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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거산분교에서 졸업한 학생들
지금의 거산분교에서 졸업한 학생들 ⓒ 김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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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교육 안의 자율학교 꿈꾸는 거산분교

학교 현관에는 사진과 함께 거산분교의 연혁이 정리되어 있었다.

1935년 4월 25일 송남보통학교 부설 간이학교
1949년 9월 30일 거산초등학교 개교
1955년 7월 10일 현 위치로 4개 교실 준공 이전
1966년 3월 1일 12학급 편성 인가(이때의 학생수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중간생략)
1992년 3월 1일 송남초등학교 거산분교로 격하.(93년 3월 1일 농촌인구 감소에 따라 5학급 1복식 수업을 하게 됨)
2002년 3월 1일 6학급 편성 인가.


2003년 늘어난 아이들의 모습
2003년 늘어난 아이들의 모습 ⓒ 김갑수
연혁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이, 꽤 긴 역사를 가진 거산분교는 1992년부터 농촌인구 감소에 따라 폐교 위기를 겪었고, 2002년부터 타 지역 학생수의 유입으로 인해 폐교 위기를 넘길 수 있었고 지금은 병설유치원 교사 1명을 포함하여 교사가 총 8명, 학생은 126명(이중 41명만 거산 인근마을에 거주)으로 본교보다 학생수가 더 많을 정도로 성장했다.

2002년부터 거산분교에 근무해 온 원종희 분교부장 선생님은 폐교의 위기를 넘기고 지금의 자율교육 형태로 변모한 과정을 잘 설명해 주었다.

원종희 선생님에 따르면, 글쓰기 모임을 계속해오던 인근 교사들과 ‘동화 읽는 어른 모임’ 등 지역의 학부모들이 ‘같은 학교에 모여서 학생들에게 글쓰기를 교육하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이 있었다. 그러다가 경기도 남한산 초등학교의 교육과정을 알게 되었고 순천향대학교 장호순 교수의 ‘작은 학교 살리기 운동’ 등 시민단체와 뜻을 같이하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참 좋은 소리함
참 좋은 소리함 ⓒ 김갑수
현관의 한쪽에는 ‘다모임’이란 이름의 게시판과, ‘참 좋은 소리함’이라는 정체불명의 상자가 놓여져 있었다. 4학년 교실에서 만난 네 명의 여자아이들로부터 ‘다모임’과 ‘참 좋은 소리함’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윤아리영은 배방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YMCA에서 일하시는 아빠 친구분의 권유로 거산분교에 오게 되었다고 한다.

“배방초등학교에서는 교실에서 수업만 했었고, 고학년들이 운동장을 자기들만 사용해서 싫었는데 이곳에서는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아요. 그리고 매 주 금요일마다 전체 학생이 모여서 ‘다모임’이라는 회의를 해요. 불편한 점과 문제점들을 자유롭게 토론하고 결정해요. 결정된 사안이 있으면 모두들 지키려고 노력하고, 그러지 않으면 고학년들에게 혼나요.

쉽게 말해서 ‘다모임’이란 전체가 다 모여서 자기의 생각을 말하고 불편한 것, 잘못된 것을 터놓고 말하는 자리예요. 생일 맞은 친구들을 축하해 주기도 하구요. ‘참 좋은 소리함’은 칭찬할 친구가 생기면 내용을 적어서 그 안에 넣으면 ‘다모임’이 있는 날 발표도 하고, 칭찬 점수가 높은 친구들은 선생님께 선물을 받기도 해요.”

함께 있던 지혜를 빼고, 지윤이, 아리영, 운선이는 모두 아산 또는 천안에서 전학 온 아이들이었다. 특히 운선이는 한 살 터울 오빠의 전학을 위해 온 식구가 인근 마을로 이사를 온 경우였다.

운선이는 “2학년 때 천안의 신용초등학교에서 이곳으로 전학 왔어요. 엄마가 전학 가라고 했을 당시에는 이 정도의 시골학교가 아닌 줄 알았어요. 많이 낯설었는데 점점 좋아졌고, 오빠도 이곳으로 전학 오려고 했는데 학생이 너무 많아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해서 아예 이곳으로 이사를 왔고 오빠도 이 학교에 다니게 되었어요”라고 말했다.

운선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이곳으로 이사 온 가정이 서너 집 더 있다고 한다.

김영갑 선생님과 아이들
김영갑 선생님과 아이들 ⓒ 김갑수
잠시 후, 4학년을 맡은 김영갑 선생님을 만날 수 있었다.

“선생님! 잠시만 시간 좀 내주시죠?”

“아이들과의 약속 때문에…. 좋습니다. 빨리 끝내주신다면….”

“아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차별화된 공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 같은데, 체험학습은 어떻게 계획되나요?”

“교사들이 계획안을 세워서 학부모 운영위원회나 연석회의에 제출하면 계획안이 결정되죠. 그래서 타 학교보다 교사들의 업무가 많은 편입니다.”

