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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상자들은 의외로 중태가 많았다. 화살이 허벅지나 살 거죽을, 그러니까 뼈를 관통하지 않은 군사가 20명이었고, 나머지는 중상이었다. 살만 다친 부상자는 그래도 살릴 수가 있지만 늑골이나 복부 등을 맞아 중태인 사람은 이미 손불 수가 없는 지경이었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모든 환자를 성으로 옮겨온 후 먼저 끓인 소금물에 상처부터 소독했다. 그 일은 닌과 성의 의원이 맡았고 할머니는 집에서 가져온 나무껍질과 풀뿌리를 찧어서 부상자들 상처에 붙였다. 웬만한 염증은 그것으로도 잡을 수 있을 것이나 문제는 중태환자였고 또 그들의 앓는 소리였다. 할머니가 성의 의원에게 물었다.
"여기에도 계피와 꿀은 있겠지요?"
"그러믄요. 많이 있습니다. 곧 계피꿀물을 만들도록 하지요."
계피는 향이나 미약에 쓰는 것이라 군주들이 자주 사용했고 그래서 성안 약제실에는 그것이 필수품이기도 했다. 의원은 마른 계피 한 다발을 가져다 주방에서 끓이기 시작했고 닌은 그것을 그릇에 담아 꿀을 섞었다. 계피 물에 꿀을 섞으면 그것이 진정제가 되는지라 닌은 꿀을 듬뿍 넣고 잘 저은 뒤 부상자들에게 갖다 먹였다.
끙끙 앓던 부상자들도 한둘 잠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 책임선인이 들어와 할머니에게 알렸다.
"군주의 내실이 비어 있습니다. 거기서 휴식을 좀 취하시라는 장군님의 분부이십니다."
할머니는 알겠다고 대답했고 책임선인은 곧 돌아갔다. 닌은 그 말을 엿듣고 비로
소 가슴을 쓸어내렸다. 연병장에서 자기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떠났을 때 닌은 하늘이 까맣게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그간 얼마나 그리워하며 속을 태웠던가.
에리두에서 작별인사 한마디 없이 떠나갔을 때도 곧 연락할 것으로 믿었다. 그리고 오늘 두두 오빠가 왔을 때도 마침내 에인이 자기를 데려오라고 그렇게 보낸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두두는 다급하게 의원만을 원했다. 만약 할머니가 자기를 데려와주지 않았다면 오늘도 에인의 얼굴을 보지 못했을 터이다.
'그는 내 신랑인데, 어찌하여 본 척도 않았는가….'
부상자를 돌보면서도 그녀 머릿속에서는 내내 그 생각만 공전했다. 하지만 이제 그도 자기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할머니에게 군주 내실로 가서 쉬라는 말은 곧 닌 너도 그리 하라는 뜻일 것이다.
닌은 두 손을 가슴에 대고 기도를 올렸다.
'천신님, 마침내 저도 그이와 한 지붕 아래 있사옵니다. 그러나 저는 그이가 어느 방에 계신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더러 가서 쉬라는 그 군주의 내실인가요? 아니면 그 옆방인가요? 우리가 가기만 하면 그이 얼굴을 볼 수 있나요?'
그러자 조급증이 그녀 가슴 속에서 폭죽처럼 펑펑 터졌다. 닌은 급히 할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할머니는 한 중상자에게 손이 잡혀 있었다.
"할머니 이제 그만 쉬러가지 않으실래요?"
"닌아, 보아라, 이 부상자는 지금 죽어가고 있단다. 그러면서도 한사코 나를 붙잡고 있지 않니. 날이 밝을 때까지 우리 모두 이 방을 떠나서는 아니 된다. 그러니 너도 정 피곤하면 저 벽에 기대어서 눈만 잠깐 붙이려무나."
닌은 그런 할머니를 혼자 두고 떠날 수가 없었다. 님 그리운 생각이 자신의 심장을 조인다 해도 앓은 사람을 두고 떠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었다. 닌은 한 중상자 옆으로 갔다. 그 중상자는 잠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기도를 드렸다.
'천신님, 부상자들을 죽지 않게 해주소서. 이들은 제 신랑의 군사들이나이다. 부디 살려주시어 영광을 보게 하소서.'
닌은 그렇게 벽에 기대앉아 밤을 새웠다. 한숨도 잘 수가 없었다. 어느새 부상자들에 대한 걱정은 잊어가고 오직 에인을 만나고 싶은 갈망만이 뜨겁게 심장을 달구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에게로 가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 그리움은 어찌 이토록이나 견딜 수 없도록 타오르기만 한단 말인가.
마침내 아침이 밝아왔다. 밤사이 늑골을 찔린 부상자와 할머니 손을 잡고 있던 그 군사가 죽었다. 닌은 잠들지 않았는데, 그들 때문에 머물러 있었는데 결국 부상자들은 닌에게는 기척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저 세상으로 떠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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