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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남부 일대에서 잇따라 발생한 살인사건을 보도한 언론들. 몇몇 보도들은 이번 사건을 연쇄살인사건으로 쉽게 단정했으나, 이와는 달리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신중하게 접근한 보도도 있었다.
서울 서남부 일대에서 잇따라 발생한 살인사건을 보도한 언론들. 몇몇 보도들은 이번 사건을 연쇄살인사건으로 쉽게 단정했으나, 이와는 달리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신중하게 접근한 보도도 있었다. ⓒ 네이버 화면캡쳐

서울판 '살인의 추억' 용의자가 검거됐다고?

지난 12일 일부 스포츠신문과 중앙일간지는 서울판 '살인의 추억' 용의자가 검거됐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지난달 20일 서울 가양동 모 아파트에서 숨진 채로 발견된 이모(19)양 살해 사건의 용의자로 이모(42)씨가 11일 검거되자, 이를 그동안 '살인의 추억'으로 불리며 시민들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서울 서남부 일대 연쇄 살인사건 용의자가 검거됐다고 보도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수사를 담당하고 있는 강서경찰서는 "아직까지 연쇄살인범으로 볼만한 뚜렷한 증거나 정황은 없다"면서 "언론이 사실을 보도하기 보다는 항간에 떠도는 '괴담' 수준의 이야기를 흥미거리로 유포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비오는 목요일? 언론 소설 쓰지 마라

서울판 '살인의 추억'이란?

최근 언론에 보도되고 있는 이른바 서울판 '살인의 추억'이란 올해 2월부터 서울 서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잇따라 발생하고 있는 여성 습격·살해사건을 일컫는다. 각 언론사 보도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살해사건 5건과 미수사건 2건을 묶어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

4월 22일 구로구 고척동, 5월 9일 동작구 대방동, 5월 13일 영등포구 대림동, 6월 17일 강서구 가양동, 7월 8일 서울 용답동에서 10~40대 여성을 상대로 한 잔혹한 살해사건이 발생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사건발생 시점이 '비오는 목요일 새벽'이 많다는 점 등을 부각해 연쇄살인범의 소행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도했으나 정작 수사관계자와 전문가들은 범행 수법 등을 고려했을 때 연쇄살인범의 행위일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이번에 검거된 용의자는 숨진 이모 양의 지인으로 그간 언론을 통해 알려진 무작위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습격 살인 사건과 범행 유형도 크게 다르다. / 김태형 기자
일부 스포츠신문을 중심으로 언론이 서울판 '살인의 추억'을 본격적으로 보도한 것은 6월 초부터다. 지난 2월 말부터 서울 서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잔인한 수법으로 여성을 살해하는 범죄가 잇따라 발생하자, 언론은 이를 서울판 '살인의 추억'으로 규정하고 각 사건 간의 유사성을 집중적으로 거론하기 시작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사건 대부분이 비오는 목요일 새벽에 발생했다는 사실 이외에도 인터넷에 떠도는 미확인 사실들까지 여과 없이 보도하는 등 흥미위주의 '괴담'들을 양산하는 데 급급했다.

이러한 보도 태도는 급기야 11일 가양동 피살사건 용의자가 검거되자 <서울판 '살인의 추억' 용의자 검거>라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너나없이 보도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이날 검거된 이씨가 "연쇄 살인사건 중 네 번째 사건의 용의자"라고 보도한 것이다.

12일 오후 <오마이뉴스>가 해당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 강서경찰서를 찾았을 때, 한 수사 관계자는 "도대체 어떤 근거로 이씨를 연쇄살인범 용의자로 확신하는지 모르겠다"며 "조사가 끝나봐야 하겠지만 현 시점에서 그를 연쇄살인범 용의자로 단정짓는 것은 그야말로 기자들이 소설 쓰는 것"이라며 일련의 언론 보도태도를 강하게 비난했다.

수사 관계자 "언론은 살인사건 즐기나"

우선 수사 관계자는 이번에 검거된 이씨가 몇 번째 사건의 용의자라고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며 "연쇄살인의 가능성에 대해서도 충분히 수사하고 있지만 이를 기정사실처럼 보도하는 것은 바로 언론"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전 화성 사건에서도 그랬듯이 언론은 문제 해결 자체보다는 살인사건의 선정성에만 관심이 있다"며 "최소한 (연쇄살인범인지 여부에 대한) 수사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게 순서가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기자들은 '살인의 추억' 사건인지 아닌지가 궁금한지 몰라도 한 사람은 생명을 잃고 그 유가족은 충격과 두려움 속에서 나날을 보내고 있다"며 "최소한의 확인보도도 없이 섣불리 단정하는 언론의 보도 태도를 볼 때면 언론이 살인사건을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고 질책했다.

