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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열린 '오! 통일 코리아'에서 연출가 탁현민 팀장이 공연장 콘솔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
26일 열린 '오! 통일 코리아'에서 연출가 탁현민 팀장이 공연장 콘솔에서 지휘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지금까지 대중음악 기획·연출가들은 자신들의 현장 노하우를 공개하지 않았다. 특히 대중음악과 관련된 책은 거의 없었고 출판된 것도 현장과 동떨어진 것이었다. 실제 현장에 적용하기엔 무리가 따랐다. 현실에 기초하지 않은 이론은 기획·연출가의 감성을 둔하게 만들고 일의 진행을 더디게 만든다. 공연의 성공 역시 담보하기 어려운 것이다."

윤도현 밴드(아래 윤뺀)의 기획자이자 연출가 탁현민(31) 다음기획 콘텐츠사업부 팀장은 위와 같이 말했다. 아직 젊은 그가 이런 쓴말을 던질 수 있었던 것은 '지침서' 없이 맨땅에 헤딩했던 시행착오를 후배들에게 물려줘서는 안 된다는 다짐 때문.

그는 98년 참여연대 간사로 있을 당시 '이은미·자우림 콘서트'를 시작으로 전인권, 강산에, 이상은, 여행스케치, 지난해 윤뺀의 58회 공연까지 100여 차례 이상 대중음악 공연 기획과 연출을 맡았다. 최근 출간된 <뚜껑 열리는 라이브 콘서트 만들기>는 '공연연출가' 탁현민의 체험이 집약된 책이다.

이 책은 실례를 중심으로 공연 컨셉은 어떻게 잡는 지에서부터 후원사의 협찬 제안서 작성 방법, 음향과 영상·악기·특수효과·무대효과는 어떻게 하는지 등 탁 팀장의 8년여간 노하우가 집대성돼 있다.

기자는 26일 오후 7시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윤뺀과 금강산가극단이 함께 한 '오! 통일 코리아' 공연장을 찾아 그를 만났다. 이번 공연 역시 그가 기획부터 연출(가극단 측의 김재현씨와 공동 연출)까지 책임을 맡았다.

'뚜껑 열리는 라이브 콘서트' 저자이자 '윤뺀' 기획,연출가인 탁현민 다음기획 팀장.
'뚜껑 열리는 라이브 콘서트' 저자이자 '윤뺀' 기획,연출가인 탁현민 다음기획 팀장.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공연 시작 전, 가장 행복하고 떨리는 순간"

"오늘 공연은 가장 기억에 남을 거다. 여러모로 어려웠다. 윤뺀 공연에 들어가는 공력이 100이라면 이 공연은 1만이 넘었다(웃음). 사실 록밴드의 음향, 무대, 조명, 영상 등은 해온 게 있으니까 비교적 간단하다. 하지만 금강산가극단은 벌써 악기부터 몇 개가 추가됐는지… 그런 것들 하나하나 잡아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계속 소리가 돈다. 하울링(마이크에서 "삐"소리가 나는 현상)이 나곤 하는데 걱정이다."

공연 시작 1시간 전, 탁 팀장은 긴장된 듯 리허설이 막 끝난 무대 이곳 저곳을 살핀다. 굳은 표정. 이후 무대 뒤로 대기실에서 마지막 순서 등 점검을 마친 뒤 관중석을 지나 뒤에 마련된 '콘솔'(소리를 조작하는 콘트롤러)로 향한다. 콘솔 위에는 모니터와 헤드폰이 놓여진 '연출가'의 자리가 마련돼 있다. 공연 시작 30분 전.

"지금처럼 공연 시작 바로 직전이 연출가들에게 가장 행복하고 떨리는 시간이다. 아무리 공연을 많이 해봐도 마찬가지다. 같은 레퍼토리로 해도 장소, 관중 등 모두 새롭기 때문일 것이다."

음향, 조명, 영상 등 기술자들에게 준비됐음을 확인한 탁 팀장은 자리에 앉아 담배를 한 대 문다. 이때다 싶어 질문을 시작했다.

- 여러 가수들과 함께 공연했는데 어떤 가수가 가장 어렵나?
"모든 가수가 어렵다. 편한 가수가 없다. 무대에 서서 춤이나 음악 선보일 정도의 사람이면 얼마나 별난가. 사고체계나 접근 방법 자체가 다르다. 윤뺀의 경우 굉장히 독특하다. 같은 곡도 몇 번씩이나 새로 편곡을 한다. 곡마다 영상이나 모든 세팅이 다 돼 있는데 편곡을 바꾼다. 황당하다. 전인권씨의 경우 카메라로 클로즈업해서 잡는 걸 싫어한다. 이은미씨는 모니터 스피커에 신경을 많이 쓴다. 무대 장식할 바에는 모니터 스피커에 더 신경 쓰라고 한다. 반면 크라잉넛 같은 밴드는 어떤 환경에서든 잘 논다."

- 공연 기획자로서 느끼는 '대중음악 공연의 현실'은 어떤가.
"암담하다. 최근 서태지씨의 블라디보스토크 공연이 파행적으로 진행됐던 것과 아름다운 콘서트 등 취소된 공연을 보면 문제는 간단하다. 중간 브로커가 많다는 것이다. 완벽한 공연을 위해서는 주최사가 가수를 매니지먼트 하고 공연을 장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혹시 다른 문제는 없을까?
"우리나라엔 대중음악 공연을 수용할 공간이 거의 없다. 이런 체육관들은 공연에 대한 배려, 서비스 정신이 없다. 1년의 반을 공연장으로 대관할텐데 말인다. 그런데 기획자들은 이를 비판하지 않는다. 공연장과 틀어지면 공연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방송에서도 이제 대중음악에 대한 진지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영화처럼 음악정보 프로그램의 등장을 기대한다."

