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구름이 머리 위까지 내려앉아있는 거리를 걷다가 태극기를 보았다.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다. 태극기의 의미가 변화되어온 굴곡의 시간 만큼이나 한국 사회도 변화의 물살을 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근대적 의사결정 방식에서 현대적 의사결정 방식으로, 하향식 의사결정 방식에서 상향식 의사결정 방식으로 한국 사회는 지금 변화하는 중이다.
어린 시절, 해가 질 무렵이 되면 온 거리에 애국가가 울려 퍼졌다. 길 가던 사람들은 모두 걸음을 멈추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워야 했고 극장에서 영화를 보기 전에도 애국가를 들어야 했다. 애국가를 들은 뒤에도 대통령이 나오는 '대한늬우스'를 봐야만 비로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이제는 사라진 풍경이지만 대한민국의 상징인 태극기와 애국가에 대한 존경의 표현은 전체적이고, 획일적인 강요에 의해 이루어졌다.
국가에 속해 있는 시민인 이상 국가를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거야 당연한 의무일 것이다. 문제는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에 있다. 다양한 의견과 방식이 존재해야 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획일적인 방식으로 시민에게 '국가의 권위를 강요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고 진정한 의미의 권위는 강요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군사독재정권은 비민주적인 방법으로 권력을 차지했기 때문에 정통성 문제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고, 군복은 벗었지만 정신의 군복을 벗지 못한 독재자들은 시민에게 '국가의 권위에 대한 충성의 맹세'라는 가면을 쓰고 '정권에 대한 복종과 충성의 맹세'를 강요했다.
복지부동의 자세로 걸음을 멈추고 태극기를 올려다보면서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워야 했던 시절, 태극기는 국가의 권위에 대한 상징이라기보다 독재정권의 상징이었다. 국가는 시민을 어떤 이념을 주입시키거나 일방적으로 계몽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시민은 설득의 대상이지 주입과 계몽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가 민주화되고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계기로 태극기는 존엄한 위치에서 내려와 하나의 패션이 되었다. 태극기의 의미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국가의 권위에서 시민의 가슴으로, 시민의 열정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러한 국가를 향한 애정의 발로는 '옛 시대의 강요된 애국심'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 이유는 무엇보다도 '자발적으로' 국가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기 때문이다.
태극기의 의미 변화는 한국 사회의 변화를 단적으로 상징한다. 정권의 강력한 권력에 의해 중요한 정책이 결정되는 '정치인 중심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시민의 의사가 충분히 반영된 '시민사회의 시대'로 한국 사회가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가가 주장하는 이념이나 정책이 아무리 근사한 대의명분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민의 의사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이는 명백히 민주주의의 의사결정 방식에 어긋나는 행위임을 기억해야 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시민이 모여 국가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국가는 반드시 상기해야 하며 그들의 의견과 자유를 존중하면서 정책을 결정하고 추진해나가야 한다.
지난 15일 한 일간지 국제면을 보면 다음과 같은 기사들이 실려있다. ▲ 필리핀 이라크서 철수, 내달 20일 예정서 앞당겨 전격 발표, 스페인은 철군 완료 ▲ 불가리아 인질 1명 참수 “20시간 내 미군억류 죄수 석방 안 하면 남은 1명 살해” ▲ “영국의 이라크 WMD(대량살상 무기) 정보 심각한 결함” ▲ 14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 중심부에서 강력한 차량 폭탄 테러 발생.
이와 더불어 민주당이 오는 26일 열릴 전당대회에서 '국내적으로 강해지고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미국(Stronger at Home, Respected in the World)'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존 케리 상원의원 대통령 공식 지명을 밝힌다고 한다.
이 날 하루의 기사만을 본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이라크전으로 인해 어떠한 국제정세 속에 있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다. 명분 없는 전쟁, 국제법을 위반한 전쟁인 이라크전으로 인해 미국의 권위는 더 이상 실추될 수 없을 만큼 실추되었다. 이는 미국 상원정보위원회의 조사에 이어 영국의 버틀러 위원회도 대량살상 무기 정보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는 것을 밝히면서 기정 사실화 되었다. 또 필리핀을 비롯한 참전국들이 미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철수를 하는 중이거나 이미 철수를 완료했다.
그런데 유독 대한민국만은 이라크전 추가파병을 강행하려고 하고 있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군대를 이라크에 보내려고 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며 보았던 태극기는 '이제 더 이상 지금 나의 태극기'가 아니다. 지금 나의 태극기는 시위현장에서 볼 수 있는 바로 그 태극기다. 시민의 의지를 대변하는 국가를 상징하는 태극기다. 한 정권의 상징이 아니라, 한 시민의 죽음에 마음 아파할 수 있는 국가의 상징인 것이다.
만약 노무현 정권이 이라크전 추가파병을 강행한다면 시민은 연대해야 한다.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고 김선일씨와 같은 상황에 처하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고 국민의 의사에 귀 기울이지 않고 대한민국을 함부로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권이 추가 파병을 철회하지 않는 지금, 흐린 하늘 위로 태극기가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이라크 민중들이 대한민국 군대의 상징으로 태극기를 보게 해서는 안 된다. 절대로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