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 지방선거 재·보선 결과에 관한 수많은 여론보도와 논평이 나오고 있다. 주요논점은 열린우리당의 패배와 그 원인분석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지적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자만과 실정에 대한 '국민들의 심판'이라는 것이다. 즉 여당의 참패는 자초한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다.
먼저 이번 선거의 결과를 객관적으로 보자. 열린우리당은 광역단체장 4곳 모두 졌고, 기초단체장도 19곳 중 3곳에서만 승리했으며, 광역의원의 경우 38곳 가운데 6곳에서만 승리하였다. 열린우리당의 완패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불과 51일 전에 있었던 4·15 총선의 결과와 비교했을 때 급격한 민심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17대 총선과 이번 재·보선을 동일한 수준에서 평가하기에는 조심스러운 면이 없지 않지만, 선거라는 정치적 이벤트에서 보여지는 일반적인 면을 중심으로 분석해 보면 다음의 점들을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동원할 사회적 기반과 자원이 부족한 열린우리당
우리나라와 같이 대의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운용하는 국가에서의 선거는 한 사회 내 존재하는 다양한 갈등(conflicts)과 균열(cleavages)들을 동원(mobilization)하여 대안을 형성하는 정당들간의 경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 16대 총선까지 선거에서 주로 동원된 것은 지역주의였다.
지역할거 정당은 정책적 대안을 형성하기보다는 지역감정을 동원함으로써 보다 쉽게 의석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17대 총선에서는 '지역'이라는 균열만이 아니라 세대와 계층이라는 균열이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였다. 지역주의 정치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17대 총선의 구도는 '탄핵 대 반탄핵'의 구도에서 치러진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반핵반대에 대한 국민여론을 바탕으로 과반의석의 여당이 된 반면, 탄핵의 주역인 한나라당은 지역 이외의 균열을 동원하지 못했고, 탄핵에 대한 국민적 심판을 표로서 받고 말았다.
여기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열린우리당인 '탄핵에 대한 국민적 반대'라는 한국사회의 균열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지만, 그 외의 다른 균열은 동원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것은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공약을 봐도 알 수 있다. 물론 다르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열린우리당은 그 자신의 역량으로 동원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과 자원을 충분히 가지지 못했다.
이런 구조적인 한계는 이번 재·보궐 선거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지방의 일꾼을 뽑는 선거를 중앙정치의 연장선에서 선거에 대비한 여야 지도부의 선거전략은 정책과 차별성의 부재를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
정권과 여당에 대한 총선 후 중간평가라든가, 여당후보를 찍어야지 정부로부터 지원을 많이 받아 지역이 좋아진다라든가, 여기에도 저기에도 연고가 있다고 말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선거에 임했다. 각 지역에 있는 지역민의 기대와 그들의 균열 구조가 지방선거에 반영되기는커녕 중앙정치의 연장선에서 선거에 접근했다.
그 결과 각 정당의 정책(공약)과 후보들간의 차별성은 부각되지 못했고, 결국 '지역'이나 '계급', '계층', '세대', '탄핵반대' 등의 사회적 자원을 동원할 균열이 없는 열린우리당은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을 극복할 수 없었다.
불과 51일 전의 총선에서 수도권과 호남 및 충청도에서 압승을 거둔 열린우리당의 선거결과와 비교한다면 분명 이번 재보선은 현 정권과 여당에 대한 평가가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즉, 유권자들은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대해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51일간의 회고적 투표(retrospective voting)를 했다고 볼 수 있다.
낮은 투표율은 '소극적 반대'의 의사표시
정치개혁과 경제회복의 기대를 안고, 노 대통령의 집권 2기의 강력한 정책추진을 기대하며 열린우리당을 지지했던 유권자들은 기권을 통해 그리고 다른 당 후보의 지지를 통해 열린우리당과 노무현 정권에 대해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물론 투표율 평균 28%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기권이라는 소극적 반대의 의사를 기권자의 대다수가 가졌다고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2002년 대선에서 정몽준씨가 돌연 노무현 후보의 지지를 철회했을 때 젊은 유권자들이 보여준 '투표독려 문자메시지와 인터넷 글들'을 생각해 본다면, 이번의 낮은 투표율은 간접적인 반대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열린우리당이 주장한 것처럼 투표율이 높았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가정은 성립되기 어렵다.
이번 재·보선 결과를 놓고 많은 평가가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은 이번 선거의 패배는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자초했다는 평가가 그것이다. 총선에서 나타난 '개혁을 확실히 하라'는 유권자의 요구에 대해 열린우리당 지도부는 '첫째도 개혁, 둘째도 개혁, 셋째도 개혁'이라면서 말로는 반응했지만, 몸은 이를 따라주지 못했다.
