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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마애삼존불과 보원사지 유물
서산마애삼존불과 보원사지 유물 ⓒ 안서순

이 마애불은 10m가 넘는 화강암에 새겨진 것으로 중앙에 본존불인 여래입상과 그 좌우측에 반가사입상과 보살입상을 각 1구씩 양각됐다.

본존불인 여래입상은 해의 위치에 따라 표정이 변하는 신비로움을 지니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마애불 중 가장 예술성이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는 이 마애삼존불은 1959년 부여박물관장을 지낸 연재 홍사준(1905-1980) 선생에 의해 오랜 잠에서 깨어나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강당골을 지나 보원사지에 이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용케도 세월을 버틴 당간지주(보물103호)다.

당간지주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개울을 건너면 금당터와 보원사를 창건했다는 법인국사 보승탑(보물105)과 5층석탑(보물104호), 법인국사 보승탑비(보물106호)가 금방 눈에 띄고 며느리 찔레 가시덩쿨이 어지러운 돌무덤을 살펴보면 거기 부서진 탑신과 주춧돌 등이 지닌 세월만큼 이끼를 안고 나뒹굴고 있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영화로움은 찰나적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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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한 마음으로 주변을 둘러보다보면 보원사지 바로 옆에 있는 농가의 축대가 주춧돌과 탑신으로 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순간 허망함이 극에 달해 어지럼증이 날 만큼 지난 무심한 세월이 분하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무지한 탓도 있겠지만 그만큼 오랫동안 보원사지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버려진 땅이었다. 30여년 전만 해도 밭을 갈다가 불상을 줍기도 했다고 한다. 현재 부여박물관에 소장돼 있는 금동여래입상과 철조여래좌상 등 많은 불교 유물이 그렇게 출토된 것이라고 하니 그 옛날 절의 규모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보원사는 백제시대 당나라로부터 불교문화를 수입하던 통로에 위치해 있어 국보급 문화재가 즐비한 수준 높은 불교예술이 꽃을 피웠다.

삼국시대 당나라를 가는 나루라 해서 지금도 '당나라 당'자 '나루 진'자를 써서 '당진'으로 불리는 곳이 30리 이내에 있고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던 원효가 해골바가지의 물을 마시고 득도를 했다는 곳이 그 인근에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봄은 봄대로 여름은 또 여름대로 가을과 겨울은 역시 그 나름대로 사뭇 다른 분위기를 보여주는 천년 사찰 보원사지.

인생의 희로애락을 파노라마로 보여주는 것 같은 그곳은 여전히 범상한 기운에 서려있어 사색 속에 철학이 깃들게 한다.

보원사지의 금당터를 발굴한다고 한다. 또 어떤 국보급 유물들이 있어 천년동안의 긴 잠에서 깨어날지 사뭇 기대되기도 하고 가슴 한구석 허망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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