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신념과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혐의로 기소된 최명진(24세·여호와의 증인 신도)씨는 대법원 상고심에서 유죄확정판결이 나자 "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보호해 줄 수 있는 선진화된 장치가 하루 속히 도입되었으면 좋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우리 사회의 다양성 증가와 수용을 희망했다.
최씨는 대법의 상고기각 판결에 대해 "사회를 위해 또 다른 면에서 기여하고 싶었지만, 사회봉사를 위한 기회조차 부여받지 못한 것이 매우 안타깝다"며 담담하게 입을 열고 "구속 이외의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하다"고 아쉬워했다.
현재 보석 상태인 그는 1년6개월의 실형이 확정됨에 따라 재구속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최씨는 이에 대해 "아쉬움은 있지만, 판결에 순응할 것"이라며 "이러한 결과가 주어졌더라도 후회는 없다"고 말했다.
최씨는 재판부를 향해 "나 개인은 소수의 인권이고, 소수 의견이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나 대체복무제 도입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이 문제에 대한 대책방안이 조속히 세워졌으면 좋겠다"고 주문하고 "우리 사회가 소수자 인권에 대해서도 고려해 줄 수 있는 사회로 거듭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오후 1시10분쯤 서초동 대법원에 도착한 최씨는 시종 초조한 모습이었다. 그는 판결에 앞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처음에는 병역을 거부하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대체복무제의 취지를 알게 되면서 많이 이해하는 모습을 보았다"며 전향적 판결을 기대했다.
최씨는 "대체복무제 도입은 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다양성의 요구이지, 특정인이나 계층을 위한 특혜가 아니"라고 강조하며 "복무기간도 길고, 업무도 힘들 것이기 때문에 군복무와의 형평성에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또 안보 공백 등의 문제제기에 대해서는 "대체복무자가 급증하면 안보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겠지만, 외국의 사례나 법적 장치를 마련한다면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설명했다.
"3년 가까운 세월 동안 어떠한 계획도 세우지 못하고, 생활해 온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토로한 이 젊은이는 그러나 약 10분만에 끝난 재판에서 원심판결이 확정됨에 따라 다시 수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다. 우리 사회에 또 다른 모습으로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던 그의 바람과 희망도 막바지 장맛비에 씻겨가고 말았다.
| | | 양심적 병역거부 대법 유죄판결에 시민단체 '실망감' 표명 | | | ‘하급심서 도미노 유죄판결 나올라’ 우려 | | | |
| | | ▲ 양지운 씨 | | 대법원 전원합의부(주심 윤재식 대법관)가 개인적 양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해 기소된 최명진 씨에 대해 징역 1년6월의 원심을 확정하자, 방청석에서 이를 지켜본 여호와의 증인 신자들을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강한 유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자리를 같이 한 6.25참전전우기념사업회, 재향군인회 등 인사들은 "병역의 의무는 신성한 것"이라며 법원의 양심적 병역거부 불인정에 대해 당연하다는 반응이었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최씨가 법정 로비에 들어서자 호통을 치기도 했다.
여호와의 증인 신자인 성우 양지운 씨는 대법원의 결정에 대해 "법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는 것을 솔직히 시인했기 때문에, 이번 판결이 명쾌한 '솔로몬의 재판'이라고 보지 않는다"며 "우리 사회가 좀더 발전되기 위해서는 소수자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전했다.
양 씨는 "무조건 구속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은 아니"라며 "재판부의 판결을 존중하지만, 시간을 갖고 대응방법을 찾아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양심적 병역거부자' 오태양 씨는 "한 해 약 700명에 이르는 병역거부자들을 전과자로 만드는데 대법원이 도장을 찍어준 격"이라며 강한 어조로 유감을 표명하고 "남북관계가 하루가 다르게 개선되고, 사회와 시대가 바뀌고 있지만 법원의 판결은 60년대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진 게 없다"고 지적했다.
오 씨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기 때문에 그간 계류중이었던 하급심의 재판이 빨라질 것이며, 판례를 들어 유죄판결이 많아지겠지만, 그래도 인권과 평화의식에 기반을 둔 병역거부자들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최정민 공동대표는 "대법의 판결이 지금까지 조금씩 진일보하던 대한민국의 인권시계를 후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꼬집었다.
최 대표는 "사법부의 판단과는 별개로 국제사회와의 연대 등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한 입법 활동을 계속 전개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향후 하급심 판결이나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오태양 씨는 "그간 계류 중이던 일선 법원의 관련 재판들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하며 "특별한 사례가 없는 한 대법원의 이번 판결을 기점으로 병역거부자 구속이 계속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최정민 대표는 "헌법재판소의 판결에도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사회적으로도 보수 여론이 더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연대회의는 16일 오전 11시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대법원의 이번 유죄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한편, 그동안 사회적 논란을 불러왔던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에 대한 상고심이 내려진 이날 대법원에는 아침부터 학생과 시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져 이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반영하기도 했다.
오후 12시40분부터 방청권이 배부된 대법정 현관 앞 로비에는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각 언론사 기자와 시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번 판결이 사회적으로 미칠 영향과 향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특히,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이날 판결에 따라 향후 자신들의 거취가 결정될 공산이 크기 때문인지 상당한 관심을 보였다. / 김범태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