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개 천주교와 개신교 단체 대표 40여명이 경찰의 종교행사 참가자 연행에 항의하는 기자회견 및 집회를 12일 정오 서울지방경찰청사 앞에서 가졌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지난 10일 명동성당에서 고 김선일씨 추모와 이라크 파병반대 기도회를 마치고 광화문 열린시민마당으로 옮겨 기도하기 위해 이동하던 참가자 26명을 미 대사관을 지난다는 이유만으로 경찰이 연행했다고 주장하고 이에 엄중 항의했다.
이날 집회에 앞서 경찰은 연행한 토요일 집회 참석자들을 석방했다. 사회를 맡은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 박용환 대표간사는 “경찰은 평화적인 이라크 파병반대 기도회에 참석 중이던 그리스도인들을 미란다원칙도 고지하지 않은 채 불법 연행했다”며 “석방이 되든 안 되는 불법에 항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정석현 신부는 “경찰은 처음에는 집시법 위반으로 잡아놓고 나중에는 무단 횡단을 했다며 도로교통법을 위반했다고 말을 바꾸었다”며 “이제서야 훈방하겠다는데 훈방은 잘못한 것을 용서해주는 것이 훈방이지 청년들이 무엇을 잘못했기에 훈방을 하겠다고 하는 것이냐”고 일갈했다.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 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홍근수 목사 역시 “평화 종교행사를 탄압한 것과 집회의 자유를 막는 반민주적 행태, 민족 자주의 해를 입히는 행위를 하는 경찰은 해산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기독청년학생연합회(이하 한기연) 김현정 간사는 “단순히 기도회를 가자고 데리고 온 후배들이 태어나 한 번도 겪지 못한 일을 겪은 것에 죄책감이 든다”며 “따끔하게 항의해야 한다”고 외쳤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한국여자수도회 오영숙 수녀는 “무고한 자국민들을 얼마나 더 희생시켜야만 피의 행진을 멈춘다는 건가”라며 “부시와 노무현 대통령에게 사람을 사지로 내몰 권리를 누가 주었단 말이냐”고 말했다.
오 수녀는 “아무런 불법행위를 하지 않았던 청년들을 파병반대를 외쳤다는 이유만으로 강제연행한 셈”이라며 “표현의 자유에 대한 명백한 침해이며, 헌법이 보장한 집회·결사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오 수녀는 이를 ‘공권력의 남용’으로 정의하고 “종교인으로 기도회를 진행한다는 참가자의 말을 무시하고 집회로 규정한 뒤 저지하고 연행하는 데 급급했다”고 다시 한 번 경찰 지도부를 비난했다.
이어진 자유발언에서는 석방된 뒤 바로 집회 현장으로 달려온 기도회 연행자들이 경찰을 비난하고 나섰다. 연행 당했던 한기연 강현석 간사는 “우리는 폭력적 문건도 위협을 줄 물건도 들고 있지 않은 한줌의 무리였다”며 “우리가 이탈리아나 프랑스 대사관 앞을 지나갔어도 이렇게 연행을 했을 것이냐”고 따져 물었다.
현장에서 만난 현우(21·경희대)씨는 “42시간이 넘게 강동경찰서에 연행됐다 풀려났다”며 “토요일 4시 명동성당에서 기도회를 마치고 광화문 열린시민마당으로 도보 이동 중 1026중대가 둘러싸 재빠르게 해산 명령을 3회한 뒤 해산 통로도 열어주지 않은 채 연행했다”며 10일의 일을 비교적 소상히 설명해 나갔다.
현씨는 “경찰들이 머리를 쥐어뜯고 때리면서 사지를 붙잡고 경찰 버스 안으로 끌고 가 팽개쳤다”며 “이에 항의하자 발로 낭심을 밟고 조용히 하라고 윽박질렀다”고 경찰의 가혹행위를 주장하며 양쪽 겨드랑이 사이의 피멍 자국을 들어 보였다.
뿐만 아니라 현씨는 “경찰서에 가서도 경찰이 고압적인 자세로 반말을 하며 수사를 했다”며 자신이 반말을 하지 말 것을 요구하자 “담당 경찰이 팔을 꺾고 밑으로 데려가 아버지뻘 되는 사람한테 그런 말을 해서 되겠냐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씨는 “경찰이 주도자나 조직을 대라며, 한총련과 민노총과 관계 있는 것이 아니냐고 추궁하며 몰아갔다”고 말하고 “석방될 때도 연행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을 채 그냥 풀어주니 가라고만 했다”고 말했다.
자유발언이 이어지던 중에도 단체대표 10여명은 지속적으로 경찰청장과의 면담을 요구했다. 이 과정에서 한 경찰 관계자는 “일방적 통보만으로 청장을 만날 수 있냐”고 소리쳤고 한 단체 대표는 “그럼 일방적인 연행은 괜찮은 것이냐”고 맞받아 치는 등 고성이 오고가기도 했다.
경찰은 청장 및 지방청 고위 관계자가 회의 중에 있다는 이유를 대며 종로경찰서장과의 면담을 주선했다. 잠시 후 나타난 종로경찰서 이동선 서장은 단체 대표들이 반복되는 불법 연행과 가혹 행위 등을 항의하자 “변명하려 하지 않겠다, 앞으로 유념하겠다”고 말했다.
서장과 만난 뒤 이들 단체 대표들은 오후 3시경 마무리 집회를 가지고 자진 해산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도 일부 참가자들은 경찰이 사상의 변화를 강요하고 무리한 몸수색을 강행했다며 서장의 사과에 수긍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