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을 진보, 보수의 2분법으로 바라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유시민 의원. 그가 원하건 원하지 않건 그를 "과격한" 진보주의자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이미 이 사회에 팽배해 있다는 데 반해 그러한 판단이 과연 옳은지 합리적으로 검증해보는 절차가 없었다는 점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그런 생각에서 한번쯤 유시민 의원에 대한 '사상검증'을 해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쉽게 결론을 내리긴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누구처럼 마녀사냥을 하기 위한 사상검증은 결코 아니니 그리 염려하지 않아도 좋다.
여기 두 사람이 있다. 유시민을 진보라고 주장하는 사람과 유시민을 보수라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편의상 유시민을 진보라고 주장하는 사람은 "이자유", 유시민을 보수라고 주장하는 사람을 "김평등"이라고 하자.
이들의 논쟁을 통해, 유시민이 진보인지 보수인지. 독자들의 판단을 기다린다.
이자유 : 저는 토론을 하러 나왔지만, 무엇이 논점이 될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유시민을 보수라고 하는 것이 말이 됩니까? 길을 가다가 지나가는 사람한테 물어보세요! 유시민이 진보인지, 보수인지?
김평등 : 글쎄요, 진보냐 보수냐를 뭐에 따라서 나눠야 할 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 사람이 자유주의자인 것에 주목합니다. 요즘같이 속박보다는 불평등이 문제되는 때에 스스로 평등보다 자유를 중요시하며 자유주의자라고 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그를 반드시 진보주의자라고 생각할 수는 없죠.
이자유: 유시민이 주장하는 자유가 도대체 뭐라고 생각합니까? 그건 구시대의 관습으로부터의 자유입니다! 어떻게 자유를 주장한다고 해서 무조건 보수주의자가 된다는 말입니까?.
김평등: 과연 그럴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건 유시민씨를 잘 몰라서 하는 말씀입니다. 유시민씨는 지난 2002년 <서울대저널>과 한 인터뷰에서 자신의 자유주의관을 다음과 같이 밝힌 적이 있지요. 그걸 보면 유시민의 자유관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리버럴은 국가 또는 사회의 선택보다 개인의 선택을 우선 존중한다. 타인의 자유와 권리를 실질적으로 침해하지 않는 한 국가나 사회가 그 개인의 선택을 규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가나 사회의 선택보다 개인의 선택을 우선 존중한다? 이건 평등보다는 자유가 우선이라는 유시민씨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말입니다. 유시민씨의 말을 계속 들어볼까요?
"시장경제를 기본질서로, 복수정당제를 기초로 한 대의민주주의를 정치 원리로 인정하는 것은 이것이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더욱 더 명확하지요? 이걸 보면, 유시민씨가 확고한 시장경제주의자이며 자유민주주의자임이 드러나지 않습니까?
이자유: 그러나, 유시민씨는 거기에 덧붙여서 이렇게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리버럴은 이러한 원리를 구현하기 위해 이를 침해하는 제도, 관습, 이데올로기와 싸운다. 무엇을 바꾸고 무엇을 지키느냐는 구체적 현실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여기서 제도나, 관습, 이데올로기라 함은 기존의 나쁜 체제를 의미하는데 기존의 체제를 존중하지 않고, 자유를 위하여 기존의 체제와 싸운다함은 유시민씨의 진보적 속성을 확고하게 드러내는 말이 아닌가요?
김평등: 그거야 진보와 보수를 어떻게 구분짓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문제지요. 기존 체제를 얼마나 존중하느냐의 문제가 진보와 보수를 가름짓는 시대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이미 서구 사회나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는 큰 국가를 지향하느냐, 작은 국가를 지향하느냐에 따라서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것이 일반적인 통례로 자리 잡혀 있는 겁니다.
이 모두 국가에 대해서 개인과 기업의 자유를 얼마만큼 인정해주느냐 하는 문제니까 유시민씨가 말한 자유와 관련이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또 유시민씨의 이러한 자유관에 대해서 영펠로우의 신동민씨가 업코리아 기고를 통해 제대로 해설을 해놓은 게 있군요.
"유의원의 자유주의관은 생각 외로 명쾌하다. 개인의 선택을 그 무엇보다도 우선한다는 그의 주장은 곧 헌법 및 국가권력의 존재이유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헌법은 자유권, 평등권과 같은 개개인들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 권력이 어떻게 구성되고 운영되어야 하는지를 규정해놓은 국가의 최고 규범이다. 또한 권리이론은 기본권과 같은 권리가 본래적으로 집단이 아닌 개인에게 우선적 귀속되는 주관적(主觀的)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한다. 결국 우리 헌법 10조에 따르면, 국가란 궁극적으로 개인의 행복 추구를 위해 존재해야할 수단에 불과한 것이다."
뿐만 아닙니다. 유시민씨의 홈페이지를 한번 보세요. 한때는 자신이 스스로 진보적이라고 믿었는데, 지나고 보니 진보적이라기보다는 자유주의적 성향이 훨씬 더 강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평가한다는 걸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그것은 스스로 진보적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거나 마찬가지 얘기지요.
