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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돌아가시기 3년 전에 경작을 하지 않게 된 빈 논이며 밭에다 매화나무를 한 200그루쯤 심어 놓았다.
나는 매실 하면 광양이나 하동만 떠올려졌기에 왠지 경북 지방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매실을 따서 어찌해 보겠다는 아버지의 발상을 연세도 지긋한데 웬 벤처 창업이냐며 덧없는 것이라 여겼다.
처음 매화나무를 심으면 아무런 수확 없이 몇 년을 보내야 한다. 그 몇 년이 주는 지루함에 나는 우리 집에 매화나무가 있다는 것마저 잊고 있었다. 물론 매실이 열리리라는 기대도 애초에 없었고.
그러나, 아버지는 가고 없는데, 아버지의 매화나무는 드디어 첫 결실을 맺게 되었다. 아버지는 당신이 3년 전에 심어놓은 매화나무가 비로소 열매를 맺어 세상 속으로 나가 그 빛을 발하게 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가신 것이다.
몇 년 동안 너무도 막연한 기다림을 주던 매화나무는 그 기다림이 헛되지 않았음을 위무하듯 열매를 소복하니 맺어서 엄마와 우리들에게 수확의 기쁨을 느끼게 해 주었다.
마침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의 이웃들도 매실이 필요하다고 하여 지난주 매실을 따러 친정에 갔다.
일곱 박스(70kg)를 가져와서 분배를 하고 나니 판로를 걱정하던 엄마의 짐을 조금은 덜어준 것 같아서 마음이 개운하였다. 매실을 받아든 사람들 또한 매실이 깨끗하고 알이 좋다면서 만족해하였다.
매실 엑기스(농축액)는 지난해에 5kg을 담아 본적이 있어서 이번에는 15kg을 담그게 되었는데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다. 세상에 매실 엑기스 담그는 것만큼 쉬운 것도 없으리라.
<매실 엑기스 만드는 법>
우선 매실을 두어 번 가볍게 씻은 다음 소쿠리에 받혀서 물기를 뺀 다음 신문지 같은데 넓게 펴서 널어두면 금세 보송보송 해진다. 그 보송보송해진 매실을 유리병에 5분의 4 정도 넣은 다음 설탕을 위에서 부으면 매실과 매실사이의 공간에 설탕들이 차곡차곡 쌓인다.
매실을 다 덮을 정도로 설탕이 부어졌으면 유리병을 앞뒤로 서너 번 흔들어서 매실과 설탕사이에 빈 공간이 없도록 한다.
마지막으로 유리병 입구까지 설탕을 가득 부어서 밀봉하면 끝이다. 가끔 설탕이 병 밑바닥에 침전되어 있으면 휘저어 주거나, 윗 부분에 곰팡이가 끼면 그것을 걷어내고 설탕을 한차례 더 부어주면 된다.
그렇게 석 달을 묵혔다가 생수나 오차 물에 희석하여 먹으면 더위에 지친 가족들에게 그만이다. 물론 석 달을 못 참겠으면 두 달만에 먹어도 맛은 일품이다.
15kg을 다 담아 놓으니 5kg들이 유리병이 4개나 되었다. 그것을 아이들 손이 타지 않게 4단 책꽂이 위에다 모두 얹어 놓으니 그저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뿌듯하다.
삶과 죽음은 어찌 해볼 수 없는 '단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매실로 인해 해마다 유월이면 마음으로 아버지를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도 매화꽃 향기와 매실의 탐스러움에 반해 나랑 '매실 연가'를 부르지 않고는 못 배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