“현행법상 천안과 아산지역 학생들이 거산분교에 입학할 수 없게 돼 있기 때문에 ‘개방형 학구제’를 충남교육청에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선 가장 시급한 것은 저희 학교의 정체성을 지켜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은 전면적인 ‘개방형 학구제’를 요구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도시에서 농촌으로의 전학에 대한 것은 농촌학교 살리기 차원에서 개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본교 승격을 요구하고 있는데, 현재 분교다 보니 예산부족으로 시설이 열악한 상황입니다. 충남도교육청이 소규모 학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소규모 학교 통폐합정책은 농어촌 학교에 대한 인식과 상황판단이 결여된 정책입니다. 타시도 같은 경우는 분교가 본교보다 인원이 작아도 본교로 승격시켜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개방형 학구제’의 필요성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천안·아산 등 도심지역에는 학생의 과밀현상이 발생되고 있고, 폐교위기에 높인 학교들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개방형 학구제’는 도시화, 탈 농촌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육의 환경은 변화되고 있습니다. 다양성을 가진 교육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가끔 우리 학교로 전학을 원하는 학부모로부터 ‘거기 거산 대안학교 맞나요?’라는 전화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분명하게 아니라고 대답합니다. 우리들이 추구하는 교육은 ‘공교육 내에서의 대안교육’입니다.

실제로, 올 6월에 거산분교 학부모회에서 발행한 ‘거산분교 본교 승격을 위한 정책 자료집’을 보면, 같은 분교간에도 예산지원의 격차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산 운산초 남중분교의 경우 유치원생을 포함하여 42명의 학생들에게 연 예산이 약 5700만원(1인당 135만원)이 지원되는데 반해 거산분교는 148명에게 연 5100만원(1인당 35만원)이 지원되고 있고, 경기도의 남한산초등학교의 경우 151명에게 연 1억3천만원(1인당 86만원)이 지원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에 대해 거산분교 학부모 일동을 비롯하여 총동문회, 지역주민들이 본교승격을 요청하는 청원서를 제출했지만, 아산교육청은 “거산분교의 현재 학생수 증가는 아파트 및 공장 건축 등 지역여건의 변화로 인해 주민이 이주하여 발생하는 자연 증가가 아닌 집단 전입에 의한 인위적인 증가”라는 이유로 본교승격을 거절했고, 오히려 “송남초와 거산분교가 100여명의 아동수로 각각 운영하기보다는 2개교가 통합하여 200명 내외의 아동수와 도시학교에 버금가는 시설을 갖추며 통학버스를 운행하는 전원형 작은 학교로 운영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결국 집단 전입에 의해 인위적으로 증가된 학생은 거산분교의 실질적인 학생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 있었던 충남도 교육감 선거에서도 거산분교의 사례를 들어 ‘개방형 학구제’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당선된 오제직 교육감은 시민단체의 공개질의서에 대한 답변으로 ‘개방형 학구제’의 시행에 대해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본교로 승격되면 재정적 지원은 이루어지겠지만 교장, 교감선생님이 오시게 되면 자율성이 위축되는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아이들이 직접 가꾸는 텃밭
아이들이 직접 가꾸는 텃밭 ⓒ 김갑수
“그런 부분이 있겠죠. 하지만, 지금까지 우리 나름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데 교장 중심의 학교 운영으로 변화되는 것은 어려울 겁니다. 교사 스스로가 나름의 자율적 영역을 지켜야겠죠. 처음부터 우리의 현실에 맞는 교장선생님이 오시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학교 시스템에 스스로가 적응해야 할 겁니다.”

(인터뷰가 계속되고 있는데 밖에서 아이들이 “선생님 빨리 나오세요!”라고 소리쳤다)

“마지막으로 이 학교에서 근무하는 보람은 무엇입니까?”

“이전 학교에서는 자기 학급 관리가 주요 업무였고, 교장, 교감의 지시에 따라 학교가 운영되었죠. 그러나 이곳에서는 스스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물론, 그것이 어렵기도 하지만 보람도 있고 매력적이기도 합니다. 다른 학교에서는 회의를 통해 무언가를 결정한다 해도 결국 교장의 의견에 따라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취감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은데 아이들과 무슨 약속이라도 있나요?”

“예. ‘참 좋은 소리함’에서 칭찬을 많이 받은 아이들이 오늘 저희 집에서 함께 지내는 날입니다. 그래서 저렇게 야단입니다.”

운동장에서 기다리고 있던 아이들이 선생님을 반긴다. 모두들 선생님 댁에서 함께 지낸다는 사실에 들떠 있는 모습이었다.

어느덧 교정 맞은편 산으로 해가 저물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천안아산환경운동연합 차수철 국장과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차수철 국장은 “해야 할 일이 많은 학교죠?”라고 물었고 나는 “우선 제가 이 지역으로 빨리 이사 오고 싶은 데요”라고 말했다.

올 가을이면 나도 아이의 아빠가 된다. 아내는 항상 마당이 넓은 집에서 강아지를 키우며 살고 싶다는 말을 한다. 이날 본 거산분교는 나와 아내가 꿈꾸던 그런 모습의 학교였다. 그 학교에서 나의 아이가 뛰어 놀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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