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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오전 대체복무제 입법 촉구 기자회견 모습.
16일 오전 대체복무제 입법 촉구 기자회견 모습. ⓒ 김범태
대법원이 “국가 안보가 개인의 양심보다 중요하다”며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유죄 판결을 확정한 가운데 그간 대체복무제 도입 등 관련 시민사회운동을 전개해 온 시민단체들은 향후 대체복무제 개선을 위한 입법 운동을 강력히 펼쳐갈 뜻임을 나타냈다.

양심에따른병역거부권실현과대체복무제도개선을위한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는 16일 오전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와 국회는 즉각 대체복무제 개선과 입법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연대회의는 “이미 15만에 달하는 대체복무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나라에서 마치 병역거부자들의 양심 실현의 자유를 보장하면 병역의무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국가의 안전 보장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 재단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대법의 판결에 유감을 표했다.

또 “오히려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안보 상황 하에서 헌법적으로 보장되는 소수자들의 양심 실현의 자유야말로 민주주의의 진정한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 한홍구 교수는 이 자리에서 오는 8월 말 입법 기관인 국회에서 대체복무법안을 가지고 공청회를 열 것이며, 앞으로 국회와 대학가 등지에서 양심적 병역거부 및 대체복무제 개선을 주제로 토론회를 벌여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한 교수는 또 정부와 국회, 대체복무제 도입 반대론자들을 향해 “개인의 양심과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젊은이들에게 구속 이외의 다른 방법이 없는지 함께 연구하자”며 대만에서의 현지 공동 조사를 제안했다.

대체복무법안의 기초를 놓은 이재승 국민대 교수는 “대법원이 양심 실현의 자유를 제한될 수 있는 상대적 자유라고 판결한 것은 명백한 오류”라며 이는 국가절대주의적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또 “집총 문제와 연관된 기대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이는 소수자 문제와는 어울리지 않는 잣대”라며 이번 판결이 여전히 퇴행적 권력 판결에 머물렀음을 지적했다.

연대회의 최정민 공동집행위원장은 “인권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해 거듭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며 “앞으로 대체복무제 도입을 위해 강력한 활동들을 펼쳐갈 것”이라고 말했다.

기독교, 불교, 원불교, 천주교 등 종교계 인사들도 성명을 발표하고 “대법원의 이번 판결이 헌법에 명시된 종교 및 사상의 자유에 관한 국민기본권을 훼손하고, 현재 재판에 계류 중인 300여명의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들의 재판에 중차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 연대회의는 다음 달로 예정된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심판사건 결정 선고를 앞두고 “헌재가 국민기본권으로서 ‘종교 및 양심의 자유와 국방의 의무가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현재 계류 중인 위헌법률제청신청에 대해 전향적인 판결을 내려주길 바란다”는 입장을 전했다.

지난 2002년 2월 소수자 인권 문제로 부각됐던 병역거부자들의 인권 신장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해 36개 시민단체가 모여 구성한 연대회의는 그간 병역거부자들의 법정 지원 및 국내외 연대, 상담활동 등을 펼쳐왔으며, 대체복무제도에 관한 연구와 분석, 사례 수집 등 관련 사업을 시행해 왔다.

"다시 감옥을 앞두고...신념 위해서라면 희생 감수"
대법원 판결에 즈음한 어느 병역거부자의 편지

▲ 양심적 병역거부자 나동혁씨
“이제 더 이상 무력으로 무언가를 얻으려 해서는 안된다”

양심적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의 입법을 촉구한 이날 기자회견장에서는 우리 사회와 정치권을 향한 한 젊은이의 메시지가 전해졌다.

지난 2002년 9월 양심의 자유를 이유로 자신의 신념에 따라 병역을 공개 거부했던 나동혁씨는 병역거부자들을 대신해 자신의 심경을 담은 편지를 담담히 낭독했다. 나씨는 이 편지에서 “파병은 물론 힘으로 국익을 추구하려는 모든 정책과 정부 시책에 맞서 싸워야 한다”며 “군사력 행사는 가장 최악의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또 “내 신념을 지키기 위해 감옥을 가야만 한다면 충분히 이겨낼 용기가 있다”면서 “인권과 평화를 향한 여러 사람들의 노력,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인정을 위한 노력은 결코 꺾이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나씨가 우리 사회에 전하는 편지의 전문이다.

