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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몸이 달긴 달은 모양이다. <조선일보 역사 단숨에 읽기>라는 책을 펴내 중고등학교에 뿌리더니, 그것도 모자라 그 축약판 격의 팸플릿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이 팸플릿의 제목은 <조선총독부도 안티조선이었어?>로 돼 있다. <조선일보 사보>에 따르면, 우선적으로 20만부를 제작했다고 한다.

이는 자본의 공세로 안티조선운동의 효과를 상쇄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조선일보반대시민연대는 5월 16일부터 조선일보의 친일행적 규명과 사죄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리고 <탄핵의 배후에는 조선일보가 있었다> <조선일보는 한나라당의 배후다> 등의 팸플릿을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이를 벤치마킹 하여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조선>측 팸플릿의 차례를 보면, ▲'조선일보를 친일파가 창간했다고요?' ▲'안티조선' 원조는 조선총독부 ▲이봉창 의사를 ‘범인’이라 적었던 사연 ▲일장기와 일왕부부로 뒤덮인 ‘슬픈 1면’ ▲신문이 폐간 당하는데 ‘협력’하다니요 ▲뺏기고 버려지고… 윤전기의 기구한 운명 ▲흔들리지 않는 언론의 사명 등으로 돼 있다. 그 동안 안티조선측에서 제기해온 친일행적을 부정하고 변명하면서 마치 '항일신문'이었던 것처럼 왜곡하는 내용들이다.

압권은 역시 '안티조선의 원조는 조선총독부'라는 주장이다. 책의 제목은 물음표로 돼 있어 은유적 표현으로 알았는데, 보니 그게 아니다. 정색을 하며 주장하고 있다. 결국은 안티조선운동의 뿌리가 총독부의 <조선일보> 탄압이었다는 얘기가 된다.

안티조선의 원조가 총독부라는 주장의 근거는 “일제시대 신문 중 가장 많은 압수건수를 기록”했다는 통계수치다. 그래서 “요즘 일부 단체가 내건 ‘안티조선’의 원조는 조선총독부였던 셈이죠”(8쪽)라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필자가 누차에 걸쳐 그 진실을 밝혀왔지만, 다시 한번 분명히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친일신문'으로 낙인찍힌 당시의 <조선일보>는 당연한 결과로 독자도 모이지 않고, 따라서 신문 창간을 주도하며 투자를 약속했던 대정실업친목회 회원들이 비관적 전망을 내리고 주금 납입 약속을 지키지 않아 초장부터 난관에 부닥치게 된다. 이 상황에서 친일신문의 이미지를 불식시키는 게 당면한 과제였고, 그 전략의 일환으로 총독부와 대립하는 모습을 연출하게 된 것이었다.

사주 방응모에 대한 변론도 빠지지 않는다. “1946년 반민특위 명단에도, 2002년 광복회가 발표한 친일행위자 명단에도 오르지 않았던 방응모에 대해 왜 ‘안티조선’ 그룹들이 ‘친일파’ 공세를 펼치고 나섰는지 석연치 않네요”(15쪽) 라고 했다. 그러나 <월간중앙> 2001년 8월호에 공개된 반민특위 친일파 명단 초안에는 방응모의 이름이 뚜렷이 있다. 그리고 2002년의 친일행위자 명단에도 방응모 이름 석 자는 분명하게 들어가 있다.

1940년 8월 10일의 폐간에 대한 진실에 대해서도 계속 거짓말을 하고 있다. “만일 조선일보가 일제통치에 협력했다면 폐간을 당했을까요? ‘협력폐간’이란 말 자체가 앞뒤가 안 맞지 않습니까?”라고 너스레를 떨고 있다.

전시(戰時)에 언론의 역할은 너무나도 명백하며, 신문용지와 오일 등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그 많은 신문을 발행할 여유가 없는 때였다. 그래서 일제는 일본 본토에서도 1현1사 원칙에 따라 신문사를 통폐합하는 정책을 시행했고, <동아> <조선>의 폐간도 그 일환이었다. 그리고 <동아> <조선>은 충분한 보상을 받고 ‘협력폐간’했던 것이다.

팸플릿의 ‘책자를 펴내며’에는 “1920년 창간 이후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서 조선일보가 걸어온 길에 대해 잘못은 인정하고 오해는 바로잡아, 여러분께 객관적인 평가를 받고자 합니다”라고 돼 있다. 그러나 잘못에 대한 인정은 없고 역사 왜곡만 가득하다.

예를 들어 방응모에 대해 “일본 군국주의 말기에 사회 지도층의 한 사람으로 강압에 따른 친일행적을 일부 보인 것은 사실이나, 민족 반역이란 의미에서의 친일 행위와는 거리가 있습니다”(15쪽) 라고 했다.

강압이 있었다고 해서 모두 친일을 한 것은 아니었으며, 친일은 결과적으로 민족을 배신한 행위가 된다. 인정할 것은 깨끗하게 인정해야 한다. 그것도 본지에서 역사의 진실을 밝히고 정중하게 사죄해야 한다. 팸플릿을 통한 <조선일보> 역사의 ‘진실게임’이 흥미진진하게 벌어질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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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언론정보학회 회장, 한일장신대 교수, 전북민언련 공동대표, 민언련 공동대표, 방송콘텐츠진흥재단 이사장 등 역임, 리영희기념사업회 운영위원. 리버럴아츠 미디어연구회 회장, MBC 저널리즘스쿨 강사,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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