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시대적 상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문학이 형상화한 상황은 역사적 사실 그 자체는 아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문학 작품을 읽을 때는 역사적 사실성에 의미를 두기보다 그 작품이 현재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유의해야 할 것이다. 세인들이 고전이라고 평가하는 작품은 분명 지금 우리에게도 의미 있는 작품이다. 시대를 뛰어넘는 무언가가 그 속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당신들의 천국>(이하 <당신들>)과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하 <난쏘공>)은 현대 문학 작품 가운데 고전으로 꼽을 만한 작품들이다. 당시 시대 상황을 잘 담고 있으면서, 지금 우리에게도 여전히 많은 고민거리를 던져주며,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해서 많은 의미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발정책을 이끌어간 정부는 근대화를 사회 전체 경제적 성장속도로만 측정하며, 행복을 국민소득이라는 평균적 가치로 환원시켜 다수의 행복을 위해 사회적 약자를 희생시키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시대적 상황을 살펴 본다면, <당신들>과 <난쏘공>은 70년대 발전과 진보의 논리 속에서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해 철저하게 고민한 작가들의 사자후에 다름아니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미셸 푸코는 정상·비정상의 경계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던진 바 있다. 그의 분석은 넓게는 정치적 권력에 대한 비판이자, 좁게는 일상 속에서 나타나는 규율적 권력에 대한 비판으로도 의미가 있다. 이런 분석의 틀로 <당신들>과 <난쏘공>을 바라보면, 70년대 상황 속에서 나환자들과 난쟁이는 분명 비정상적인 사람들이었다.
근대적 과학과 의술의 발전 속에서 질병을 가진 자, 거대해져 가는 산업 사회 속에서 빈곤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부적응자인 그들을 정상인이 볼 때는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는 도태되어 마땅한 존재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나름대로 천국을 꿈꾸며 그들만의 공간을 만들어 간다. <당신들>에서는 육군 장교 출신인 조백헌의 지휘 아래 '나환자들의 천국'을 건설하고, <난쏘공>에서는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행복동'을 이루며 산다.
그러나 나환자들만의 천국을 꿈꾸었던 헌신적인 조백헌조차도 건강인·나환자의 경계짓기에서 자유롭지 못했으며, 행복동의 주민들이 새로운 공간으로 입주해 들어가려는 시도는 사기꾼들의 훼방에 의해 좌절되고 만다. 결국 이 두 작품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정상·비정상, 가진 자·못 가진 자의 울타리가 있는 천국은 누구에게도 진짜 천국일 수 없다는 사실이다.
<난쏘공>에는 뫼비우스의 띠와 클라인씨 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우리의 삶이 마치 뫼비우스의 띠, 클라인씨 병과 같음을 말하는 것이다. 정상인의 삶은 늘 정당하고 가치 있는 것인가? 비정상인의 삶은 과연 부당하고 가치가 없는 것인가? 부유한 자는 늘 행복한가? 가난한 자는 늘 불행한가? 거인은 늘 거인이고, 난쟁이는 늘 난쟁이일 뿐인가? 조나단 스위프트의 유명한 소설인 <걸리버 여행기>를 보면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걸리버는 소인국 릴리프트에서는 거인이 되고, 거인국 브롭딩나그에서는 소인이 된다. 거인과 난쟁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바로 이와 같다. 뫼비우스의 띠와 클라인씨의 병과 같다는 얘기다. 정상인·거인들도 근심 걱정이 있고, 불안에 휩싸이는 존재이다.
나환자·난쟁이라고 해서 마음에 풍요로움도 없고, 주위 사람들과 행복을 나눌 수조차 없는 존재는 아니다. 그런데 왜 우리들은 인생의 가치를 건강한 것으로만, 물질적인 것만으로 평가하여 나환자·난쟁이를 소외시키려 드는가?
푸코를 몰라도, 사회과학적인 지식이 없어도, <당신들>과 <난쏘공>을 읽는 독자라면 푸코의 문제의식을 뛰어넘을 수 있다. 조백헌이 만들고자 했던 천국은 결코 나환자들의 천국이 아니었던 것처럼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경계짓기를 통해서는 결코 억압과 규제의 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은연중에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난쏘공>도 마찬가지다. 가진 자·못 가진 자, 억압자·피억압자의 도식으로는 인간의 삶을 충체적으로 규명해 낼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발견할 수 있다.
난쟁이로 등장하는 비정상적인 존재가 그 시대에 정상인으로 판단되는 존재들보다 어떤 면에서는 훨씬 더 정상적이다. 70년대 근대화를 이뤄가던 시대 분위기 속에서는 가진 자 역시 사랑의 의미, 이웃의 의미조차 모르는 피해자일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작품은 드러내고 있다.
<당신들>과 <난쏘공>은 언제부터인가 자신을 정상인으로, 산업화에 적응한 거인으로 합리화하는 우리의 모습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으로 스스로를 바라볼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리고 시(是)·비(非), 선·악, 안·겉, 나·너를 구분하는 인간의 간사한 지식을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사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이런 경계 지음이 너무 많지 않은가?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건강인·나환자, 거인·난쟁이가 아직도 공존하고 있는 이 시대 속에서 근대에 대한 비판적 성찰로 대두한 포스트 모던의 화해의 속삼임은 또 다른 건강인·거인의 가면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