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중앙회가 농민이 구입하는 농업용 면세유에 대해 오는 7월부터 공급가액의 2%에 해당하는 취급수수료를 징수하겠다고 발표하자 전국농협노조와 농민단체들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최근 일선 회원농협에 7월 1일부터 농업용 면세유류에 대해 판매대금의 2%에 해당하는 수수료를 징수할 것을 통보했다. 징수대상은 휘발유·경유·등유 등 면세혜택을 받아온 모든 농업용 유류로, 징수방법은 면세유류를 판매하는 일반주유소로부터 간접 징수하거나 농민들에게 직접 징수하는 방식이다.
농업용 면세유 제도는 유류에 부과하는 특별소비세 등 제 세금을 면제하여 농민들에게 영농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제도로 1986년부터 실시하고 있다. 농민들은 농협에서 면세유 구입권을 발급받아 기준에 정해진 양만큼 유류를 구매해 왔으며, 지금까지 별도의 수수료는 없었다.
정부위탁사업 면세유 수수료 농민에게 부과 방침
농협중앙회가 수수료를 징수하겠다고 한 이유는 관리업무 등에 따른 인건비 등으로 연간 약 638억원의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 농협중앙회는 이들 수수료 부과 수입액을 지역농협 90%, 중앙회 10% 비율로 나눠 갖는다는 계획이다.
면세유 관련 업무는 조세특례 제한법에 의거 정부위탁사업으로 정부가 취급수수료를 예산에 반영하여 농협에 지급해야 하지만, 정부는 면세유가 보조사업이라 예산 반영이 곤란하다는 입장이다. 농협중앙회는 수익자 부담의 원칙을 내세워 이 비용을 대신 농민들한테 징수하겠다는 방침이다.
면세유 공급량은 지난해 295만 리터, 금액으로는 1조1102억원 정도의 분량이다. 중앙회 계산대로라면 일선 농협을 통해 농민들에게 220억원 정도를 수수료를 징수해 중앙회는 그중 22억 정도를 가져가는 셈이다. 올해 예정된 공급량은 303만9000리터 분량으로 총 240억원의 수수료 징수가 예상되고 있다.
이 같은 농협중앙회의 방침이 결정되자 전국농협노조(위원장 임성주)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농협노조는 21일 성명에서 "면세유 공급업무는 농민조합원의 이용편리와 실익을 위해 손익을 떠나 농협이면 당연히 해야 하는 몫"이라며 "벼랑에 선 농민들의 고혈을 쥐어짜, 지시문서 한 장으로 22억원을 가져가겠다는 것은 날강도 같은 짓"이라고 주장했다.
농협노조는 "면세유 취급업무로 인한 지역조합의 비용부담은 당연히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며 "농협중앙회는 모든 협상력을 동원해 정부에서 예산편성을 하도록 하고, 이것이 불가능하다면 해당 비용은 농협중앙회가 조합에 지급해야 마땅하다"고 밝혔다.
농협노조 반발 "농민 피 빨아 제 배 채우려는 수작"
농협중앙회의 수수료 징수 방침은, 수수료 징수 여부를 규정하고 있는 조세제한 특례법에도 상충돼 논란을 빚고 있다. 이 법 106조의 10항에서는 수수료 징수 여부를 지역조합이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농협노조는 "중앙회가 취급수수료를 강제하겠다는 것은 조합의 자율권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것"이라며 "조합원의 재산을 도둑질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또 "(중앙회가) 수수료 수익에 눈이 먼 나머지 벼랑에 선 농민들의 피를 빨아 제 배를 채우려는 수작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문경식, 이하 전농)도 23일 성명을 통해 농협중앙회의 방침을 강력하게 규탄하고 나섰다.
전농은 성명에서 "농협중앙회의 면세유 구입권 발급 수수료 징수방침은 농민의 어려운 현실을 도외시한 채 농협의 수입만 생각한 파렴치한 행위"라며 "협동조합의 기본적 기능과 역할을 거부하는 반 농민적 처사이며 농민 수탈행위"라고 농협중앙회를 비판했다.
전농은 "면세유 구입권 발급은 판매사업이 아니라 민원서류 발급으로, 이는 당연히 행정기관이 해야 할 민원업무"라고 주장했다. 전농은 "각종 민원서류 발급은 150원∼600원이 고작인데 농협은 공급가액의 2%라는 천하에 없는 법을 만들어 농민들을 수탈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전농은 아울러 "농협은 지방세 등의 수납을 4천만여건을 무료로 대행해 주면서 그 1/100에도 미치지 못하는 면세유 발급에 대해서는 그 책임을 농민들에게 전가하려는 것"이라며 "수수료 징수를 강행한다면 강력한 규탄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농협중앙회 "제반 총괄 수수료... 주민등록 발급과는 달라"
한편 농협중앙회 한 관계자는 "토지대장을 끊더라도 행정 민원에 대한 서비스 수수료를 받고 있지 않느냐"며 "위탁수수료를 정부가 주면 좋지만, 수익자 부담원칙에 의해 100% 면세혜택을 98%로 2% 줄이는 것뿐"이라고 설명했다.
