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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오전 비전푸드 사무실에는 신 사장의 영정없이 책상위에 양촛대 2개와 향을 피워 신 사장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보이지 않고 신 사장의 지인이라고만 밝힌 남성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14일 오전 비전푸드 사무실에는 신 사장의 영정없이 책상위에 양촛대 2개와 향을 피워 신 사장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보이지 않고 신 사장의 지인이라고만 밝힌 남성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오마이뉴스> 이승후 기자입니다. 지난 13일 저녁 8시13분∼8시17분 사이에 제 휴대폰으로 3건의 문자메시지가 들어왔습니다. 문자메시지를 보낸이는 식약청과 언론에서 '불량만두 제조업체'로 발표한 비전푸드 신영문 사장이었습니다.

문자메시지의 원문은 이렇습니다. 맞춤법을 고치지 않고 그대로 적습니다.

"기자님 우리 자식들 아빠 불량만두을 알고 만들어다하고 왜 먹어나 그 오명 꼭 벗겨주세요

국민여러분 정말 쓰레기 만두 않입니다. 정말 알고 만들지 안았습니다. 지금까지 어떻게 알고 만들숙

제 체임만으로 쓰레기 만두 파동이 끝날수만 있다면 자식들에게 나쁜 아빠가 안이고 훌륭한 아빠"


신 사장이 2분여의 간격을 두고 보낸 3건의 문자메시지는 맞춤법도 틀리고 두서도 맞지 않아 정상적인 상태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게다가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 작가가 "신 사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거절하더라"며 "'죽고싶다'는 말을 계속했다"고 제게 알려왔습니다.

저는 수소문 끝에 알아낸 신 사장 친형에게 정황을 설명하고 빠른 조치를 당부했고, 즉시 전남 화순경찰서로 향했습니다. 이후 상황은 여러 보도를 통해 독자여러분께서 접하신 내용과 같습니다.

밤 9시10분경 전남 화순경찰서에 도착한 저는 얼굴이 시커먼 흙빛으로 변해버린 신 사장의 친형을 만났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아무 일도 없으면 좋겠다"며 안정을 찾으려 애쓰던 그는 밤 9시30분경 반포대교에서 신 사장의 휴대폰과 구두, 유서가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곧바로 허물어졌습니다. 그리고는 언론에 대해 '저주에 가까운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14일 오전 전남 화순군 동면 농공단지에 위치한 비전푸드 공장 한 켠에 만두를 가공하기 위해 구입한 당면 등이 쌓여있다.
14일 오전 전남 화순군 동면 농공단지에 위치한 비전푸드 공장 한 켠에 만두를 가공하기 위해 구입한 당면 등이 쌓여있다. ⓒ 오마이뉴스 강성관
저는 지난 11일 신 사장과 인터뷰를 했습니다. 모든 국민의 엄청난 분노를 폭발시킨 '불량만두' 제조업체 사장이 '무슨 할 말이 있으랴'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신 사장과 1시간 동안 얘기를 나눈 후 불량만두 파동이 몇몇 업체만의 잘못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두업계가 그동안 써왔던 무말랭이에 대한 근본적 관리시스템을 세우지 않았던 정부, '쓰레기'에 분노한 국민여론과 맞물려 상승하던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 분노는 계속 확대재생산되고 있던 때라 신 사장이 자신의 주장을 말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물론 문제의 무말랭이를 납품받아 소비자의 입에 직접 들어가는 만두를 만들어 판매한 신 사장의 책임도 막중합니다. 신 사장은 인터뷰 당시 "무말랭이 납품업체인 ○○식품을 한번이라도 방문했다면 이런 일을 막을 수 있었을 텐데"라며 긴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신 사장은 인터뷰 당시 자신의 책임을 전적으로 인정하며 공장 폐업에 대한 언급도 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만들어 파는 만두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습니다. 비록 "○○식품에서 문제의 무말랭이를 납품 받아왔지만, 그동안 만들어왔던 만두의 성분검사에서는 아무 이상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신 사장이 '불량만두' 파동과 관련해 정부만큼 강한 불만을 쏟아낸 곳은 바로 언론이었습니다. 신 사장의 '이유 있는 항변'이 조금이나마 받아들여질 곳은 언론이었지만, 어디에도 자신이 설 수 있는 틈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신 사장은 "언론이 계속 '쓰레기'라는 단어만 부각시키고 근본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고있다"며 "정부보다는 만두공장만 죽일놈으로 매도한다"고 분개했습니다.

14일 오전 현재 아직 시신은 찾지 못했지만, 반포대교에서 뛰어내린 신 사장은 이승을 하직한 것이 확실시되고 있습니다.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는 것으로 '불량 만두' 파동이 해결되기를 바랬던 신 사장의 염원 때문이었을까요? 드디어 오늘 유통·식품업체가 '만두 살리기'에 나섰다는 한 언론사의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러한 상황전개가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답습해왔던 관성을 또한번 따라가고 있다는 걱정이 앞섭니다. '쓰레기 만두소'가 시장에 대량으로 유통되는 것을 막지 못했던 시스템의 부재, 중소하청업체와의 공생을 외면하는 대기업의 사업관, 근본원인과 대안을 찾기 위한 언론의 노력이 미진한 상태에서는 제2·제3의 파동과 희생자들이 나올 개연성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과거 라면업계의 '공업용 우지 파동'이나 골뱅이 통조림의 '포르말린 논쟁'같이 말입니다.

어제(13일) 밤 화순경찰서에서 신 사장의 유서 등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접한 저는 '기자는 누구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그리고 며칠 전 직접 인터뷰했던 당사자가 제게 문자메시지를 보낸 후 한강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스스로에게 한 물음에 대한 답조차도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화순경찰서에서 상황을 실시간으로 체크한 결과 신 사장의 투신에 대한 보도를 단독으로 내보낼 수 있었습니다. 이른바 '특종'을 한 셈입니다.

그러나 이런 '특종'은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신 사장의 투신을 접하면서 제가 하고 있는 '기자질'이 얼마나 위험하고 살벌한 칼날 위에 서있는지 가슴 아프게 깨달았습니다.

신 사장은 "'쓰레기'라는 오명을 벗고싶다"는 말을 남기고 이 세상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쓰레기 만두', 아니 모든 먹거리의 안전을 담보할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아직도 미약하기만 합니다.

과연 신 사장은 몸부림을 쳐가며 빠져나가고자 했던 오명을 벗었을까요? 우리 모두가 답해야 할 신 사장의 물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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