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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이면 남강을 지나는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의 사진 속의 다리 밑에는 일을 나가지 않는 덤프트럭이 빼곡히 들어선다.
비오는 날이면 남강을 지나는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의 사진 속의 다리 밑에는 일을 나가지 않는 덤프트럭이 빼곡히 들어선다. ⓒ 조경국
진양호에서 진주 시내 방향으로 오다보면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의 일부분인 사진 속의 다리가 남강을 가로지르고 있다. 차를 타고 지나갈 땐 별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지만 그 아래에 가만히 서있으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득함에 놀라게 된다.

비가 오는 날이면 이 다리 밑은 일을 쉬는 덤프트럭의 주차장이 된다. 장마철이면 건설업에 적을 둔(쉬운 말로 막노동이라 하자) 사람들은 싫든 좋든 일을 쉬어야 한다. 쉬는 것이 마냥 좋은 것은 아니다. 막노동이란 것이 원래 수입이 일정치 않기 때문에 장마가 길어지면 그만큼 수입이 적어지고 생활도 힘들어 진다.

이 근처에는 동생의 포크레인을 세워놓는 중기회사 공터도 있다. 이곳 진주시 판문동은 아직 택지 개발이 끝나지 않아 여기저기 공터가 많은 편이고, 아무 곳이나 주차시킬 수 없는 포크레인, 덤프트럭 등을 세워놓는 주차장 같은 곳이 있다. 중기 회사에 일정액을 내고 자신의 중장비를 세워 놓는 것이다.

건설경기가 좋은 지 나쁜 지는 이곳 공터에 건설 장비들이 많이 서있는지 없는지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경기가 좋다면 맑은 날 쉬고 있는 포크레인이나 덤프트럭은 찾아볼 수가 없고, 경기가 나쁘면 공터 빼곡이 차들이 자리를 잡는다. 내수시장이 불황이라고 아우성이지만, 지금 이곳 건설경기는 그렇게 나쁜 편이 아니다. 태풍 매미가 휩쓸고 간 피해 복구가 아직도 한창이기 때문이다.

동생도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일거리가 없어 포크레인을 놀리고 있었다. 포크레인 할부금을 못내, 타고 다니던 차까지 팔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동생뿐만 아니라 건설 장비를 가진 사람들의 대부분은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특히 할부를 안고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더욱 힘든 기간이었다.

일이 없어 할부금을 제때 갚지 못해 압류 당한 건설 장비들이 싼 값에 팔려 나간다는 이야기를 심심치 않게 들었고, 마지못해 유지비나 겨우 건질 임금으로 일하러 다니는 사람들도 많았다.

외환위기 직후엔 일한 대금으로 어음을 받았는데(요즘도 대부분 건설현장에선 장비 기사들의 임금을 어음으로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회사가 부도나는 바람에, 일은 일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떼이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그땐 근근히 이곳저곳 ‘월대’나 ‘일대’로, 말 그대로 길게는 한달, 짧게는 하루 이틀 늦가을 메뚜기처럼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며 일하는 것이 동생의 처지였다. 아내와 아이를 두고 건설현장 컨테이너 숙소에서 먹고 자고 하는 것이 말이 쉽지,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게 힘들었던 상황이 ‘매미’가 휩쓸고 간 다음부터 달라졌다. 매미의 피해가 워낙 커 동생은 지난해 여름부터 지금까지 쉴 틈 없이 일을 할 수 있었고, 덕분에 힘들었던 살림살이도 나아지기 시작했다. 부모님에게 용돈도 드리고, 조금씩이나마 빚을 갚으며 '매미' 이전의 고생을 지우고 있다.

10년이 다 되어 가는 포크레인을 땜질하듯 여기저기 수리해 가며 일하는 것이 어렵지만 그래도 쉬지 않고 일하는 것만으로도 동생의 고생은 보상을 받고 있는 셈이다.

세상이란 참 얄궂다. 어느 한쪽 기울어지기는 쉬워도 균형을 맞추긴 힘들다. 동생이 언젠가 말했다.

“태풍이나 불어서 남 피해 보는 것으로 밥벌이하는 것을 좋아할 수도 없고, 지방에서 경기 풀리는 것은 보아하니 싹수가 노랗고 복구공사 끝나면 장비 기사들 죽을 맛 일테지. 일 찾아 다닐라모 또 고생 좀 해야겠군. 이렇게 먹고살기 힘들어서야.”

동생의 말을 듣고 보니 어디 허물어지면 메우고 메워서 넘친 곳은 깎이고, 깎인 곳은 채우고 하는 세상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쪽의 상황이 나빠지면 저쪽의 상황이 나아지고, 저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 이쪽의 목소리에 귀가 쏠린다. 아직 세상살이 제대로 해보지 못한 철부지의 철없는 생각인가.

이번 여름엔 피해 없이 곱게 넘어 갔으면 좋겠다. 그래도 다리 밑에서 쉬고 있는 덤프트럭이 하나도 없고, 동생이나 건설장비 하는 분들도 일거리가 꾸준히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그러나 어렵다. 생각만으로 세상을 산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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