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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8시경, 일행들은 모카 부두로 갔다. 안개가 자욱했다. 정박한 배들도 안개에 가려 그 형체가 희미했다. 사람들도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두수는 손에 천 조각을 쥐고 사람들을 찾았다. 마침 바로 앞에서 생선 바구니를 짊어진 노인이 오고 있었다. 두수는 그 노인을 잡고 손에 쥔 천을 펼쳐보였다. 그것은 검은 여신이 그려진 그림이었다. 안개 속에서도 노인은 용케 까만 여신상을 알아보고는 손을 들어 부두 끝 쪽을 가리켰다. '검은 여신호'는 거기에 정박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저 아래로 내려갑시다."
말과 나귀들이 안개를 헤치고 줄레줄레 걸어갔다. 에인과 두수, 닌도 말 뒤를 따랐다. 안개는 점점 더 짙어져 열 발자국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부두 끝까지 온 것 같은데 흑단 조각상이 걸린 그 배는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가 없었다.
"혹시 그 배는 외따로 떨어져 있을지도 모르니까…."
두수가 혼자 말처럼 중얼거리며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때 등 뒤쯤에서 '부웅'하고 긴 뿔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두수는 다시 등을 돌려 나팔소리가 나는 쪽으로 향했다.
두수가 멈춰 서서 사방을 두리번거릴 때 바로 앞에서 배 하나가 부두로 들어오고 있었다. 선수가 흰 천으로 씌어진 배였다. 그 배는 아닌 것 같았다. 제후가 일러준 배는 선수에 검은 여신상이 걸려 있다고 했다.
두수가 막 돌아 서려고 할 때 그 배에서 다시 한번 뿔 나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선수를 덮었던 흰 천이 서서히 걷히는 것이었다. 두수는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그 위를 쳐다보았다. 큼직한 흑단 여신상이 안개 속에 드러났다. 틀림없는 그 배였다.
"저 배인 것 같습니다."
두수는 곁에 선 에인이게 알린 후 손에 들고 있던 흰 천을 흔들었다. 그러자 검은 사람 둘이 갑판에서 밧줄 사다리를 내렸고, 한 사람은 그 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다. 안개도, 사다리도 일렁거려서인지 그 검은 사람들이 흡사 저승사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호송원들이 겁먹은 얼굴로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안개 속의 흰배, 게다가 검은 여신상, 에인이도 예사롭지 않아 잔뜩 긴장을 하는데 두수는 태연하게 말했다.
"장군님, 이제 저 배를 타셔야 합니다."
"이제 나는 저승으로 가야 한단 말이지?"
에인이 확인이라도 해보고 싶어 그렇게 물었는데 두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저 배가 저승으로 가는 것이 사실인가 보았다. 그렇다면 이제 자신이 할 일은 마지막 말을 남기는 것뿐이다.
"가서 촌장에게 전하시오. 참 무정한 사람이라고. 이왕 저승으로 보낼 것이면 당장에 그렇게 할 것이지 고생스런 사막 길은 왜 걷게 했느냐고. 근 열흘이나 끌고 다니다가 이렇게 보낼 것은 또 뭐냐고…."
"예, 그렇게 전하겠습니다."
그때 닌이 가만히 그의 등을 밀었다. 어서 그만 배에 오르라는 뜻이었다. 에인은 성큼성큼 밧줄로 다가가 그대로 오르기 시작했다. 멈칫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가 중간쯤 오르다 아래로 내려다보니 닌이도 따라 올라오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그대도 돌아가시오!"
"저도 함께 가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여태 그래왔듯 닌은 변성으로 대답했다.
"아니오. 내가 만약 왕족이나 장군의 신분으로 저승에 간다면 으레 그대 같은 동무를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나는 지금 그런 처지가 아니지 않소. 자격이 없단 말이오. 필요도 없고. 그러니 이만 돌아가시오!"
에인이 그 말을 남기고 혼자 배에 올랐다. 닌 역시 서둘러 올랐다. 그러나 밧줄 사다리는 매우 미끄러웠고 게다가 짙은 안개까지 그녀를 에워싸 눈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닌은 손과 발에 온 힘을 쏟아 또박또박 갑판까지 올랐다.
두수는 말 두 마리의 고삐를 잡고 그 배를 지켜보고 있었다. 닌이 오르고, 아래로 내려온 그 검은 사람까지 오르자 밧줄 사다리도 걷혔다. 그러자 곧 배가 사라지기 시작했고 그 자리에 더 짙은 안개가 덮여들었다.
두수도 등을 돌렸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밤새껏 항해해온 '검은 여신 호'는 이제 햇살의 바다로 진입했다. 사방이 에메랄드처럼 푸른 홍해바다였다. 해가 배를 감싸고 또 그 앞에 은색 빛을 뿌렸고 배는 그 길을 따라 미끄러져가고 있었다.
갑판에서 잠들었던 에인이도 번쩍 눈을 떴다. 푸른 하늘이 이불처럼 그를 덮고 있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사방을 둘러보았다. 끝도 없는 넓은 바다가 배를 둘러쌌고 아침 해가 그 위에 떠 있었다. 전혀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전경이라 그는 그만 당혹스러웠다.
그는 도로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머릿속이 다시 복잡하게 얽혀들었다. 의심과 분노, 체념, 절망 등, 갖가지 인간의 감정들이 한차례 회오리치고 지나갔다. 사막에서 만났던 그 돌개바람처럼 모든 것이 한 자리에 엉켜 빙빙 돌기만 했다.
'정말이지 나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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