판매대금의 2% 수수료 징수 방침과 관련해 이 관계자는 "면세유 제반업무에 대한 일종의 총괄 취급 수수료"라며 "단순히 주민등록 등본을 발급해주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농기계 조사와 전산관리 등 면세업무에 따른 민원업무가 많다"며 "수수료 징수액은 전국 2100여개 사무소에서 들어가는 제반실비의 1/3에도 못 미친다"고 해명했다.
다음은 서필상 전국농협노조 정책실장과의 일문일답
- 농업용 면세유는 지금까지 어떻게 공급돼 왔나.
"농협법이 개정되기 전인 2002년 1월까지는 지역 농협 자체적으로 정유회사와 직접 거래해왔다. 그런데 중앙회에서 볼 때는 공급량이 적지 않고 돈이 된다고 보고 중간에 끼여든 것이다. 이때 일정 시설이나 자본규모 없이도 중앙회에서 면세유를 취급할 수 있도록 법을 바꾼 것이다. 이때 면세유 구입 발급권을 지역 농협장에서 중앙회장으로 마저 바꾸려다가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
- 수수료 징수 방침에 어떤 문제가 있나.
"중앙회는 가만히 앉아서 정유회사와 지역농협간에 계약만 터주고 한 해 22억원의 수수료를 그냥 먹겠다는 것이다. 이것을 통상 우리는 '계통계약'이라고 부르는데, 말하자면 계약서 하나 써 주고 취급수수료를 받아가는 식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히려 가격경쟁력이 더 떨어진다는 것이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농약이나 비닐하우스 필름 등을 중앙회를 통해 공급하는 것을 명목으로 1000억 이상을 챙긴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 농협중앙회는 면세유와 관련한 실비 보전 차원에서 수수료 징수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데.
"앞뒤가 잘못돼 있다. 실제 관리업무가 적지 않지만 이 수수료는 정부가 예산에 반영해 지급해야 할 몫이다. 중앙회에도 이 점을 인정하면서 잘 안 되자 소비자인 농민에게 전가하겠다는 것이다. 농협을 수익단체로 인식하는 자체가 문제다. 농협은 조합원들인 농민이 잘 이용하도록 하는 조직일 뿐이다. 연말결산 때 '수익'이라고 부르지 않고 '잉여금'이라고 부른 이유도 그것이다."
- 수수료 징수권은 어디에 있나?
"중앙회는 한 해 공급량과 그에 따른 세부 지도사항만을 규정하고 있다. 취급수수료 징수 여부는 조세특례제한법에 지역농협이 자체적으로 결정하도록 하고 있다. 조합원 한 명 없는 중앙회에서 (수수료를) 걷어라 마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지역농협에서 안 받겠다는 것을 중앙회에서 일부러 받으라는 식인데, 지역농협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무시하는 처사다."
| | "농협중앙회, 면세유 장악 위해 농협법 개악 시도" | | | | 농협중앙회가 면세유 공급권을 장악하기 위해 농협법 개악을 시도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이미 지난 2002년 1월 14일 국회에서 지역농협에서 취급하고 있는 면세유를 중앙회가 직접 취급하기 위해 로비를 통해 농협법 제 12조 2항을 신설했다는 것. 이 조항은 농협중앙회가 농업용 석유류를 지역조합에 공급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석유사업법이 규정하고 있는 일정규모의 시설요건을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수익자 부담의 원칙을 내세워 농업인에게 수수료를 부담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된 것도 이때다. 농협중앙회는 2년이 지난 오는 7월부터 취급수수료를 강제 징수하겠다는 방침이다.
전국농협노조는 "농협중앙회는 2002년에 면세유 발급권을 지역조합장에서 농협중앙회장으로 변경을 시도했다가 실패한 사실이 있다"며 "다시 농협법 개악을 시도하려는 음모를 중단하라"고 주장했다.
농업중앙회 최근 면세유 수수료 관련자료에서 "2002년 1월부터 수수료를 받을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으나 유예해 왔다"며 "면세유를 농협이 전담 공급하는 시점에 징수키로 했으나, 관련법 개정 등이 지연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