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체 주변에 피나 골편(骨片), 뇌조직들이 보이지 않는 것은 전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즉 사체가 이동되었다는 것을 사진이 보여준다.(미국 LA경찰 과학수사부 현장감식반 Chase Choe)"
"사체 주위에 피가 너무 없다. 머리에 총상을 입을 경우 사체 주위에 피나 골편, 뇌조직이 산재해야 하는데 현장 사진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미국 NY경찰 현장감식반 Gary R. Gomula)"
"자살했다면 총에 피가 묻어야 하는데 총에 피가 보이지 않는다. 또한 자살했다면 총상의 각도를 볼 때 땅에 총을 대고 쏴야 하는데 총 개머리판에 흙이 보이지 않는다.(미국 LA경찰 과학수사부 총기감식반 Rafael Garcia)"
"왜 총에 피가 묻어 있지 않은지 의문이다. 여러 번 자세히 들여다봤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아 의문이다.(노여수 박사·재미 법의학자)"
미국 LA·NY경찰 총기감식반과 현장감식반 관계자, 재미 법의학자는 지난 84년 허원근 일병이 군복무 중 자살했다는 국방부 발표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은 사고 당시의 사진을 검토한 결과 "허 일병의 사체가 처음 발생한 사고 장소에서 사진 상의 장소로 이동된 것으로 보인다"는 일치된 소견을 밝혔다.
허원근 일병의 사망 사건을 조사중인 대통령 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위원장 한상범)'는 지난해 11월 미국을 방문해 이들 총기 전문가와 검시관에게 허 일병의 사건을 의뢰한 결과 ▲M16소총의 화력을 고려할 때 세 군데의 총상의 거리가 너무 멀다 ▲현장 사진에서 사체 주위에 핏자욱과 골편이 보이지 않는다 ▲처음 사건 현장에서 사체가 이동된 것으로 판단된다는 공통된 견해를 보였다고 밝혔다.
미국 총기전문가 "처음 사건 현장에서 사체가 이동된 것으로 판단된다"
지난해 10월 허 일병 사망 사고조사를 재개한 대통령 소속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이하 의문사진상위)'는 18일 기자회견을 열어 '국방부 특별조사단(이하 특조단)'의 허 일병 자살 결론에 대해 정면 반박했다.
이날 의문사진상위는 "당시 헌병대의 수사결과대로 허 일병이 폐유류고에서 M-16소총을 이용하여 3발을 스스로 쏴 자살하였다면 사체 주위에 핏자욱이 다량 발견되어야 당연하다"며 "헌병대 수사기록에 있는 현장 사진에서는 전혀 (핏자욱을) 발견할 수 없었다"며 사체가 옮겨졌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허 일병이) 두부 총상으로 사망하였는 바, 골편 등 뇌조직이 (파편으로 튀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은 것은 폐유류고가 사망장소가 아닌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당시 헌병대 수사 기록에는 "사망자의 두부 좌전방 30cm∼1m 일대에 골편이 산재해 있는바, 동소가 사건 현장임을 입증한다"고 되어 있다.
의문사진상위는 또한 자살에 사용된 총기는 허 일병의 총기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의문사진상위는 "당시 7사단 헌병대가 육군과학수사연구소(현 국방과학연구소)에 보낸 총기감식 공문에서 허원근 일병과 관련자의 총번이 수기(手記)로 수정된 것을 확인했다"며 "모든 공문은 잘못 기재하면 붉은 줄을 긋고 오타가 발생하면 직인을 찍고 수정하는데 당시 헌병대와 육군과학연구소의 접수발송대장에는 (이러한 조치없이) 총번이 수정돼 있었다"고 밝혔다.
의문사진상위는 또한 "총기 사망사고의 경우에 총기감정은 사건의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중요 사항임에도 감정의뢰서와 공문접수대장에 허 일병의 총번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수정되었다"며 "실제 감정 의뢰된 총기가 허원근 일병의 총기가 아닐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군 수사당국의 은폐·조작 의혹을 제기했다.
