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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원
ⓒ 이기원
정수기 물통을 열 개 이상 가지고 오시는 아저씨, 파란색 뚜껑이 덮인 큼직한 물통을 들고 오는 아주머니, 페트병 수십 개를 큼직한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 오신 할아버지, 한 되들이 주전자를 들고 오시는 할머니 등 약수터를 찾는 이들의 모습은 다양합니다. 아예 빈손으로 와서 물만 먹고 가거나 세수하고 심지어는 발까지 씻고 가는 녀석들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 여름이 되면 주전자 들고 물을 길어오던 생각이 납니다. 우리 집에서 이용하던 물은 우물물이었습니다. 논둑을 따라 한참을 가면 우물이 있었습니다.

그 우물은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샘물은 아니었습니다. 한여름에는 뜨거운 태양의 열기를 고스란히 담아 미지근한 맛이었고, 한겨울에는 얼어붙어 도끼로 구멍을 뚫어야 겨우 물을 길어올 수 있는 물이었지요.

한 바가지 떠서 쭈욱 마시면 뼛속까지 시원해지는 물이 있으면 여름에는 더 바랄 게 없습니다. 그런 물을 떠오려면 우물이 아닌 다른 집으로 가야 했습니다. 우리 동네에서 유일하게 펌프를 박아 물을 퍼 올리는 과수원집이 있었는데, 그 물이 정말 시원했습니다. 더운 여름날엔 펌프 손잡이를 잡고 한참을 퍼 올린 뒤에 물을 떠야 시원했습니다.

뜨거운 뙤약볕에 밭에서 김을 매다 집으로 오시는 부모님의 몸에서는 뜨거운 밭고랑 열기가 훅훅 풍겼습니다. 그런 부모님께서 가장 먼저 찾으시던 게 물이었지요. 밭에서 일하시던 부모님이 돌아올 무렵 나는 주전자를 들고 과수원집으로 달려갔습니다.

펌프에 물을 한 바가지 넣고 한참 퍼올립니다. 이마며 콧등에 땀이 송송 맺힐 정도로 물을 퍼내다 쏟아지는 물에 손을 대보면 어느 정도 시원한 물인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적당히 시원한 물이 올라오기 시작하면 주전자에 물을 가득 담아 집으로 옵니다. 땀 냄새 흙 냄새 물씬 풍기며 집으로 오신 부모님은 대접에 물을 받아 달게 마시며 한 말씀 하셨지요.

"우리 아들이 최고야."

그리고 점심을 먹습니다. 주전자 물을 대접에 따라 보리밥을 말아 훌훌 드셨지요. 고추에 된장 듬뿍 찍어 함께 드셨지요. 그런 부모님 옆에 앉아 나도 물에 만 보리밥을 훌훌 마시며 어린 시절 여름을 보냈습니다. 시원한 물 한 주전자만 있으면 바랄 게 없던 시절입니다.

냉장고며 에어컨 보급이 늘어나서 펌프 물에 의존하던 시절보다는 훨씬 시원한 여름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원한 물 한 주전자에 만족하던 그 시절보다 갈증은 더 심해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욕심보란 채우면 채울수록 허기와 갈증이 더 심해지는 고약한 녀석인가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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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서 있는 모든 곳이 역사의 현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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