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이게 힙합이죠" 신이난 봉사자들.
"이게 힙합이죠" 신이난 봉사자들. ⓒ 김재경
힙합! 너무 재미있어요

분명하지 못한 발음으로 "차렷. 경례. 차렷. 경례…"를 수차례 반복하며 어수선한 코미디 프로 같은 수업이 시작되었다. 힙합동아리 윤정희 회장이 "자아~ 우리 신나게 시작해 볼까요"라고 말하자, 잔잔하게 음악이 흘러나온다. "발 펴고, 다리 뻗고, 손 쫘악 펴고,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 잡고, 쭈~욱 잡아당기고…." 힙합의 시작은 스트레칭이었다.

"터치. 터치. 왼쪽. 오른쪽. 앞에. 뒤에. 하낫. 두울…." 같은 동작의 반복이다. 바닥은 폭신폭신한 매트리스이며, 자신의 동작을 볼 수 있는 전면 거울도 있다. 실내 체육관이자 유도장은 힙합을 배우기에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학생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그저 즐겁게 웃는다. 봉사자들은 학생들과 함께 구령을 붙이며 틀린 동작을 바로 잡아 주기 위해 여기 번쩍, 저기 번쩍 정신이 없다.

열심인 학생들.
열심인 학생들. ⓒ 김재경
봉사자들과 장애 학생들

강태욱 특수반 담임교사는 "힙합은 춤이라 그런지, 모든 학생들이 이 시간을 손꼽아 기다릴 정도로 인기가 좋아요. 또 운동 효과가 확실하기 때문에 부모님들도 무척 좋아하지요" 라고 말했다.

모두가 열심인데 한 학생이 아무 말 없이 수북히 쌓아놓은 매트리스 위에서 딴전을 부린다. 안무를 하던 윤 회장은 "자아~ 여러분 힘들지요. 잠시 쉬었다가 다시 시작할까요"라고 재치있게 어수선한 분위기를 수습한다. 학생들은 좋아서 손뼉을 치며 매트리스 위에 걸터앉거나 자원봉사자들 틈에 옹기종기 둘러앉았다.

지난해 9월부터 매주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힙합을 지도해온 봉사자들은 모두가 중·고등학생을 자녀로 둔 어머니들이다. 춤으로 다져진 봉사자들이 아가씨인 줄 알고 초창기에는 해프닝도 많았다고.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이 최고예요."
아이들은 종종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무조건 결혼하자고 애정 공세를 퍼붓기도 했다. 학생들은 또 남자인 담임 선생님과 자원봉사자들간의 연결고리를 만들려고 나름대로 무척 애쓰기도 했다고.

정신지체(8명)와 자폐(3명) 학생들은 봉사자들을 선생님이자 어머니처럼 믿고 따르며 곧잘 속내도 털어놓는 스스럼 없는 관계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야지" 지적하는 봉사자.
"이렇게 해야지" 지적하는 봉사자. ⓒ 김재경
재미난 힙합, 그리고 변화

이민영 봉사자는 "장애 학생들은 대체적으로 감정의 기복이 크고 집중을 잘 하지 못해 산만한 편이지요. 처음에는 10분 집중하기도 힘들었지만,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서 변화하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말한다.

봉사자들은 "스트레칭이나 동작이 눈에 띄게 하루 하루 발전하는 학생들을 보면 그저 놀랍고, 덩달아 신명이 나며 의욕이 넘쳐요"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말하거나 움직이는 것을 싫어하던 다운증후군 학생들까지 춤추며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 부를 정도로 짧은 시간이지만, 힙합으로 인한 아이들의 변화는 놀라운 것이었다.

생각보다 어려워요
생각보다 어려워요 ⓒ 김재경
학생들의 업적, 그리고 보람

이들은 안양을 비롯한 전국자원봉사대회(서울 장충당공원)에서 공연을 해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겼다. 일반인들 틈에서도 당당히 동상을 수상하고, 안양 꿈나무도서관 축제 때 PR공연을 하는 등 장애인 힙합의 위상을 드높인 것.

가을 학교축제 때는 우수상을 수상, 일반 학생들의 시선을 부드럽게 바꿔놓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부모들은 아무 것도 내세울 게 없는 줄 알았던 자녀들의 공연을 보며 "이젠, 내 아이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감격의 눈물까지 흘렸다고. 그 후, 아이들이 공연을 할 때마다 부모들이 의상뿐 아니라 액세서리까지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열성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봉사자들은 학생들과 더욱 가깝고 친밀하게 호흡하기 위해 가끔씩 주머니를 털어 먹을 거리까지 제공한다. 수상 작품을 청하자, 학생들은 박수를 치며 열광을 한다.

발 펴기 동작
발 펴기 동작 ⓒ 김재경
이 순간은, 내가 최고!

'love tonight'이라는 경쾌한 음악이 흐르는 순간, 학생들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유연한 동작이 자유 자재로 난리가 났다.

혼신을 다해 땀을 뻘뻘 흘리며 흥겨워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춤꾼들이다. 힙합을 통해 마음을 치료하고, 적극적인 성격으로 탈바꿈하는 놀라운 위력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자아~ 다시 시작해 볼까요. 하낫 두울~ 짜자 잔…. 어깨, 어깨, 짜자 잔…. 잘 했어, 아주 잘했어요. 몸만 동작하는 게 아니라 다 같이 구령을 붙이고 앞에 뒤에…."

이들의 모습은 마치, 어미 새의 날갯짓을 따라 배우는 새끼 새처럼 사랑스럽다. 즐거워하는 학생들과 한 목소리로 구령 붙이고, 2시간 동안 흠뻑 땀 흘리며, 춤추고 노래하는 이 순간보다 더 신나는 봉사 활동이 또 어디 있을까?

이만하면 됐죠.
이만하면 됐죠. ⓒ 김재경
힙합 자원봉사 함께 해요

"태권도 사범 같은 구령으로 목이 힘들지 않느냐"고 묻자 윤정희 회장은 "다른 봉사자들이 함께 구령을 붙여주기도 하지만 솔직히 봉사하는 화요일과 금요일은 목이 잠겨요"라고 말한다.

안양 동안여성회관에서 스포츠댄스를 배운 동기생 10명이 모여 힙합 동아리를 만들었지만, 꾸준히 활동하는 봉사자는 윤정희, 강옥희, 서미경, 이민영, 임은실씨 뿐이라고 한다.

수리장애인 복지관에서 힙합을 배우는 고등학교 3학년의 한 부모는 "졸업 후에도 힙합을 계속할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는 등 이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곳이 계속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어휴! 힘들다.
어휴! 힘들다. ⓒ 김재경
봉사의 영역을 넓히고 싶지만, 체력의 한계와 주부라는 제약으로 그럴 수도 없다. 사실 지금하고 있는 화요일(수리장애인복지관), 금요일(범계중학교 특수반) 봉사도 버거운 실정이다.

게다가 학생들을 지도하려면 봉사자들도 강사를 초청, 열심히 배우며 꾸준히 연구해야 하기에 숨을 돌릴 틈조차 없다.

춤이라면 못 견디는 춤꾼 어머니들은 자원봉사를 하며 "무탈하게 자라는 자녀들을 보고 새삼, 고마움과 행복을 느껴요"라며 유연한 동작으로 포즈를 취하며 활짝 웃는다.

자원봉사들
자원봉사들 ⓒ 김재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동기- 인간 냄새나는 진솔한 삶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현재,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이며 (사) 한국편지가족 회원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