"국방부는 조사대상 기관… 특조단 수사는 물타기 위한 의도 짙다"
의문사진상위는 사건 발생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허 일병의 사체 현장사진 2장이 추가로 발견된 사실에 주목했다. 특히 국방부가 사진 발견 경로와 출처에 대해 전혀 설명하지 않은 점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의문사진상위는 "입수한 국방부 특조단 기록 가운데 당시 헌병대 기록에서 찾아볼 수 없는 현장사진 2장이 사건 발생 후 최초로 발견됐다"며 "국방부는 기타 사진과 기록이 존재하는지의 여부와 새로 발견된 사진 2장에 대한 출처를 명백히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의문사진상위는 이와 관련해 "새롭게 발견된 현장사진을 국방부 특조단이 어떠한 경위로 입수했는지에 대해 특조단 관계자를 상대로 조사하고자 했으나 출석을 하지 않아 입수 경위에 대해 조사하지 못했다"고 국방부의 비협조를 문제 삼았다.
의문사진상위는 또한 "본 위원회는 2002년 국방부의 요청으로 허원근 사건 조사기록 일체를 진상규명 차원에서 특조단에 제공했다"며 그러나 "국방부에 허 일병 사망사건 조사자료 일체를 제공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주요한 자료는 아직까지 제공하지 않고 있다"며 국방부의 비협조를 질타했다.
의문사진상위 관계자는 19일 "의문사진상위는 '의문사진상규명에관한특별법'에 근거해 조사를 진행한 반면 국방부 특조단은 조사활동의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민간인(사건 당시 관련자)을 상대로 조사했다"며 "피 진정 기관에 해당되는 국방부가 임의로 특별 조사한 것은 의문사진상위의 조사에 대한 물타기 성격이 짙다"며 국방부의 수사에 대해 문제삼았다.
28일 허 일병 조사결과 최종 발표… 허 일병의 "옷에 흡수됐다" 국방부 해명
국방부는 18일 '의문사진상위'의 조사발표 이후, 이를 반박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국방부는 이날 "공문이 수정된 것은 행정상의 실수이며 최초의 상황 보고서에 기록된 총번과 실제 총기 번호가 일치했다"고 해명했다.
또한 "(총구에 의한 허 일병의)몸에서 나온 피는 껴입은 옷에 대부분 흡수되었으며 미세한 뼛조각(골편)은 사진에 잘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며 "사진만으로 사체가 옮겨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리"라며 의문사진상위의 조사결과에 대해 반박했다.
의문사진상위는 지난 6개월 동안 진행된 허 일병 사망 사고에 대한 조사결과를 오는 28일 최종 발표할 예정이다.
의문사진상위 관계자는 19일 "허 일병 사건은 20년 전에 발생했지만 군 의문사의 모든 문제가 담긴 상징적인 사건으로 현재진행형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며 "허 일병의 죽음에 대한 진실규명을 통해 군대 내에서 더 이상 의문의 죽음이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사건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편 육군 제7사단 3연대 1대대 3중대에 근무하던 허 일병은 지난 84년 4월 2일 좌우 가슴과 머리 등 모두 3곳에 총을 맞고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헌병대는 "허 일병이 중대장의 가혹행위에 의한 군복무 부적응으로 폐유류고 뒤에서 자신의 M16 소총으로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제1기 의문사진상위는 "술에 취한 노모 중사가 M16 소총을 들고 난동을 부리다 오발해 허 일병을 숨지게 했으며 이를 자살 사고로 위장하기 위해 폐유류고로 옮긴 뒤 총 2발을 더 쐈다"는 조사결과를 내놓아 군 수사당국의 발표를 뒤집었다.
국방부는 자체 특별조사단을 구성해 법의학 토론회 등을 거치면서 허 일병이 자살했다는 결론을 내리고 "의문사위가 허 일병 사건을 타살로 날조하고 조작해 군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켰다"고 반박하는 등 허 일병 죽음을 둘러싼 공방이 전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