각이 들어서 친구한테 그랬죠. ‘야, 시험이고 뭐고 다 없애고 서울대는 선착순으로 입학했으면 좋겠다’고. 그랬더니 녀석이 대뜸 ‘너 사회주의자지?’ 한 마디 던지더군요.”

지난 달 10일 ‘파행적 보충·자율학습 철폐와 문화교육 활성화를 위한 문화예술인 선언’에 참여한 여균동 감독. 평준화 1세대인 그는 우열반 편성이 극성을 부렸던 고교시절 1000명 남짓한 학생 중 속칭 ‘정예부대’로 뽑은 25명에 속해 학창시절을 보냈다.

‘공부 잘 하는 학생’으로 특혜 아닌 특혜를 누렸을 그가 ‘서울대 선착순 입학론’을 펴는 것이 얼핏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는 “30년 전 서울대 선착순 입학 이야기를 했을 땐 사회주의자 소릴 들었는데 이젠 스스럼없이 서울대 없애자고들 하니 세상이 많이 변했다”며 웃었다.

"대학시험은 도박 같다는 생각이..."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고2 과정을, 2학년 때는 3학년 공부를 했어요. 3학년이 돼서 대학교 공부를 하면 문제가 없는데 지금껏 공부한 걸 죄다 복습하고 앉았어야 했죠. 문득 제 때 하면 될 것을 시간 버리고 돈 버렸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슷한 수준을 가진 아이들의 인생을 1, 2점 차이로 결정하는 대학 시험이 도박 같단 생각도 하게 됐고…….”

문득 대학을 위한 교육에 회의적인 그의 생각이 현실과 어떻게 만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말로만 교육 혁명'은 아닌지 의문이 생긴 것.

“우리 애 셋이 지금 초, 중, 고등학교 학생입니다. 예고(예술고등학교)에 다니는 첫 애는 입시 학원에 다닐 일이 없었고, 둘째는 합창단 활동을 하느라 공부랑은 담쌓았죠. 막내는 ‘학원은 안 가겠다’고 해서 그런 줄 알고 있습니다.”

‘애들은 알아서 큰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그에게 정말 ‘괜찮냐’고 묻자 둘째 딸 이야기를 슬그머니 꺼낸다.

“지난 시험인가 딸내미가 전교 200등이 넘어가는 성적을 받았어요. ‘그래도 100등은 해야하지 않겠니?’ 열 받았다가 ‘짜식 수업도 빠지면서 공연 다니는데 그 정도면 잘 하는 거지’ 생각 고쳐먹었습니다.”

학교가 바뀌면 학생의 인생도 달라진다

‘아름다운 가게’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서너 시간씩 자원봉사를 하는 그는 가게 앞 식당을 운영하는 남자 셋을 보면 느끼는 점이 많다.

“50대 남자분 셋이 식당을 운영하는데 그 일을 오래했던 사람은 아닌 거 같더군요. 아이엠에프 때 명퇴를 했거나 그랬을 텐데…… 음식이 맛있고 식당 분위기도 너무 좋아서 밥 먹는 나도 즐거워요. 한 마디로 식당 운영이 그 사람들 적성에 맞는 거죠.”

여 감독은 ‘학교가 그들이 가진 음식에 대한 흥미를 키워줬다면 인생이 달라지지 않았겠냐’며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

세 사람은 학교 다닐 때부터 아주 맛있는 음식을 파는 식당을 차리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졸업하자마자 배낭 하나 달랑 메고 세계 맛 기행을 떠난 이들은 세계 여러 곳을 다니며 다양한 맛 체험을 하고, 유럽(일본, 혹은 중국)의 어느 마을에서 만난 여인과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아내와 함께 귀국한 그들은 음식점을 차리고 정착한다는 줄거리다.

가상의 이야기이긴 하지만 듣다 보니 세 사람의 인생이 안타까울 지경이었다.

"문화예술교육은 현재 담보로 미래 제공하는 크레디트 카드"

“지금의 교육 환경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생길 수 없습니다. 대학 가는 공부, 죽도록 외우는 공부 말고 문화예술교육을 해야죠.”

그는 ‘대학’이라는 오직 하나의 목적을 가진 공부가 아닌 다양한 삶을 체험하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화예술교육이야 말로 다양성을 체득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믿는다.

“문화예술교육은 현재를 담보로 미래를 제공하는 크레디트 카드 같은 겁니다. 교과서만 들입다 파는 게 아니라 영화 보고, 책도 읽으면서 혹은 인생 선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더 넓은 세상과 해야 할 일을 미리 경험하는 거죠. 이런 과정을 거친 아이들만이 자신의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그의 믿음은 굳건했다. 아이들에게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담은 그물을 던지다 보면 하나에는 걸리게 돼있단다.

"교사와 학생 모두가 즐거운 학교 돼야"

“보충수업 그거 정말 뭐 하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의 피해는 당연한 거고 교사들도 죽이는 일이죠. 그런데 전교조가 보충수업을 반대하는 이유 중에 ‘교사가 자신의 시간을 가질 수 없어서’라는 내용도 있습니까?”그가 문득 물었다.

“더 많은 교사들이 보충수업 반대해야 합니다. 재충전을 위해 자기 시간을 가져야죠. ‘나는 모든 것을 희생할 테니 너희들은 다양한 삶을 위해 모든 것을 해보렴~’ 이게 뭐예요. 부모가 ‘나는 양로원에 있을 테니 너희들은 잘 살거라.’ 그러면 자식들이 편하겠어요? 교사가 자신들의 권리를 찾을 수 있을 때 아이들도 당당하고 행복해지는 겁니다.”

교사와 학생 모두가 즐거운 곳, 다양한 삶을 배우는 장…… 이것이 그가 바라는 학교의 모습이며 문화예술 교육이 필요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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