공연 뒤 윤뺀의 윤도현(가운데), 허준(왼쪽)과 포즈를 취한 탁현민 팀장.
공연 뒤 윤뺀의 윤도현(가운데), 허준(왼쪽)과 포즈를 취한 탁현민 팀장. ⓒ 오마이뉴스 강이종행
실수의 연속... 하지만 광란의 공연

공연 10분전. 모든 스태프들과 연락할 수 있는 인터콤을 착용한다.

"모두 인터콤 끼세요. 조명팀, 준비하시고요. 마이크 세팅 잘 됐는지 다시 확인하고 들어갑니다. 조명 아웃!"

탁 팀장의 말에 공연장 불이 꺼지고 관중들의 환호 속에 금강산 가극단의 공연이 시작됐다. 그의 눈엔 긴장이 엿보인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관중석 오른쪽 중간에 있던 카메라 때문에 안 보인다는 관객들의 지적이 계속된다는 것. 한 관객은 콘솔로 다가와 "촬영이 문제가 아닌 것 같은데요"라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현했다. 결국 공연 시작 20여분만에 카메라는 뒤로 빠질 수밖에 없었다.

30여분이 지나자 한시름 놓았는지 의자에 앉아 담배를 무는 탁 팀장. 우리 가락을 바탕으로 재즈, 레게 등 퓨전음악을 선보이며 무대를 장악하던 가극단의 공연 도중 다시 문제가 발생한다. 탁 팀장이 우려했던 하울링이 생긴 것이다. 당황한 표정이다. 가극단에 이어 등장한 윤뺀의 공연에서는 문제없이 잘 진행된다. 하지만 두 팀이 함께 나올 때는 또 다시 하울링. "아이참!" 그의 입에서 불만의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무대와 관객은 하나가 돼 '오! 통일 코리아'를 외치며 광란의 순간을 만끽한다. 공연의 분위기가 최고조에 이른 것이다. '우리는 하나'란 노래를 합창하며 공연시작 2시간 10여분만인 밤 9시 10분 모든 순서가 끝을 맺는다.

공연장은 환호와 박수소리로 축제분위기다. 하지만 탁 팀장은 고개를 숙인다. 여기저기 스태프들이 탁 팀장에게 "고생했어"라며 말을 건넨다. 다시 담배를 문다.

"연주자를 배려할 수 있는 기획자가 진짜다"

기획의 대선배이자 소속사 대표인 김영준씨는 "부족한 면도 있었지만 매우 성공적인 공연이었다"고 평가했다.

윤도현씨 역시 "오늘 공연은 성사단계부터 탁현민씨의 공이 컸다"라며 "좋은 기획자는 기획뿐 아니라 전체적인 분위기, 선곡까지 함께 하고 추진력도 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좋은 기획·연출가 상을 밝히기도 했다.

윤뺀의 베이시스트 박태희씨는 "좋은 연출가라면 뮤지션을 최고로 돋보이게 해줘야 하는데 탁현민씨는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 줘 고맙다"고 탁 팀장을 추켜세웠다.

이날 공연은 음향 등 기술상의 문제를 제외하고는 서로 다른 성격의 두 팀을 한 무대에서 선보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특히 무대에 섰던 가극단원들은 "우리의 연주를 연출가가 더욱 돋보이게 했다. 연출가 파이팅"이라고 입을 모았다.

"다시 하면 잘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쉬움이 남지만 나쁘다고 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런 소중한 경험들을 살려 공부하는 후배들에게 전해야 하지 않을까."

탁 팀장은 잘하든 못하든 과정을 대중들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말한다. 기자들의 연락처, 뮤지션들의 소속 기획사 전화번호조차 공개하려 하지 않는 대중음악 기획자들 속에서 그의 생각이 돋보이는 이유다.

"스태프는 흰색 옷도 입으면 안 된다. 튀면 안되니까"
화려한 뮤지션 뒤 숨어 다니는 스태프

▲ '오! 통일 코리아' 공연 뒤, 기념촬영할 당시 옆에서 함께 앉아 있는 탁현민(왼쪽), 김재현 연출가
윤도현밴드의 경우 무대에 서는 뮤지션들은 불과 5명인 반면, 스태프는 137명이라고 한다. 어마어마한 대식구다. 하지만 언제나 스포트라이트는 뮤지션들의 몫.

26일 '오! 통일코리아' 공연 역시 주인공은 뮤지션들이었다. 심지어 공연을 기획·연출했던 탁현민 팀장과 금강산가극단의 연출을 맡은 김재현(36)씨는 공연 끝난 뒤 피해 다니기 바빠 보였다. 공연 축하 리셉션장 밖 복도에 두 사람은 나란히 쭈그리고 앉아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항상 우린 이러고 있어요. 스태프들은 공연이 잘 될수록 숨어 다녀야 해요. 스태프들은 돋보이면 안 되요. 때문에 흰색 옷도 입으면 안됩니다."(탁현민)

"우리도 같아요. 누가 들어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는데도 항상 밖을 겉돌죠."(김재현)

이들의 이런 모습은 기념촬영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임원단과 뮤지션들은 여러 차례 기념촬영을 가졌지만 이 둘은 멀리서 바라보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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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동안 한국과 미국서 기자생활을 한 뒤 지금은 제주에서 새 삶을 펼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 아닌 밝음이 세상을 살리는 유일한 길임을 실천하고 나누기 위해 하루 하루를 지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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