“대법원 판결에 즈음하여 ... 다시 감옥을 앞두고”

제가 입영을 거부하고 병무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던 것이 2002년 9월이었으니 어느덧 입영을 거부한 지도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습니다. 그 때 기자회견을 준비하면서는 ‘이제 감옥에 갈 시간이 됐구나’ 생각했습니다. 감옥에서 보낼 시간들을 준비하며 이런 저런 계획을 짜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저는 여전히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그동안 참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반대하고 있다지만 최근 몇 년 간 일어난 변화는 대단히 긍정적이었습니다.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기가 1년6개월로 줄어들었고, 교도소 안에서 여호와의 증인들에 대한 종교적 차별이 사라졌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의식 있는 판사님의 노력으로 위헌법률제청신청이 받아들여지는가 하면, 병역거부자가 최초 무죄 판결을 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더디기는 하지만 50년간 수많은 사람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은 듯, 양심의 자유를 이해하려는 사회 분위기가 확산되었고 전쟁과 평화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잇따랐습니다. 분명 가까운 미래에 병역거부자들의 진심을 인정받을 날이 올 것이라 믿습니다.

7월 15일, 대법원 판결에서 병역거부자들에게 유죄 판결이 내려짐으로써 그 동안 중단되었던 저를 비롯한 여러 병역거부자들 재판이 다시 시작될 것입니다. 그리고 조만간 재판 결과에 따라 2년간 유예되었던 감옥살이가 시작될 것입니다.

감옥을 앞두고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몸이 불편하신 어머니를 비롯해 가족에 대한 걱정이 끊이질 않습니다. 저와 관계를 맺었던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사람이 한사람 있습니다. 작년 11월 현역군인으로서는 처음으로 파병반대 병역거부 농성을 했던 강철민씨입니다. 그의 선한 눈빛이 아직도 분명히 기억납니다. 그는 지금 마산교도소에 수감되어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김선일씨 죽음에 항의하는 뜻으로 교도소에서 10일 넘는 단식을 진행했습니다.

저는 이 편지를 읽는 분들께 한 가지 당부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무력으로 무엇을 얻으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파병은 물론 힘으로 국익을 추구하려는 모든 정책과 정부 시책에 맞서 싸워야 합니다.

수많은 전쟁으로 얼룩졌던 살육의 시대는 20세기로 끝내야 합니다. 인간이 무력을 동원하지 않고도 공존할 수 있다는 최소한의 믿음만 있다면 전쟁 없는세상은 가능합니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이제 우리는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희망을 거두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한 사람이 무고하게 죽었습니다. 높으신 분들이 매일 같이 말하는 국익의 실체입니다. 그들에게 한미동맹은 종교처럼 되어버렸습니다.

힘의 동맹으로 국익을 추구하고, 남의 나라 국민은 물론 내 나라 국민까지 해치는 일이 있더라도 지켜야 할 것이 국익이란 말입니까? 전쟁은 또 다시 테러를 낳고 테러는 또 다시 더 큰 전쟁을 부를 것입니다. 우리는 그 폭력의 악순환 속에서 희생되어 간 죄없는 목숨들의 아픔을 충분히 경험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그토록 모든 것을 던져가며 추구한 경제성장과 민주주의가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희들이 말하는 '평화주의'는 단지 평화 애호도 아니고 이기심이나 방관이나 무기력도 아닙니다. 전쟁에 정의는 없습니다. 전쟁의 바탕이 되는 모든 유무형의 폭력에 '비폭력'으로 일관되게 맞서 싸우는 신념이 '평화주의'입니다. 저는 여기서 이상과 꿈을 말하려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의 사태에 입각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분쟁 지역 난민 구제, 평화 재건, 국가간 빈부 격차를 비롯한 불평등 해소, 평화 교섭의 중재와 실현, 양심의 자유 인정, 평화 교육 확산 등 평화를 위해 해야할 일이 태산입니다. 그 모든 노력을 멀리하고 하필 우리는 파병을 선택했습니다. 군사력 행사는 가장 최악의 선택입니다.

저는 완전무결한 인간이 아닙니다. 감옥을 앞두고 어떤 두려움도 없다고 하면 그것은 거짓입니다. 그러나 내 신념을 지키기 위해 감옥을 가야만 한다면 충분히 이겨낼 용기가 있습니다. 또 감옥 안에서, 그리고 형기를 마친 이후에도 제 신념에 따라 평화를 일구는 삶을 만들어 가기 위해 끊임없이 배우고 실천하고 도전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변치않을 신념을 여러분께 약속드립니다. 또한 대법원 판결 결과와 상관없이 인권과 평화를 향한 여러 사람들의 노력,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인정을 위한 노력은 결코 꺾이지 않고 계속될 것이라는 사실을 약속드립니다.
/ 김범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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