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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건 전 대통령의 생애를 조명한 <뉴욕타임즈> 인터넷 특별판
레이건 전 대통령의 생애를 조명한 <뉴욕타임즈> 인터넷 특별판 ⓒ NYTimes.com
신문들은 연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레이건의 '성공 스토리'로 지면을 채우고 있다. 몇몇 신문들은 레이건을 '미국인의 위대한 아버지'로 표현하면서 그의 인간적인 면모와 재임시절 치적을 찬양하며 '잘 나가던 시절'에 대한 국민적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 분위기는 이번 주 금요일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이어질 전망이다.

틈새를 정치인들이 놓칠 리 없다. 더구나 지금은 대선을 5개월 앞둔 시점으로 부시와 케리 진영의 선거 캠페인이 한창 무르익어가고 있는 시점이다. 특히 부시는 매 연설 때마다 '냉전종식의 영웅' 레이건의 어록을 인용하며 미국민들의 애국주의적 감성에 다시 불을 지피고 있다.

무모한 이라크 침공과 이라크 포로학대 등으로 끝없이 인기가 하락해 위기감에 빠져 있던 부시는 레이건 전 대통령과 자신의 같은 점들을 내세우며 레이건의 국민적 인기에 편승해 자신의 지지도 회복을 노리고 있다. 물론 케리도 장례식이 끝날 때까지 유세와 모금파티 등을 중단하겠다고 발빠른 '대처' 조치를 취했다.

부시 "20년 전 레이건도 나와 똑같은 경험"

부시는 지난주 노르망디 상륙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탈리아와 프랑스 방문 중 수만명의 군중들이 반이라크전-반부시 시위를 하며 그에게 보여준 거센 적대감에 맞닥뜨려야 했다. 그는 이 와중에 레이건의 사망소식을 듣고 "레이건도 20여년 전 (나와) 똑같은 경험을 했다"면서 "그것(시위)은 나와 같은 우방 지도자가 신념을 변화시키기를 요구한 것은 아니었다"고 주장하는 등 '제 논에 물대기식' 해석을 했다.

< AP통신 > <워싱턴 포스트> <뉴욕타임스> 등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호기를 맞은 부시의 정치적 언사를 집중 보도하고 있으며 칼럼 등을 통해 부시와 레이건을 비교하는 기사들을 쏟아내고 있다.

AP통신은 7일 "둘 다 대통령 직무를 세금을 대폭 감면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했고, 이러한 정책이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는지 아니면 막대한 재정 결손을 가져오는데 그쳤는지에 대해 논란을 일으킨 것도 똑같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미국의 언론들의 부시와 레이건의 비교는 이러한 경제정책 성과에 대한 것보다는 두 사람의 정치 이데올로기와 정책 수행 방식에 대한 것에 집중되어 있다.

부시는 레이건의 '정치적 아들'

먼저 정치 이데올로기를 보기로 하자. 부시의 신보수주의는 비교적 온건 보수주의자로 알려져 온 자신의 아버지보다는 레이건에 더 가까운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부시는 자신의 아버지보다 레이건으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이다.

부시는 종종 "미국의 힘은 미국민들의 뜨거운 가슴과 정신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을 즐겨 사용하는데, 이는 레이건이 자주 사용했던 말이다.

부시는 1999년에 발간한 그의 자서전에서 "레이건 대통령은 미국의 위대함은 워싱턴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미국인 개개인의 가슴과 정신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서 "레이건은 해맑은 정신과 미국의 정의감에 대해 무한한 신뢰를 가졌으며, 나는 그의 이러한 낙관주의를 찬미한다"고 적었다. 한마디로 정치이데올로기 면만 본다면 부시는 레이건의 '정치적 아들'인 셈이다.

정책 추진에 보다 유연했던 레이건

이같이 정치 이데올로기의 면에 있어서 부시와 레이건이 유사한 특징을 가진 반면에 이를 실행하는 방식과 기술에 있어서는 현격한 차이가 있다.

즉 레이건의 보수주의는 부시의 보수주의보다는 더 실용적인 측면이 있다. 레이건은 결코 조지 부시가 했던 것과 같이 국민적 동의를 구해야 하는 중대한 정책을 밀어붙이는 식으로 실행하지는 않았다.

둘 다 정책입안을 보죄관들에게 일임하는 데 있어 같은 면을 갖고 있으나 이라크 침공에서 보듯 부시는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레이건이 했던 것보다 거칠게 밀어붙인다.

부시나 레이건은 흑백논리식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음에는 틀림이 없다. 레이건은 냉전시절인 1983년 3월 플로리다 올란도에서 가진 연설에서 최초로 소련 등을 가리켜 '악의 제국'(the Evil Empire)이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부시는 취임하자마자 이란-이라크-북한 등을 가리켜 '악의 축'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2002년 연설에서 부시는 이미 "악마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세력들을 제압하기 위한 레이건의 도덕적 단호함을 찬미한다"는 발언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표면적 단호함에도 불구하고 레이건은 군사력을 사용하는 데 있어 부시보다 신중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이다.

가령 레이건은 아프가니스탄, 앙골라, 니카라과의 민주화 추진 사례들과 냉전종식을 위한 노력에서 보여준 것처럼 미국의 군사력을 사용하기보다는 해당 국들의 민주화 투쟁가들의 역할에 일차적으로 의존했다.

'대화의 귀재' 레이건

부시와 레이건의 정책 추진 방식의 차이점 외에 둘 간의 큰 차이점이 또 하나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부시와 레이건은 대화 기술에 있어서 현격한 차이를 보여준다. 레이건은 할리우드 스타 출신답게 부드러운 대화법의 귀재이다. 대선에서 그에게 패배한 바 있는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 6일 레이건의 사망소식을 전해듣고 "레이건은 국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명료하고 쉽게 대화를 할 수 있었던 위대한 대화자였다"고 일성을 발했다.

반면에 부시는 대화 기술이 부족해 대부분 재담으로 이를 때우는 편이라는 것이 중평이다. 부시와 레이건은 둘 다 지적 능력에 대해 의심을 받았으며, 대외 정책에 경험이 부족한 '웨스턴' 스타일의 주지사라는 경멸 어린 비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대화술에 있어서만큼은 비교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레이건의 이같은 대화술과 중요 사안에 대한 신중한 태도는 상대편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도구가 되었다. 레이건은 종종 비판을 받기는 했지만 중요한 사안에 있어 공화당 바깥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퓨 리서치 센터의 여론조사 전문가인 앤드류 코헛은 AP통신에 "레이건과 부시의 가장 큰 차이점은, 레이건이 민주당원들로부터도 지지를 이끌어낸 데 비해 부시 부자는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라면서 "레이건은 결코 부시 부자만큼 극단주의자는 아니었다"고 말했다.

레이건의 인기는 1989년 그가 대통령직을 물러날 때 드러났다. 코헛에 따르면, 레이건은 미국민의 59%로부터 '평균 이상의 대통령' 또는 '뛰어난 대통령'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같은 분야에서 부시의 아버지 부시가 36%, 클린턴이 44%를 얻은 것에 견주면 레이건의 높은 인기도를 짐작할 수 있다.

결국 부시는 레이건과 '생각은 같으나 행동양식은 다른' 대통령이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 행동양식에 있어서의 이같은 차이점 때문에 레이건은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던 반면에, 부시는 실패를 거듭하며 정치권 안팎으로부터 '임무달성 불가능'(mission impossible)이라는 판정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현재 부시는 "미국의 힘은 국민이 아닌 대통령의 뜨거운 가슴과 정신으로부터 나온다"고 이해하고 있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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