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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에도 어김없이 '고 김선일씨 추모' 광화문 촛불집회가 열렸다.
27일에도 어김없이 '고 김선일씨 추모' 광화문 촛불집회가 열렸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는 말은 너무 차가워서 입에 담질 못하겠습니다. '고인'이라 하기엔 너무 선한 얼굴을 가진 당신을…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아니 절대 잊어선 안됩니다. 제 마음속에서 항상 존재하실 당신을 품고 살아가겠습니다.

6월 22일은 억울한 대한민국의 역사가 쓰여진 날입니다. 우리는 당신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국회라는 쓰레기통에 처박혀 있는 쓰레기들과 싸울 것입니다." (손아무개·서울 S여중 3학년)


27일 일요일 오후 7시에도 어김없이 광화문 교보빌딩 앞 광장에서는 촛불이 밝혀졌다. 전날 1만5천이라는 숫자에 비해서는 턱없이 모자란 300여명의 시민들이 참가했지만, 어떤 날보다 진지했고 참가자들의 목소리는 더욱 컸다.

이날 촛불집회에는 특히 휴일을 맞은 중·고등학생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16세 나이에 우리 정부 실체를 느꼈습니다"

24일 촛불집회에서  '고 김선일씨께'란 편지를 낭독해 참가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한 여중생 손아무개 양.
24일 촛불집회에서 '고 김선일씨께'란 편지를 낭독해 참가자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한 여중생 손아무개 양.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발언에 나선 손아무개 양은 '고 김선일씨께'란 제목의 편지를 들고나와 낭독해 참가자들의 눈시울을 붉게 만들었다. 전날 촛불집회에 처음 나왔다는 손양은 "아침 뉴스에서 흘러나온 당신의 피살 소식에 어이가 없고 절대 믿어지지 않아 저는 TV를 멍하니 바라만 볼 뿐이었습니다"라며 "국민의 대표인 정부가 이리 당신을 짓밟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손양은 "당신의 소식에 내 뺨을 때려가며 제발 꿈에서 깨어나라고 소리쳤습니다, 하지만 이제 현실인가 봅니다"라면서 "16살 나이에 이 나라의 실체를, 이 나라의 음모를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부디 다음 세상에서는 이런 자기 핏줄도 지키지 못하는 반도에서 태어나 행성 같은 꿈을 꺾이시지 마세요, 편히 잠드소서"라며 편지의 끝을 맺었다.

후배의 감동 어린 편지에 고등학생 선배도 나섰다. 자신을 고2라고 밝힌 김아무개양은 "파병을 한다고 테러를 근절할 수 있다는 보장이 있는가"라며 "파병을 철회하는 것이 굴복이 아닌 더 큰 테러를 없애기 위한 자주의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참가자들의 환호를 받았다.

김양은 "이라크 해방을 명분으로 테러를 부추기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오히려 알 자르카위의 배후세력이라고 생각이 든다"고 비판한 뒤 "이제서야 6월 항쟁이 무엇인지, 일제시대에 어땠는지 배워가고, 어떤 언론이 옳은 소리를 하고 진보와 보수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학생이지만, 미국이 하는 전쟁과 우리 정부의 파병이 잘못됐다는 것쯤은 안다"고 외쳤다.

김양은 발언이 끝난 뒤 <오마이뉴스> 기자에게 "미국이 처음으로 이라크 침공했을 때 후세인 정권이 너무 나빠서 방법은 잘못됐지만 명분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이번 이라크 전쟁과 고 김선일씨 사건을 보면서 부시 대통령이 진짜 나쁘다는 걸 알았다"고 밝혔다.

밤 9시까지 2시간여 진행된 이날 집회에서 시민들은 '아침이슬', '광야에서', '함께 가자 이길을' 등을 합창했으며 "살려달라, 살려달라, 김선일을 살려달라", "추가파병 막아내자" 등 구호를 외쳤다.

행사 전후로 무대 앞에 마련된 분향소 앞에서 묵념을 하거나 분향을 하는 시민들도 많았고 방명록에 추모의 글을 남기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한편 아라크파병 비상국민행동은 내일(28일)도 역시 오전 10시부터 같은 장소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며 저녁 7시엔 촛불집회를 가질 예정이다.

"한국은 미국의 전쟁에 참가하면 안됩니다"
촛불집회 분향소의 방명록을 가득 채운 '추모의 글'

▲ 촛불집회 현장에 마련된 임시 분향소의 방명록에 한 시민이 '추모의 글'을 남기고 있다.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광화문 촛불집회의 무대 앞에는 언제나 고 김선일씨를 추모하기 위한 임시 분향소가 마련돼 있다. 시민들은 그곳에 헌화를 하고 방명록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분향소의 방명록을 들쳐보면 첫 몇 장에는 이름만 적혀있다. 하지만 한 장 두 장 넘길수록 김씨를 추모하는 글들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점점 뒤로 갈수록 방명록은 시민들의 마음이 담긴 '추모의 글모음'으로 바뀌어져 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한 나라를 대표해 버려진 생명,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방명록에 자신의 글을 남긴 이경임(19·안성)씨는 "우리 나라가 약소국이기 때문에 힘 한번 제대로 발휘 못하고 그를 죽게 만들었다"며 "정부에서 고귀한 생명을 죽게 만들었기 때문에 한 나라를 대표해 버려졌다고 적었다"고 설명했다.

고등학생의 글도 보인다. 자신을 '고딩 이계석'이라고 밝힌 시민은 "당신은 억울하게 돌아가셨습니다, 모든 책임은 대통령이 지어야 합니다"라고 주장했다. 경기도 한 구청에 근무한다고 적은 이아무개씨는 "지켜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며 "노무현 대통령을 찍은 손을 부러트리고 싶습니다,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찍은 손을 자르고 싶습니다"라고 절망적인 마음을 표현했다.

영어로 된 미국인의 글도 찾았다.

"Korea should not be fighting in American wars. Bush is a stupid terrorist. May your sacrifice be not in vain - US Citizen" (한국은 미국의 전쟁에 참가하면 안 된다. 부시는 어리석은 테러리스트다. 당신의 희생이 헛되이 되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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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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