정동영 전 의장과 김근태 의원의 통일부 입각에 대한 갈등, 노 대통령의 연세대 강연에 대한 국민의 낮은 평가, 아파트 분양가 공개 공약의 철회, 김혁규 의원의 총리기용에 대한 정당성 및 설득노력의 부족, 이라크 파병 강행표명, 국민체감 경제 어려움에 대한 정부 측의 인식부족과 경제회생의 비전제시 부족 등으로 민심은 급속히 대통령 및 여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국민의 뜻에 따르지 않고 탄핵안을 가결시킨 후 총선에서 패배했듯이, 열린우리당은 총선 이후 국민들에게 안정적 국정운영 및 정치개혁을 위한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고, 이번 재·보선에서 패배했다. 열린우리당은 두 달 전의 교훈을 반면교사로 삼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학자는 '정치'를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평가한다. 그리고 그 '가능성'은 '대안의 형성과 조직'을 통해 높아진다. 김대중, 노무현으로 이어지는 한국정치의 마이너리티(비주류, 소수파)의 집권이 가능했던 이유는 국민들이 그들을 새로운 '대안(세력)'으로 인식하고 지지했기 때문이다.
대안이 있지만 조직되지 않았다면, 또 조직되었다고 해도 대안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결코 국민들로부터 선택될 수 없었을 것이다. 국민들은 그때, 그 시대에 맞는 대안을 선택했다.
앞으로 임기가 4년 가까이 남은 노무현 정권과 과반수 여당인 열린우리당에 대한 평가를 지금 내리는 것은 분명 성급한 일이다. 그러나 4·15 총선과 6·5 재보궐 선거에서 나타난 결과만을 놓고 볼 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은 항상 '정치적 대안'을 찾고 평가한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선거에서 '정치적 대안' 찾고 또 평가
자신이 선택한 대안이 대안으로서 기능하지 못한다고 또는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국민들은 아쉬움 없이 그 대안을 버리고 더 나은 대안을 선택한다. 그러나 그 대안이 될 정치권은 그 자명한 사실을 자주 잊곤 한다. 한마디로 국민 무서운 줄 모른다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은 4·15 총선의 승리에 취해 국민의 관심과 기대를 생각하지 않았다.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김혁규 총리 지명에 대한 설득부족, 유력 정치인 입각에 대한 무성한 소문과 갈등양상, 선거공약으로 제시한 부동산원가공개의 철회 등은 국민들이 현 정권과 여당의 개혁의지를 의심케 하기에 충분했다.
이 글을 통해 다수당과 대통령으로서의 겸허함과 여유를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민의 대표로서 가져야 할 책임감을 잊지 말고, 국민의 뜻에 따르라는 것이다. 국민의 뜻을 무시하고 대통령 탄핵을 주도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어떤 결과를 초래했는지 바로 얼마 전의 사례가 반면교사로 명백히 증언해 주지 않는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하루빨리 총선 승리의 달콤함을 잊어야 할 것이다. 대신 탄핵 이후 보여준 국민들의 촛불시위를 되뇌며, 국정운영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모습을 보여줄 때 17대 국회가 '일하는 국회'라는 인식을 국민들이 가질 것이고, '여유 있고 능력 있는 대통령'의 모습으로 노무현 대통령을 바라볼 것이다.
한나라당 역시 6·5 재·보선에서 나타난 결과를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로 해석하기보다는 현 정권과 여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의 반사이익으로 이해하고 정책야당 그리고 '대안' 정당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한나라당 역시 '지역주의'와 '반공'이라는 균열을 제외하고는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이 부족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선거결과에 대한 아전인수격의 해석은 곤란하다.
우리나라의 정치에서 발견되는 일반적인 특징은 선거과정에서는 개혁적인 목소리를 내면서도 집권 후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개혁적 목소리와 의지는 점차 약해지고, 기득권과 타협하고 보수 쪽으로 접근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이런 과정에서 선거에서 나타난 국민의 '기대'는 '실망'으로 변하면서 정치권에 대한 불신과 혐오감을 키워온 것이 또한 사실이다.
그리고 정권의 임기 말 늘 그랬듯이 심각한 수준의 레임덕 현상이 나타나 국가정책의 지속적이며 힘있는 추진이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이 그러한 전철을 밟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것을 피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국민들이 뭘 원하고 있는지는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정치인들이 하자는 대로 하는 예전의 국민이 아니다.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맛보았고, 또 실천한 경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