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기출소까지 앞으로 25일. 지난달 1일부터 교도소를 나와 가택수감(home confinement) 생활을 시작한 로버트 김(64세·한국명 김채곤)은 “국민들의 사랑과 관심에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며 근황을 전해왔다.
이달 27일 공식 석방을 앞두고 있는 로버트 김은 팩스로 나눈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의사의 소견에 따라 아침과 저녁으로 각각 한 시간씩 집 주위를 돌면서 걷는 운동을 하고 있다”며 “그동안 한 번도 검진다운 검진을 받아보지 못해 어떤 상황인지 모르겠지만, 건강은 좋은 편”이라고 밝혔다. 로버트 김은 건강보험이 없기 때문에 종합검진은커녕 신체검사마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문과 방송을 통해 고국의 소식을 듣고 있는 로버트 김은 특히 이라크에서 무장세력에 의해 피살된 고 김선일씨에 대한 소식을 듣고 매우 가슴 아파했다고 부인 장명희씨가 전했다.
장씨는 로버트 김과 가족을 대신해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애도의 뜻을 보내며, 이 땅에서 다시는 그와 같은 희생자가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다”고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로버트 김은 8년 가까운 형기를 거의 마쳐 가는 소감에 대해 “몇 달 전까지만 하더라도 나의 의식주가 해결되었으나, 이제부터는 내 힘으로 모든 것을 개척해 나가야 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생각이 많다”며 기쁨보다는 인간적 고뇌를 내비쳤다. 또 “나같이 나이 많은 사람을 써줄 수 있는 곳은 한정되어 있지 않느냐”며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3년간의 보호관찰 사면을 해결하기 위해 “출소 후 1년 동안 사고 없이 지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신경 쓰고 있다”며 사면 가능성을 50:50으로 전망했다.
근간에 준비 중인 회고록의 내용에 대해서는 “너무 여러 가지라 모두 말씀드리기 어렵다”며 말을 아꼈다. 그의 회고록에는 이전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이른바 ‘로버트 김 사건’의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도 포함될 것인지 관심을 낳고 있다.
또 그간 한국 정부가 보여 온 미온적 태도와 보상 문제 등에 대해 “지상으로 대답하기 쉽지 않다”며 조심스런 입장을 보이고 “모든 것이 잘 되기를 바란다”고 짧게 답했다. 특히, 당시 사건의 한 축이었던 백동일 예비역 대령에게는 “그분도 이 일(사건) 이후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위로해야겠다”며 연민을 보였다.
빠른 시일 내에 한국을 찾고 싶다고 말한 로버트 김은 방한 후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로 “부모의 영전을 찾아 불효에 대해 용서를 빌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저에게 관심을 가져 주시고, 사랑해 주신 우리 국민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덧붙였다.
로버트 김은 가족들에게 “이제부터는 멀리 떨어져 살지 말자”며 애틋한 사랑을 전했다. 특히 “자녀들이 아버지가 미국 사회에서 따돌림을 받을 때 매우 원통했겠지만, 아버지를 믿고 지지해 주었다”며 고맙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는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제가 이렇게 건강하게 나올 수 있는 것은 오직 국민들의 성원과 기도였다”며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또 “제가 이에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고 강조하고 “앞으로 저의 삶이 여러분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도록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겠다”고 약속했다.
| | 로버트 김 후원회 ‘ARS 700 서비스’ 개통 호소 | | | “그의 희생 고국이 외면하지 않길” ... 가두모금 등으로 분주 | | | |
| | ▲ 로버트 김 돕기 가두모금 모습 | | | 그간 로버트 김의 구명과 생계지원을 위해 노력해 온 로버트 김 후원회(회장 이웅진)는 최근 KT측에 ARS 700 서비스를 개통해 줄 것을 호소했다.
후원회는 로버트 김의 석방을 한 달여 남겨 두었던 지난달 17일 “많은 회원들이 십시일반 정성을 보태고는 있지만 1만원, 2만원의 적은 돈이다 보니, 당장의 생계유지 외에는 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700 서비스 개통을 요구했다. 보다 많은 국민들이 좀더 원활하게 성금모금에 참여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것이다.
후원회는 이후 행정자치부로부터 기부금품모집허가를 받는 등 후속 활동을 전개했지만, 그 외 필요한 법인설립증, 비영리단체인가증 등 관련 서류를 구비하지 못했다. 로버트 김이라는 특정 개인을 돕는 후원회로서는 불특정다수를 도와야 한다는 법인의 요건을 갖추기가 불가능했던 것. 그사이 행자부와 외교부, KT과 보건복지부 등을 수차례 오가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현재 법인등록 등 관련 절차를 밟고 있는 후원회는 “로버트 김이 더 이상 차가운 현실 앞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한국이 넓은 품으로 그를 감싸안기를 바란다”며 “요건이 갖춰지지 않았더라도, 우리나라의 안보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정보를 제공했던 그의 희생을 외면하지 말아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
한편, 로버트 김 후원회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로버트 김이 가택연금에 들어간 지난달 2일부터 서울 종로1가 일대에서 거리콘서트와 가두서명을 포함한 거리모금 활동을 펼치고 있다.
매일 저녁 6시부터 진행되는 이 가두모금에는 하루평균 8명의 자원봉사자들이 땀 흘리며 동참하고 있다. 임선영 로버트 김 후원회 간사는 “한사람이라도 더 참여해서 로버트 김에 대한 후원의지가 높다는 것을 보여주면 모금의 효과도 더 커질 것”이라며 보다 많은 봉사자들의 참여를 기대했다. 후원회는 이 가두모금을 당분간 지속할 예정이다. / 김범태 기자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