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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덕호 한양대 교수는 13일 세종문화회관 컨퍼런스홀에서 개최된 한국사회정책학회 전기학술대회에 참석해, 현재 분양원가 논의가 소모적이라고 주장하면 후분양제 도입을 강력히 촉구했다.
ⓒ 오마이뉴스 이성규

정부와 열린우리당이 '절충형' 분양가 원가연동제 도입을 사실상 기정사실화 하고있는 가운데, 이 방안이 도입될 경우 오히려 주택가격 상승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관심을 모으고 있다.

건설교통부 주택공급제도검토위원회 위원이기도 한 임덕호 한양대 교수는 13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한국사회정책학회 전기 학술대회에 참석, 정부와 여당이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원가연동제가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앞서 권도엽 건교부 주택국장은 지난 12일 열린우리당 주최로 열린 분양원가 관련 공청회에서 "연동제가 실시되면 건설사의 폭리가 원천 차단돼 분양가는 확실하게 인하될 것"이라며 연동제를 적극 옹호한 바 있다.

그러나 이날 건교부 산하 공식기구의 민간위원이기도 한 임 교수가 99년 분양가 자율화 이전 연동제 실시 경험을 근거로 정부 주장을 정면 반박하고 나섬으로써, 건교부로서는 난처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날 건교부 주택국장의 '원가공개 반대론' 조목조목 반박

전날(12일) 권도엽 주택국장은 원가공개 반대논리로 대략 2∼3가지를 폈다. 원가공개가 공급을 위축시켜 집값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과 시장원리에 맞지 않다는 것, 그리고 주공 아파트의 원가가 공개될 경우 재정의 추가지원과 국민부담이 가중된다는 점 등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리에 대해 임 교수는 '경쟁적인 시장구조를 가정한 주장은 논리적 지지를 받을 수 없다'며 조목조목 반박했다. 첫째, 원가공개가 집값상승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주장은 이미 그렇지 않다는 쪽으로 결론이 내려졌다고 했다. 그것도 건교부 산하 주택공급제도검토위원회에서 도출된 결론이라는 것이다. 이미 건교부도 이 사실을 알을 것이라는 게 임 교수의 설명이다.

임 교수는 "그 주장의 근거는 원가를 공개하면 건설업체의 이익이 줄어들기 때문에 건설업체가 다른 영역으로 사업을 옮기게 되리라는 것이지만, 이는 논리적으로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현재 상장사 평균 순이익 비율이 매출대비 10%를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건설업체가 다른 영역으로 위험(risk)과 진입장벽이라는 부담을 안고 진출하겠느냐는 것이다. 원가공개로 폭리 수준이 어느 정도 떨어질지는 모르지만, 타 상장사에 비해 여전히 같거나 높을 것이기 때문에 주택건설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 임 교수 반박논리의 핵심이다. 주택공급 위축으로 집값이 상승할 것이란 주장은 설득력을 얻을 수 없다는 얘기다.

"연동제 같은 분양가 규제는 부실아파트 양산"

임 교수는 "건교부가 '고집'하고 있는 분양가 원가연동제가 도입되면 오히려 집값이 상승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며 강한 우려를 제기했다. 분양가 규제로 저질 아파트가 넘쳐났던 98년 분양가 완전 자율화 이전으로 주택시스템을 되돌려 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임 교수는 원가연동제와 같은 분양가 규제 제도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상당수 시민단체는 (연동제와 같은) 분양가 규제가 가져온 폐해를 잘 알고 있다. 부실아파트 양산 등의 전례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분양가 규제를 주장하는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 정부가 나서서 규제를 지나치게 앞에 내세운다면 개인적으로 절대 반대할 것이다. 이미 우리는 규제에 따른 부작용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분양원가 공개가 시장원리에 맞지 않다는 건교부의 주장은 "대단히 잘못된 주장"이라고 임 교수는 지적했다. 그 자신이 '자유시장경제주의자'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현재 한국의 주택시장은 '시장의 실패'가 발생한 영역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임 교수는 한국의 주택시장을 '독과점 시장'으로 규정한 뒤 "여기에 선분양제가 실시됨으로써 공급자에 매우 유리하게 돼 있는데, 이 구조 하에서 '시장원리에 따라 경쟁하고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주택시장에서의 여러가지 문제들이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선분양제를 시행함으로 인해 나타나고 있는 것"이라며 "그러다 보니 주택업체도 상황에 따라 주택시장원리를 강조했다가, 주택시장 원리를 강조해서는 안된다며 오락가락 한다"고 건설업체의 이중성을 질타했다.

▲ 열린우리당 주최 아파트분양원가공개관련 공청회가 12일 오후 국회 본관에서 열려 분양원가 공개에 대한 의견이 교환됐다. 이 자리에서 권도엽 건교부 주택국장(오른쪽 두번째)은 "어떤식으로든 원가공개를 도입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 이종호
"건설업체, 유불리 따라 이중적 행보"

주공 아파트의 원가가 공개될 경우 재정의 추가지원과 국민부담이 가중된다는 건교부의 주장에 대해서는 "공기업의 공공성을 망각한 논리"라며 날을 세웠다. 임 교수는 먼저 공기업의 설립 이유부터 상기시켰다.