언론의 선정적인 보도가 시민들의 불안감을 확산시키고 모방범죄를 조장한다는 문제 외에도 수사 관계자는 "이러한 언론보도가 바로 경찰의 한건주의를 부추길 수 있다"며 "그렇지 않아도 민감한 사건인데 언론이 자꾸 이런 식으로 보도하니까 무리한 수사 논란이 빚어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언론이 타이틀 만들고 그에 맞춰 보도하려고만"

한편 이번 용의자 검거 소식을 보도한 한 언론사 기자는 13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11일 아침 광주 서부경찰서에서 연락이 와서 가보니 담당 형사가 '최근 서울에서 살인의 추억이라고 불리는 사건이 있나본데 그 사건의 용의자가 검거됐다'고 말해 그렇게 보도가 나가게 됐다"며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 강서경찰서에 확인해 보는 게 맞겠지만 용의자를 검거한 수사관의 이야기라 믿고 썼다"고 말했다.

그는 또 "가양동사건의 경우 소위 '살인의 추억' 사건과는 성격이 다소 다른데, ('살인의 추억' 사건) 용의자가 검거됐다는 보도는 결과적으로 혼선을 초래한 보도가 돼 버렸다"며 "정확하게 사실을 확인 못한 부분도 잘못이지만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건을 해결했다는 경찰관의 일종의 '욕심'도 혼선을 빚게 한 이유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용의자' 검거 후 서울 강서경찰서로 이씨를 이첩한 광주 서부경찰서 관계자는 12일과 13일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여러 언론에서 이미 이슈화됐기 때문에 그날 검거된 용의자 관련해서 서울판 '살인의 추억'으로 보도된 내용을 참고하라고 말해줬다"며 "이에 맞춰서 설명을 하다보니까 서로 간에 혼선이 빚어진 것 같다"고 해명했다.

그는 "관련 사건이 단독범행인지 아닌지, 연쇄범죄인지 등은 수사 결과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면서도 "언론에서 어떤 타이틀을 만들고 그런 혐의점이 있냐고 물으면 경찰에서는 그런 식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현실적으로 있다"고 이야기했다.

한편 이날 강서경찰서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사건 용의자는 소위 서울판 '살인의 추억'으로 추정되는 다른 사건들과 살해수법 등에 있어 여러 차이를 보인다"며 "자세한 것은 검찰 수사 등을 통해 밝혀지겠지만 하루 속히 미제로 남아있는 사건들을 해결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가양동 사건 연쇄살인사건으로 볼 수 있나
잇딴 살해사건을 바라보는 언론-경찰간 시각차

일부 언론이 이번 사건을 서울판 '살인의 추억'으로 묶어 보도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 사건발생 시점으로 추정되는 17일이 목요일이었다는 것이 크게 작용했다. 가양동 사건 피해자는 이로부터 사흘이 지난 20일 오후 가족에 의해 발견됐다.

6월 17일 서울 가양동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은 그동안 발생했던 사건들과는 범죄정황상 뚜렸한 차이가 있어 애초부터 소위 서울판 '살인의 추억'으로 묶기에는 무리였다는 지적이 있었다.

9일자 <뉴스메이커> 인터넷판 보도 등에 따르면 가양동 사건은 이전 사건과는 달리 흉기에 의한 살인이 아니었다는 점과 범행수법상 면식범에 의한 소행 가능성이 높았다는 점, 살해 장소가 집안이었다는 점 등에서 이전 사건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간 '살인의 추억'으로 묶였던 사건들은 범행 수법과 시간 등이 일정한 유사성을 띠고 있으나, 다른 살인사건의 경우도 일정한 경향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최근 발생한 사건들을 연쇄 살인사건으로 규정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수사 관계자들은 이러한 차이점에 근거 "최근 발생한 몇 건의 살인사건을 모두 동일인에 의해 자행된 연쇄살인 사건으로 보기 힘들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이 자칫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은 '화성 연쇄 살인사건'과 등치되는 것에 상당한 거부감을 느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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