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노무현 대통령.
노무현 대통령. ⓒ 오마이뉴스 이종호
세종로에 거대빌딩을 가진 신문사라면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우선 떠오른다. 그리고 세종로에서 조금 떨어져있기는 하지만, 노 대통령의 말에는 중앙일보까지도 포함되는 것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더 나아가 노 대통령은 “수도권의 집중된 힘은 막강한 기득권과 결합돼 있다”고 말하여, 행정수도 반대론이 결국은 이들의 기득권 지키기라는 시각을 보여주었다.

행정수도 반대론에 대해 노 대통령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기득권을 지키려는 조중동이 앞장서고 있는 대통령 불신임운동, 퇴진운동이라는 것이다.

노 대통령의 해석대로라면 행정수도 이전을 둘러싼 찬반논란은 결국 노무현 정부와 조중동간의 정치적 대결이 된다. 이쯤되면 "행정수도 계획은 참여정부의 핵심과제로, 정부의 진퇴를 걸고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는 노 대통령의 말이 나온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의 이같은 인식은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절반 이상의 국민을 곤혹 속에 빠뜨리고 있다.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들은 행정수도 이전에 반대하는 응답자가 전체의 절반을 넘어서는 추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이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 흔들기'나 '대통령 불신임'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아니면 최소한 대통령을 퇴진시키려는 조중동의 손바닥에서 놀아나는 사람들이란 말인가.

지금 노 대통령에게는 자신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조중동만 보이지, 아직 행정수도 이전의 타당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국민들은 보이지 않는 듯하다.

노 대통령이 조중동만 보다가 국민의 마음을 잃는 우를 범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시간이 지난 일들이야 차치하고라도, 노 대통령은 업무복귀 이후 '과장된 경제위기론'을 내놓는 세력에 대한 경고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국민들은 죽겠는데 대통령의 인식이 너무 낙관적인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래서 경제위기를 부각시키는 조중동에 대한 공박은 했을지 모르지만, 정작 어려운 경제사정에 고통받는 국민들의 마음은 놓치는 모습을 보였다.

행정수도 반대 이유는 조중동의 선동 탓 아니다

이번의 경우는 그 이상이다. 노 대통령은 지금 많은 국민들이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반대하거나 유보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이유를 모르고 있거나, 아니면 애써 외면하고 있다. 반대입장이 증대하고 있는 최근의 여론은 조중동의 선동에 부화뇌동해서가 아니라, 정말로 행정수도 이전의 타당성에 대한 판단을 할 수 없어서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수십번 토론을 했는데 언론이 본체 만체 부각시키지 않으니까 토론하는 지도 몰랐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형식논리이다. 이전의 당위성을 일방적으로 전파하는 요식적인 공청회, 그리고 그에 대한 정치적 반대 목소리는 많았지만, 진정 행정수도 이전의 타당성을 분석하고 진단하는 설명과 토론은 그동안 찾아보기 어려웠다.

지금 당장 신행정수도건설 추진위원회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보라. 국토균형발전이니, 동북아 경제중심이니 하는 구름잡는 소리를 갖고 당위성을 주장한 자료들은 많지만, 정작 이전의 경제적 효과에 대해서, 비용의 예상과 변동가능성에 대해서 구체적인 데이터를 가지고 분석하고 전망한 자료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조차도 행정수도 이전의 비용과 효과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전망을 제대로 내놓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토론의 종결을 선언하는 것은 너무도 일방적이다. 오죽하면 평소 말을 아끼던 김대중 전 대통령까지 "국민에 대한 설득과 홍보가 부족하다"고 지적했을까.

노 대통령의 해석은 많은 국민들을 곤혹속에 빠뜨리고 있다. '노빠'도 아니고 '조중동'도 아니어서, 행정수도 이전의 타당성을 정말 몰라서 정부에게 묻는 많은 사람들의 설 자리를 없애고 있다. 노 대통령이 상대해야 할 상대가 조중동만 있는 것은 아니다. 조중동만 바라보다가, 그들을 향한 적개심만 드러내다가, 다시 많은 국민들의 마음을 잃게될지 모른다는 걱정이 든다.

노 대통령은 반대론이 다시 제기되는 것을 정치적인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이미 노 대통령 스스로도 행정수도 이전문제를 철저히 정치적으로 접근하는 모습이다. 국가정책 차원에서 합리적으로 검증하고 토론하고 국민의사를 물어 결정하면 될 일이지, 이게 어디 대통령의 신임을 걸 문제이고 정부의 진퇴를 결정할 문제인가.

지금으로서는 정부원안대로 밀고가야 한다는 주장에도, 원점으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에도 모두 동의할 수 없다. 그같은 결론을 내리기에는 모두에게 판단의 근거가 너무도 부족하다. 일단은 정부가 계획한 사업내용에 대한 검증을 거쳐, 효과가 비용보다 큰 것이면 그대로 추진하는 것이고, 비용에 비해 효과가 너무도 미미한 것이면 원점으로 되돌릴 수도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해찬 총리가 시사한 행정수도 본연의 규모로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 발언은 오히려 국민감정 자극

여러 가능성을 모두 막아놓고, 오직 전부(全部) 아니면 전무(全無)라는 식의 통첩은 판단을 유보하고 있는 많은 국민들을 참으로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그런 식의 대응은 국민감정을 자극하여 오히려 감정적 반대여론을 확대시킬 뿐이다.

실제로 노 대통령의 발언 이후 사태는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것 같은 양상으로 가고 있다. 반대론자들에게는 '울고싶은데 뺨때려 준' 격이라고나 할까. 노 대통령의 그같은 접근방식에는 조중동뿐 아니라, 한겨레를 제외한 대부분의 중앙지들이 일제히 비판하고 나섰다. 결코 조중동만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노 대통령이 조중동만을 상대로 하는 말을 꺼내놓을수록, 노 대통령 스스로가 조중동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국민을 상대로 하는 말들을 우선할 때도 되었건만, 노 대통령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조중동에 대한 분노가 넘치고 있는 듯하다.

국가적 중대사인 행정수도 이전 논의가 이런 방향으로 가는 것은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행정수도 이전은 국가의 장래에 관한 초정파적인 문제이지, 친노(親盧)냐 반노(反盧)냐에 따라 찬반이 나누어질 문제가 아니다.

좀더 합리적이고 열어놓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것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해 보인다. 국민들이 갖고 있는 궁금증과 의문들을 열어놓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을 것일까. 국민들이 갖는 의문들에 대한 성의있는 설명조차 없이, 모든 것은 결론난 문제라는 식의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일까. 아무리 조중동이 밉다고 '대통령 불신임'이라는 말까지 해가며 국민들의 입까지 위축시켜서야 되겠는가.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5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