그는 "공기업이 나서서 (임대가 아닌) 분양주택을 짓고 이익을 얻지 않아도 민간기업이 훨씬 더 효율적으로 짓고있다"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택부분에 공기업이 필요한 이유는 (민간기업이 이윤 추구를 하기 때문에 외면하는) 돈이 되지 않는 소형평형을 지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정부와 공기업은 지금 논쟁처럼 정보의 비대칭 문제, 시장의 왜곡 문제를 보완할 책임이 있기 때문에 공기업들이 분양원가 공개에 나서야 한다"며 "그것을 굉장히 아킬레스건을 건드리는 것처럼 난리인데, 난리 나는 것 자체가 난리"라고 말했다. 즉, 원가공개에 반대하기 위해 '난리'를 치고 있는 주공이 공기업의 설립취지와 달리 비정상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스스로 폭로하는 결과라는 것이다.

때문에 임 교수는 이러한 공기업의 '비정상성'을 빨리 보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임대주택 100만호를 지어서 56조원을 투자한다고 하는데 이 금액을 주공에 조달하라고 하는 것 같다"면서 "최소한 정부가 매년 예산의 1% 정도는 임대주택에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선진국만 해도 전체예산의 2~3% 가량을 저소득층 주거 안정에 투입하고 있다며 "최소 예산의 1% 정도를 주공이 공기업으로서의 기능을 회복하고 저소득층의 주거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계적 후분양제 도입하되 선분양제 아래선 공영·반공영 아파트 원가공개해야"

임 교수는 결론으로 후분양제를 단계적으로 도입하되, 선분양제 하에서는 공영 및 반공영 아파트의 원가공개를 도입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공영아파트는 주공 아파트를, 반공영 아파트는 감정가 이하로 공공택지를 분양받아 민간업체가 건설한 아파트를 뜻한다. 다만 그는 민영아파트의 경우 원가공개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뜻을 명확히 했다.

임 교수는 후분양제 도입 시기에 대해 "주택경기가 침체돼 미분양이 속출할 때여야 한다"며 "곧바로 할 것이 아니라 5년 정도의 텀을 두고 공정율 10%(1년차)→20%(2년차)→40%(3년차)→60%(4년차)→100%(5년차) 순으로 단계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특히 건설업체들이 미분양 사태와 자금조달의 위험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다양한 대안들이 이미 '시장'에 진열돼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미분양 우려와 관련, "선진국은 보험회사가 미분양아파트를 대상으로 보험도 팔고, 이후 임대사업도 하고 있다"면서 "그 위험을 사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이를 통해 해소하면 된다"고 말했다.

자금조달 위험과 관련해서도 "기업체의 리스크를 왜 소비자에 떠넘기느냐"고 반문하며 "건설업체가 당연히 위험관리(risk management)를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89년 도입됐던 분양가 연동제, 99년 왜 폐지됐나

▲ 일산 아파트 단지.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오마이뉴스 권우성

분양가 연동제는 지난 89년 11월 주택가격의 상승을 방지하기 위해 처음 도입됐다. 공동주택의 가격을 택지비·건축비로 연동시킴으로써 분양가를 묶어둠으로써 분양가 상승폭을 잡는데 일단 성공했다.

하지만 분양가의 적극 규제로 부실 아파트가 출현하면서 '저질 아파트' 논란을 불러일으키며 반대론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주변 시세보다 낮게 분양가가 책정됨으로써, 과열 청약 경쟁을 일으켜 역으로 분양가격 상승을 부추긴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95년 11월 주택산업연구원이 한국갤럽조사연구소에 의뢰해 서울시내 만 20세 이상 세대주 53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48.9%가 자신이 살고 있는 주택의 품질이 나쁘다고 답변할 정도로 주택품질 문제는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과열 청약문제도 분양가 연동제의 폐해로 지적돼 왔다. 99년 1월 분양가 자율화가 전면 도입될 당시 한 언론이 다음과 같이 조언할 정도였다.

"분양가 자율화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달가운 일이 아니다. 이는 곧 시세차익의 소멸을 뜻한다. 주택업체가 분양가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으므로 시세와 가깝게 값을 매길 수밖에 없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아파트를 분양받아 횡재하겠다는 기대는 버리고 냉정하게 집을 선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러한 문제점과 경기침체 등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는 건축경기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98년 11월 분양가 연동제지침을 폐지, 99년 1월 분양가 자율화를 공식화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전문가들은 분양가 연동제가 다시 도입될 경우 한시적으로 분양가 상승을 잡을 수는 있겠지만, 청약과열이나 저질 아파트 논쟁이 재연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건교부는 표준건축비의 현실화 등으로 이러한 지적을 해소하겠다고 공언하고 있지만, 표준건축비가 현실화되면 정부의 구상만큼 단기적인 분양가 하락을 유도해 내지는 못할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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