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쭉 뻗은 산록도로
쭉 뻗은 산록도로 ⓒ 김강임
여행을 할 때 드라이브는 답답한 가슴을 씻어 줄 수 있어서 좋다. 자동차의 핸들을 잡고 속력을 내다보면 어느새 저절로 휘파람을 불게 된다. 대자연속에 파묻혀 잠시라도 눈요기를 할 수 있는 틈새. 짧은 틈새 속에서 맛볼 수 있는 세상의 풍경은 마치 한순간을 포착하는 카메라의 셔터와도 같다. 그 한 순간의 포착을 위하여 브레이크를 밟아 보기도 하고, 차창 밖으로 얼굴을 내밀어 머뭇거리기도 한다.

제주공항에서 서부관광도로를 달리다 보면, 서귀포시 1100도로(탐라대학교 인근)에서 국도 11호선(돈내코)을 연결하는 제2산록도로( 1115번)가 있다. 산록도로는 서귀포시가 지정한 서귀포 70경의 하나로, 대중교통이 없어 한적하며 탁 트인 전경이 대 자연의 신비를 자아낸다.

광활한 들판
광활한 들판 ⓒ 김강임
제2산록도로의 드라이브 코스는 오름·들판·계곡마다 빽빽이 늘어선 수목림. 그리고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와 말의 고향. 지천에 깔린 야생초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것뿐이 아니다. 광활한 들판에는 온갖 생태계가 살아 숨쉰다.

제2산록도로 들판에 피어있는 희끗희끗한 꽃들이 바람에 나부낀다. 그 희끗희끗한 꽃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어린시절, 뒷동산에서 뽑아 먹던 '삐비'였다. 껍데기를 벗기면 하얀 속살이 숨어 있고 그 하얀 속살을 빼 먹는 재미는 참으로 솔솔했다.

노란 물감을 뿌린 듯
노란 물감을 뿌린 듯 ⓒ 김강임
제주의 사계절은 색깔이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온 섬을 물들이는 유채색의 향연은 파도처럼 출렁인다. 탐라대학교 인근에서부터 시작되는 산록도로에 접어들자, 노랗게 피어 있는 야생초가 길을 떠나는 사람들을 안내한다. 키 작은 야생화를 보기 위해서는 차에서 내려야만 했다. 야생화의 색깔 만큼이나 상쾌한 것은 한라산 중턱을 감싸고 있는 맑은 공기다.

오름의 끝에 이어진 들판. 그 들판을 따라 이어진 끝없는 길. 길가에 방울방울 피어 있는 야생화는 누군가가 물감을 뿌려 놓은 듯했다.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누렁이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누렁이 ⓒ 김강임
넓은 초원 위에는 한가롭게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의 모습이 보인다. 철조망에 갇힌 모습이 조금은 안타깝다. 푸른 초원 위에서 풀을 뜯고 있는 누렁이는 지금 세상 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관심도 없다.

한라산이 보이고
한라산이 보이고 ⓒ 김강임
푸른 초원을 가로질러 달리다 보면 세상이 온통 파랗게 보인다. 오름과 오름 사이에서 나타난 한라산이 요술을 부린다.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마치 우리가 잡으려는 욕망처럼 능선 뒤에 숨어 있는 한라산 정상. 산록도로에서 보이는 한라산의 정상은 오름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녹차밭 풍경도
녹차밭 풍경도 ⓒ 김강임
좀더 속력을 내 보면, 녹차 밭의 풍경이 눈앞에 다가온다. 잘 정리된 초원처럼 줄을 지어 서 있는 녹차 밭. 언젠가 마셨던 녹차 향기가 코끝에 와 닿는다. 아직도 입안에는 녹차 맛의 여운이 남아있다.

얼마쯤 달렸을까? 야트막한 들판 끝에 서귀포 앞 바다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섬은 바다를 지키는 문지기다. 눈앞에 어른거리며 희미해지는 제주 섬들의 풍경. 제2산록도로를 달리다 보면 달려온 길을 뒤돌아볼 겨를도 없다.

오름속엔 섬이...
오름속엔 섬이... ⓒ 김강임
7월의 초록은 산록도로 계곡까지 빽빽이 들어섰다. 가득 찬 수목림을 보는 순간, 가난한 내 마음이 어느새 넉넉해 진다. 길은 길에 연하여 길이 있다. 길을 가르고 뻗어 온 99번 도로. 도로와 도로가 만나는 분기점. 이 분기점에 접어들면 가야 할 길을 선택해야 한다. 길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목마름의 갈증을 해소시켜주는 이정표가 이곳을 지키는 유일한 문자이다. 늘 길 위에서 만나는 분기점에는 여러 갈래의 길이 나 있다.

99번 분기점
99번 분기점 ⓒ 김강임
분기점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과도 같다.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그 목적과 목표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99번 도로를 타고 달려온 사람들은 한라산 중턱을 가로질러 왔을 테니, 한라산에 대한 얘기를 가득 안고 왔겠다. 그래서인지, 산록도로 분기점에는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높은 전망터에서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분기점에서 잠시 자동차의 열기를 식힐 수 있었다.

야트막한 오름은 항상 내 눈 높이를 맞출 수 있어서 좋다. 언제라도 쉬이 올라갈 수 곳으로, 자신과의 숙제로 남겨둘 수 있으니 말이다. 선과 선으로 이어진 오름의 아름다움. 능선은 언제나 마음의 여유를 느끼게 한다.

능선의 아름다움
능선의 아름다움 ⓒ 김강임
모나지 않고 구부러진, 그래서 아름다운 자연의 신비. 제2산록도로를 통해 내가 가는 길은 서귀포 앞바다로 가는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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