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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 제헌절과 주말 연휴를 맞아 해수욕장을 찾은 인파가 무료 100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주5일 근무의 확산으로 토요일 연휴가 그리 낯설지 않게 느껴지고 있다. 더위를 피해 산과 계곡으로 또 바다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인파와 자동차 행렬로 도로가 정체됐다는 등의 소식이 텔레비전의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반면 우리 농촌에서는 주말도 없이 농사일에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들이 흘리는 땀방울은 해수욕장에 모인 인파 만큼에 뉴스거리가 되지 못하는 모양이다.
경기도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
포천은 2003년 10월 '포천시'로 승격되어 아직까지 '포천군'이라는 단어가 더욱 친근한 곳이다. 포천시는 산이 많은 지형적 특성으로 과수나 채소 등 농산물이 생산되고 있지만 외지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겨우 인삼과, 느타리버섯 정도가 널리 알려진 작물이다. 최근에는 신선야채가 많이 재배되어 인근 의정부와 서울로 출하되고 있는 상황이다.
포천은 오래 전부터 품질 좋은 포천(개성)인삼이 나는 인삼산지였지만 오히려 '이동갈비'와 '포천막걸리', '산정호수', '광릉수목원' 등의 먹거리와 휴양지로 유명해 수도권의 쉼터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주말이면 서울로 들어오는 도로는 몸살을 앓고 있기도 하다.
최근 소흘읍 송우리에는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시내전체가 공사 현장인 듯한 분위기다. 일요일 아침임에도 공사장을 출입하는 덤프트럭과 기중기들이 도로를 점령하고 있는 모습이 흡사 신도시 개발 지역 같은 모습이었다.
공사가 한창인 큰 도로를 건너 작은 길로 들어서니 '어서오세오 내사랑 초가팔'이라고 적힌 글귀가 눈에 들어왔는데 이곳으로부터 <초가팔리>가 시작됨을 알려주는 이정표였다. 표지판 밑에는 '초가팔'의 유래와 1996년 마을 청년회에서 세웠다는 글이 새겨져 있었다.
이정표를 지나 시원하게 포장된 일직선 농로를 따라 잠시 걸으니 오른쪽으로 50여 동에 이르는 비닐하우스와 그곳에서 바삐 움직이는 이국청년들의 모습이 나의 시선을 잡아당겼다.
비닐 하우스를 들여다보니 밀짚모자를 쓰신 할머니 네 분이 부지런히 시금치를 수확하고 계셨다. 나는 사진을 찍어도 되느냐고 양해를 구하려 가까이 다가갔지만 할머니들은 시금치를 수확하며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들을 나누고 계셨다. 대충 들은 할머니들의 이야기 내용은 마을의 어느 집안 이야기인 듯했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게 양해를 구했다.
"안녕하세요"
"할머니 수고하십니다. 저 사진 몇 장 찍어도 될까요?"
"공부하는 학생인가?"
"아! 예 학생은 아니고요. 지나가다 일하시는 모습 좀 찍고 싶어서요."
"얼굴은 찍지마! 시금치만 찍어! 쭈굴탱이 할망구는 찍어서 뭐해!"
사진 찍기 허락을 얻은 후에 또 다시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이어져 자세히 들어보니 동네 누구네 집안 이야기가 아니라 요즘 한참 유행하고 있는 텔레비전 주말드라마 이야기였다.
할머니들에게는 나름대로의 노하우가 담긴 작업도구들이 있다. 시금치를 수확하는 것이 오랜동안 앉아서 하는 일이다 보니 쿠션이 풍부한 방석의자가 보였고, 햇빛가리개 밀짚모자, 팔에는 토시, 스티로폼으로 만든 시금치 묶음 받침대가 그것이다.
모두 할머니들이 직접 만든 수제품이라고 자랑하시는 모습이 흡사 어린 아이 같았다. 이중에 가장 눈에 띄는 할머니들의 발명품이 바로 쿠션 풍부한 방석의자였다. 손을 대지 않고도 앞으로 이동하면서 방석의자가 따라 오도록 허리춤에 끈을 해서 엉덩이에 고정을 시켜놓았는데 아주 편리하고 가벼우며 좋다고 할머님이 웃으며 말씀하셨다.
내가 보기에는 지금 수확하고 있는 시금치가 너무 작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할머니들이 한 포기 한 포기 뽑아 묶어놓으니 그리 작은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자리를 앞으로 나아가면서 잘생긴 시금치들이 보이자 한 할머니 하시는 말씀이 "샘플은 여기 것으로 했어야 하는데~~" 하시자 다른 분들도 "그러게 말이야! 여기 놈들이 실하구먼!"이라며 답변을 하신다.
상품이 좋은 값 받기 위해서 박스의 맨 앞에는 잘생긴 것으로 놓는데, 할머니들은 그것을 '샘플'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다. 여든 가까운 할머니들의 '샘플'과 관련된 대화를 듣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할머니들이 시금치를 적당히 한 묶음씩 만들어놓으시면 뒤에서는 인도에서 왔다는 외국인 청년 두 명이 그것들을 또다시 큰 묶음으로 묶어 바깥으로 이동해 지하수로 깨끗이 씻어낸다. 이렇게 정돈되어 포장된 시금치는 시장으로 팔려나가게 되는데, 요즘은 좋은 값을 받지는 못한다고 한다. 그러면서 할머니 하시는 말씀이 일품이었다.
"총각 신토불이 시금치 먹고 뽀빠이처럼 알통 나오라구! 이게 몸에 그렇게 좋아!"
약 50여 동이나 되는 대부분의 비닐하우스에 심겨진 것이 모두 '시금치'와 '파'였다. 지속적인 출하를 위해서 시기를 두어가며 씨를 뿌리고 수확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이런 것이 바로 농업의 사업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러나 농촌에서 일할 인력이 부족해 할머니들과 외국의 청년들만이 있는 것을 보니 그리 쉬운 일만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인도에서 왔다는 청년에게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의사소통이 불가능했다. 그저 지금 수확하고 있는 야채가 '시금치'며 일요일인데도 일을 하고 있다는 푸념 정도였다.
아무리 우리의 농사 현장이 기계화되었으며 다양한 영농기계가 개발되었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손수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들이 그 어느 분야보다 많은 것이 농업이다. 흙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까지는 기계의 힘을 빌리지만 그것을 키우고 관리하고 수확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수 차례의 정성어린 사람의 손길이 요구된다. 그래야만 우리의 식탁이 더욱 풍성하고 정갈한 야채와 과일로 채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오늘 저녁은 신선한 시금치에 멸치와 된장을 풀어 넣은 시금치국과 시금치 나물을 식탁에 올리는 건 어떨까? 저 해맑게 웃는 할머니의 미소를 기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