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금괴밀수 혐의로 체포된 인천국제공항공사(사장 조우현) 외주업체 직원 박아무개(45)씨에 대해 공사측이 수 차례에 걸쳐 정규직원으로 특별채용하고자 시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또 용역 외주업체 소속으로 기자실 지원업무 보조자였던 박씨에게 제한구역 상시출입을 허용한 것에 대한 공항측의 부실관리 책임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인천국제공항공사 노동조합(위원장 김규찬)은 지난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노조의 강력한 반대에도 공항에서는 2003년 6월부터 지난 5월까지 기여도가 크다는 이유로 박씨를 5회에 걸쳐 특별채용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취재지원 업무차 발급된 출입증 이용 47억원치 금괴 밀수
노조는 "특히 공항측이 어떤 이유로 특정인을 직원으로 채용하고자 했는지 그 과정을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고 요구한 뒤 관련 문서를 공개했다. 여기에는 박씨 채용개선에 대한 공항측 협조공문을 비롯해 노조 회신 등 8개 문서가 포함돼 있다. 노조는 "이같은 과정에 인사청탁 외압 등이 없었는지 정확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노조는 또 "엄격한 보안관리가 필요한 공항에서 불미스런 사건이 발생한 것은 공항공사의 무책임한 관리감독에 원인이 있다"고 따졌다. 노조는 "외주업체 소속인 박씨가 통제구역인 일명 'C구역'(관세구역)에 상시 출입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해할 수 없다"며 "상주 기자실 지원업무를 보조하는 역할인 박씨에게 기자실을 벗어나 제한구역까지 드나들 수 있게 한 것은 보안에 구멍이 뚫린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박씨는 인천국제공항공사내 여객터미널 용역을 맡고있는 업체 소속으로, 99년 개항 때부터 지금까지 기자실에 전담 배치돼왔다. 박씨는 주로 기자실 취재지원과 보도자료 배포, 비등록 기자들의 출입신청 등 업무지원에 투입됐다. 공항 측은 박씨에게 취재지원 업무를 이유로 제한구역인 'B구역'(입출국 구역)과 'C구역'(세관구역)에 대한 상시출입이 가능한 고정출입증을 발급했다.
이에 따라 박씨는 지난 12일 환승객으로 가장해 홍콩에서 인천공항으로 들어온 미국인을 공항 2층 환승장 부근 화장실에서 만나 금괴 1㎏짜리 24개(3억8400만원치)를 넘겨받았으며, 이를 공항 밖에 대기하고 있던 윤모씨에게 전달하려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박씨는 이처럼 공항 상주직원 고정출입증을 이용, 환승지역에 용무가 있는 것처럼 드나들며 세관검색을 피하는 수법으로 지난달 초부터 최근까지 10여차례에 걸쳐 47억원 상당의 금괴를 밀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공항측, 기자실 관리직 채용 5회 요청
노조가 공개한 바에 따르면 공항측은 지난해 6월 11일 '계약직 제도개선 관련 협의요청' 공문을 노조 앞으로 보내왔다. 공항측은 "기자실 근무직원으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적극적인 성격과 업무추진으로 출입기자들의 평판이 매우 좋다"고 박씨의 기여도를 크게 평가한 뒤 계약직 임용 의사를 노조측에 밝혔다.
이어 공항측은 같은 해 8월 19일 "언론대응 및 취재활동 지원을 위해 기자실 내 행정업무 박씨를 계약직으로 특별채용하겠다"는 계획에 대한 협의를 노조에 다시 요청했다. 노조에서는 이에 대해 "특별채용은 불가하고, 공개채용 원칙을 준수해달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공항측은 올해에도 잇따라 이와 관련한 요청을 노조에 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항측은 지난 3월 12일과 4월 27일, 5월 7일, 각각 3회에 걸쳐 기자실 관리 1명에 대한 공개채용 계획을 검토해달라고 노조에 요청했다. 하지만 노조는 지난 5월 11일 "외압에 의한 특정인 계약직 채용 불가"라는 입장을 공항측에 최종 통보했다.
특히 노조는 인사 외압 당사자 중 하나로 기자실을 지목하기도 했다. 노조의 한 관계자는 "용역직을 정규직으로 채용하겠다는 공항측의 표면상 이유는 박씨의 기여도가 큰 것이라고 들었지만 기자실 요청이 주요하게 작용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에서 '기자실'은 권력이다, 특히 공항 기자실의 힘은 어느 곳보다 크다"면서 "지난해 7월 노조위원장 이·취임식 때 기자실의 한 간사는 '공항 측에서 (채용 협조) 문서가 갈 것인데 잘 봐달라'고 얘기한 적도 있다"고 주장했다.
공항측 "어떤 배경이나 외압도 없다"... 기자실측도 해명
그러나 인천공항 기자실측은 노조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기자실의 한 관계자는 "비정규직인 박씨가 보기에 안타깝고 해서 신임 노조위원장 인사차 갔을 때 '계약직이라도 됐으면 좋겠다'고 덕담 나누듯 한 게 그런 오해를 산 듯하다"고 말했다.
그는 "박씨는 개항 전부터 기자실에 근무했지만 용역업체 소속이어서 나이 50이 돼가는데도 급여수준도 낮았다"며 "근무환경에 비해 열악한 조건에 처한 비정규직을 보면 안됐다는 마음이 드는 게 인지상정이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공항측도 노조의 의혹제기는 사실무근이라고 밝혔다. 최홍렬 총무인사처장 겸 홍보실장은 19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박씨를 직원으로 채용하려는 계획은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한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지 어떤 배경이나 외압도 없다"고 말했다. 최 처장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외주업체 관리감독을 더욱 강화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최 처장은 또 "기자실에서 인사청탁을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된다"고 확인한 뒤 "노조가 새삼 당시 협의사항을 문제삼는 것은 단체협상을 앞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본다"고 풀이했다. 최 처장은 "박씨 사건은 유혹을 이기지 못한 개인범죄로써 이를 빌미로 공항측의 도덕성을 압박하려는 태도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노조를 비판했다.
최 처장은 "기자실 지원업무는 김포공항 시절부터 아웃소싱으로 운영됐는데 외주업체에서 맡다보니 비용지출은 마찬가지인데 책임감도 떨어져 직원으로 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판단, 계약직으로 전환하자고 한 것 뿐"이라고 답했다. 최 처장은 "처음에는 대언론관계 업무라 특채 요건이 된다고 봤으나 노조에서 공채를 주장, 이를 수용했다"며 "하지만 나중에는 특정인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고 반대해 뽑질 못했다"고 덧붙였다.
최 처장은 박씨의 제한구역 고정출입 문제에 대해서는 "외주용역 업체 직원들도 업무와 관련해 제한구역 상시출입이 인정되면 고정출입증을 발급해준다"고 설명했다. 최 처장은 "기자들의 취재업무를 지원해야 하는 박씨의 경우 제한구역을 취재하는 기자 수가 많을 경우 정규직과 함께 지원업무에 투입하는 경우가 많아 고정출입 자격을 줬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항 측의 이같은 해명에도 노조는 외부기관 사정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김규찬 위원장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라는 차원의 처우개선은 바람직하지만 공항측이 집요하게 박씨를 정규직으로 전환하려고 한 과정에 대해서는 그 의혹이 낱낱이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청와대와 감사원, 건설교통부, 부패방지위원회 등에 이에 대한 사정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