이자유: 글쎄요, 그 홈페이지를 보니까 유 의원은 자신은 보수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진 않지만 그 사람이 보수를 사상으로 한다는 이유만으로 탄압을 받는 일이 있다면, 그와 연대해 싸울 각오가 되어 있다고 말한 바가 있군요. 보수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 걸 보면 결코 보수지향적인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요?
김평등: 그건 아마 진짜 보수세력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 사회에서 보수라고 불리는 수구세력들을 의식하고 한 말일 겁니다. 시장경제를 기본질서로 하고 헌법을 존중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이 어떻게 보수주의자가 아니란 말입니까? 만약에 유시민씨가 스스로 자기는 결코 보수주의자가 아니라고 우긴다고 해도, 유시민씨는 보수주의자 맞습니다.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며칠 전에 민노당의 노회찬씨도 이렇게 얘기하지 않았습니까?
"유 의원은 그래도 공부를 좀 해서 그런지 자신을 자유주의자라고 표현하고, '열린우리당은 온건 보수, 한나라당은 강경 보수, 민노당은 진보정당'이라고 정확하게 개념 규정을 했다"
자기 당 색깔을 온건보수라고 규정짓고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을 어떻게 보수주의자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이자유: 그거야 노회찬씨가 자기 당만이 선명한 진보정당임을 강조하기 위해 한 말일테고요. 노회찬씨의 희망사항이 아닐까요?
김평등: 그렇다고 해서 노회찬씨가 없는 말을 했겠습니까? 유시민씨가 열린우리당은 온건보수라고 하지 않았답니까?
이자유: 그러면 이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시민씨가 얼마나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습니까? 4대 보험에 대해서도 전문가고, 그렇게 사회복지에 관심이 많다 함은 국가의 역할이 지금보다 커지길 원하는 걸 의미하지는 않을까요?
김평등: 그건 유시민씨가 야만적인 우리 사회 복지의 수준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지, 그 사람이 진보적인 탓에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부당한 불평등에 대한 침묵하지 않는 것일 뿐, 그것으로 인해 그가 '자유'보다 '평등'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고 판단하기에는 부족함이 있기 때문이죠. 틀림없는 것은 그가 '만인의 평등'보다 '개인의 자유와 선택'을 중요시 여긴다는 점입니다.
마치 부당한 불평등에 대해 침묵하는 것이 '보수'인양 생각해 온 우리들에게 건강하고 합리적인 보수주의자 유시민의 모습은 보수, 진보를 나누는 새로운 기준점을 보여줍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보기 드물게 제대로 된 보수주의자이기 때문이죠.
이자유: 어쨌든, 유시민씨는 지금 대한민국에서 국가의 역할이 지금보다 커지길 원하고 있는 것 아닙니까?
김평등: 글쎄요, 유시민씨가 자신 스스로 직접 보수주의자로 말하지 못하고 진보주의자인 척 하는 이유는 이른바, 보수주의의 탈을 쓴 이 사회의 사람들, 바로 당신 같은 사람과 자신이 동일시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었던 것 아닐까요? 유시민씨의 말을 한번 들어보시죠.
"자유주의는 한마디로 말하면 매사에 개인의 선택을 존중하는 거죠. 국가나 사회를 개인의 위에 놓지 않고 개인을 사회에 종속시키지 않는 것이 자유주의란 얘깁니다.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자유주의자라고 주장해왔던 사람들은 전부 엉터리입니다."
이 말을 바꿔 말하면, 이 시대,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 보수주의자라고 주장해왔던 사람들은 전부 엉터리라는 얘기가 되지 않습니까? 유시민씨는 바로 그런 사람들과 자신을 차별화시키고 싶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왜, 우리는 그를 진보주의자라고 착각해온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 사회가 진보, 보수의 정확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고, 과연 진보주의자인지, 보수주의자인지 다른 사람들이 혼동스러워할 정도로 그가 불편부당한 태도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시시비비를 가려왔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그는 명백히 보수주의자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를 보고, 유시민씨가 보수주의자일 거라는 단정을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그런 사람들에게 더 혼동을 줄 수도 있는 유시민씨의 말을 소개한다.
보수는 극우적 구질서가 남긴 제도적 문화적 이데올로기적 잔재를 활용하려는 비정상적 행동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진보적 가치와 아울러 개인의 자유라는 민주주의 기본가치를 실현하는 임무까지도 진보의 몫으로 맡겨진 것이다. (2002년 7월 13일 세종문화회관 강연에서 유시민)
그가 보수적 성격의 자유주의자인지, 보수의 비정상적인 태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유주의를 떠안게 된 진보주의자인지에 대해서는 이제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혹시 그는 남과 북 양쪽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송두율 교수와 같이, 진보와 보수 양쪽 진영으로부터 모두 인정받지 못하는 경계인은 아닐까? 이 시대에 우리 사회에서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지 않고 양심을 지켜나가기란 참 어려운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